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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의 엇갈린 배상 결정…라임은 되고, 키코는 안 되는 이유

입력 2020-06-07 10:46
신문게재 2020-06-07 9면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인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와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대해 은행들이 다른 결정을 내렸다. 라임펀드 관련 투자자들에게는 선지급 결정을 했지만, 키코 배상에는 사실상 거절을 하면서 이를 둘러싼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은행권, 라임 펀드 피해고객에 50% 수준 선지급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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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한은행, 우리은행)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라임자산운용 펀드 피해자에 대한 선지급 보상안을 확정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고 라임자산운용 CI무역금융펀드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가입 금액(원금)의 50%를 선지급(보상)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앞서 신한금융투자, 신영증권도 ‘라임펀드 선지급’을 결정했지만,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이 처음 구체적 선지급 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안은 라임자산운용 CI무역금융펀드 가입금액의 50%를 미리 피해자(가입자)에게 주고 향후 펀드 자산 회수,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 등에 따라 보상 비율이 확정되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선지급 안을 수용한 고객도 금감원 분쟁조정과 소송 등에는 그대로 참여할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라임자산운용 부실 자산 편입으로 발생한 투자상품 손실에 대해 판매사가 자산 회수에 앞서 투자금의 일부를 지급해 선제적으로 고객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이 뜻을 모았다”고 의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라임 CI펀드 환매가 중지된 이후 고객 보호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했으나, 투자 상품에 대한 선지급의 법률적 문제 등으로 최종안이 나오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며 “신한은행을 믿고 기다려 주신 고객의 어려움이 조금이라도 해소되길 바라고, 향후 자산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리은행도 같은 날 이사회를 열고 신한은행과 같은 방식의 선지급을 결정했다. 선지급 대상 펀드는 환매가 연기된 플루토·테티스로 약 2600억원 규모다.

우리은행은 투자자와 개별 합의를 거쳐 최저 회수 예상액과 손실보상액을 기준으로 계산된 금액을 합산해 지급하기로 했다. 펀드별 선지급액은 원금의 약 51% 수준이다. 다만 총수익 스와프(TRS)가 적용된 AI프리미엄 펀드의 경우 선지급액은 원금의 30%대로 예상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라임자산운용의 자산현금화 계획이 5년 동안 이행될 예정인 점을 고려해 투자금의 일부를 선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 “키코 배상 안한다”…금감원 분쟁 조정안 최종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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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펀드의 선지급 보상안이 결정된 날, 은행들은 키코 관련 배상에 대해서는 일제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신한·하나·대구은행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권고한 4개 기업에 대한 키코 배상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은 신한은행에 피해기업을 상대로 150억원을 배상하라고 권고했는데 다섯 차례 답변을 미룬 끝에 결국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신한은행 측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복수 법무법인의 의견을 참고해 은행 내부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친 심사숙고 끝에 수락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도 이날 이사회를 열어 키코 관련 논의를 했지만, 배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장기간 사실관계 확인과 법률적 검토를 거쳤고, 이를 바탕으로 이사진이 충분한 논의를 거친 끝에 조정 결과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대구은행도 이날 이사회에서 키코 분쟁조정안의 불수용 결정을 내렸다.

다만, 신한·하나·대구은행은 키코와 관련해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나머지 기업 중 금감원이 자율조정 합의를 권고한 추가 기업에 대해서는 은행협의체 참가를 통해 사실관계를 검토해 적정한 대응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이에 따라 키코 분쟁조정 관련 6개 은행의 결정이 모두 내려졌다. 산업은행, 씨티은행이 조정안을 거부한데 이어 신한, 하나, 대구은행까지 거부하면서 우리은행만 유일하게 조정안을 수용하게 됐다.  

 


◇ 키코-라임, 다른 결정 나오게 된 이유는? 

 

인사말 하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YONHAP NO-2321>
2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2020년도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키코와 라임 배상에 대해 엇갈린 결정이 나온 배경에는 ‘배임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키코는 계약 체결일로부터 10년이 넘어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시효가 지났다. 또 이미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이 난 만큼, 법적 근거 없이 분조위의 권고를 따르게 되면 은행의 주요 주주들이 ‘배임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해서 있어왔다. 금감원 분조위 배상권고는 일종의 화해권고일 뿐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앞서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은행법 제34조의2에 대해 금융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이 규정은 은행이 은행 업무(부수·겸영업무 포함)와 관련해 ‘정상적인 수준’을 초과해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불건전 영업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이에 금융위는 “은행이 일반인이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키코 피해기업에 대해 보상을 지불하는 것은 은행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 금융권의 키코 배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은행들은 배임 우려를 더 큰 것으로 보고 배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임의 경우는 배임 우려를 감안해 적정선에서 선지급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키코와 달리 라임은 사태가 불거진지 얼마 되지 않아 법적인 절차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라임자산운용의 자산현금화 계획이 5년동안 이행될 예정이고, 조만간 배드뱅크가 출범한다. 이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법원 소송 등이 예정된 수순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아직 사건이 판결나지 않은 상황에서 원금의 50% 수준으로 선보상에 나선 것은 향후 50% 이상을 회수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선보상 방안의 경우 가입금액의 50%를 고객들에게 먼저 지급한 후, 펀드 자산회수와 금감원 분조위 결정에 따라 사후 정산을 거친다는 조건이 달리면서 배임 우려가 상당히 해소됐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에 대부분의 은행이 금감원의 키코 배상안을 거부함에 따라 윤석헌 금감원장과 금감원의 입장은 난처하게 됐다. 윤 원장은 2017년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시절 금융위에 키코 재조사를 요구했고, 2018년 5월 금감원장 취임 직후 키코 문제를 원점에서 재조사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최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윤 원장은 “(키코 문제는) 10년 이상 끌어서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면서 “이걸 정리하고 가는 게 한국 금융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정윤 기자 jyoo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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