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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키덜트라서 다행이야…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키티,스누피,레고,브레드 이발소등 '내 사랑'캐릭터들
국내 키덜트(키드+어덜트)족 지난해 1조 6000억원까지 성장

입력 2021-10-26 18:30
신문게재 2021-10-27 11면

책상위 캐릭터
나의 최애 캐릭터들. 디즈니, 마블, 키티, 지브리등 수많은 피규어들이 책장 위에 올려져 있다.(사진=이희승기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 되면서 반가운 일이 생겼다. 결혼이나 취업 등으로 해외에 체류했던 지인들이 하나 둘 들어왔기 때문이다. 길어봤자 1년 정도면 사그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바이러스 전쟁은 타지에 있는 사람들의 향수병을 더욱 자극하는 촉매제가 됐다. 싱가포르에 법인이 있는 글로벌 여행사에 다녔던 후배는 재택근무를 1년 정도하다가 결국 퇴직을 하고 돌아왔다.

 

자체적으로 인력을 줄이기도 했지만 당시는 한국의 신규확진자 수가 하루에 고작(?) 200명도 안되는 K방역으로 한참 화제가 됐던 시기라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 남편은 아직 현지에 남았지만 부부끼리 다시 국내 취업을 알아보고 있노라고 했다. ‘헬조선’을 저주하며 떠났지만 역시 한국 만한 곳이 없다며.

 

몇 년 만에 만난지라 수다가 길어졌다. 최근의 일상과 결혼 당시의 에피소드, 부부 연애사 등 그렇게 타고타고 올라가 15년 전 나의 생애 첫 집들이가 소재로 등장했다. 후배는 경리단길의 방 두개짜리 빌라를 둘러보다 두 눈을 의심했다고 했다. 화장실이 그야말로 핑크 천국. 휴지부터 변기커버, 욕실화와 수건, 양치컵까지 키티가 박혀있는 것을 보고 “얼음이 됐다”면서 “이제는 말 할 수 있다”고 웃었다.

 

후배 M은 “보이시한 외모에 엄하고 냉정해서 무섭기만 한 선배에게 온기를 느낀 첫 순간”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키티사랑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워낙 유명해서 새로울 게 없었는데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은 한결같이 놀라워했다.



그렇게 모으기까지 여정도 눈물겹다. 지금처럼 라이선스 시장이 자리잡기 전까지는 ‘헬로우 키티=일본산’이 정설이었다. 강남 고속 터미널이나 동부이촌동의 수입상가 몇 군데서만 일본에서 건너온 소소한 집기류를 팔았다. 그러다 지금은 스타필드 코엑스점이라 불리는 젊은이들의 핫플이지만 당시에는 삼성 무역센터로 불리는 곳에 산리오 매장이 들어섰다. 첫 직장이었던 테헤란로의 추억을 곱씹으며 월급날마다 신이 나서 산리오 매장에서 다양한 문구류나 그릇, 잠옷 등을 보는 재미는 정말 쏠쏠했다.

그렇게 나의 첫 캐릭터로 채워진 화장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취향은 변하는 법. 다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아이도 태어나고 세월이 흘렀다.

두 번째는 내 인생 책이기도 한 ‘피너츠’다. 당연히 스누피를 연상하겠지만 내가 가장 애정하는 인물은 라이너스다. 1950년 처음 신문에 연재된 피너츠는 이후 대중 문화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주인공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은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캐릭터들로 자리매김했다.

가끔 사람보다 더 심오하고 심지어 성격도 좋은 스누피의 대사에 영혼을 위로받는다. 그런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총망라한 ‘찰리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이야기’이 출간됐다.

이들은 국경과 인종, 세대를 뛰어넘는 예술적 보편성을 다루는데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곱씹을 명대사들이 많다. 예를 들어 스누피가 인간 친구들과 경기를 하고 진 뒤 분한 마음보다는 마음속으로 “세상사 다 그런거야”라고 읊조리는 구절이다.  

 

찰리브라운과 그의 친구들이야기
찰리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 - 웰컴 투 피너츠 월드!|앤드류 파라고 |2만 8000원.(사진제공=더 모던)

세계 75개국에서 21개 언어로 번역돼 무려 3억 5000만 명에 달하는 독자들이 찰리와 스누피를 보며 울고 웃었다.


당연하게도 주인공인 스누피를 내세운 여러 티셔츠와 텐트, 식기 심지어 이불까지 나왔지만 내 사랑 라이너스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사실 인류는 라이너스의 애착담요에 상당부분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미처 다 크거나 위로받기도 전에 어린이에서 ‘어른이’가 돼버린 수많은 성인들에게 라이너스의 담요는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일등공신이랄까.

최근 빠져 있는 건 단연코 ‘브레드 이발소’다. 제목에서 연상되다시피 주인공은 ‘빵’이고 직업은 이발사다. 가게를 방문하는 디저트들을 맛있게 꾸며 주는 게 브레드의 일이다. 여기에 어리바리한 조수 윌크는 귀여운 외모와 더불어 정이 많고 눈치는 없는 캐릭터다. 회계를 맞고 있는 초코는 흑인을 연상 시키고 거리의 유기견에서 이발소의 마스코트가 된 반려견 소시지는 실제로 후랑크 소시지와 비슷해 아동 애니메이션이 추구하는 문화적 다양성을 귀엽게 소화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시대적 이슈와 동심을 자유롭게 오가는 지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달인코너나 맛집 소개가 어떤 악마적 편집과 뒷돈으로 채워지는지부터 건물주인 나쁜 과자 감자칩의 이기심, 동물권을 지지하는 베이글 등 보면 볼수록 빠져 드는 ‘맛있는 것들’이 등장한다.

지난해 시즌 2 공개 후 케이블TV 시청률 1위, IPTV 애니메이션 인기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국내 포털 검색 순위에서도 ‘뽀로로’와 ‘핑크퐁’을 제치고 애니메이션&캐릭터 분야 1위에 올랐는데 그 비결은 아이들도 있지만 부모들의 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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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콜라보한 ‘브레드 이발소’는 각종 빵과 우유, 김밥 등 각양각색의 음식으로 출시 큰 사랑을 받았다.(사진제공=CU)

 

한 맘 카페와 프로그램 팬 카페의 게시글을 보면 “아이들 보여주다 내가 빠져서 ‘엄마 까투리’를 틀어달라는 딸을 설득해 무한반복하고 있다” “케이크 공주가 주인공에게 고르라고 한 포르셰 918 스파이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부가티를 보며 대리만족한다”는 엄마아빠들의 추종글(?)이 상당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5000억원대에서 지난해 1조 6000억원까지 성장했고 최대 약 11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어른(Adult)이지만 취향은 아직 어린이(kids)를 벗어나지 못한 키덜트(kidult)족이 유통업계 큰손이 된 지는 오래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여러 캐릭터들과 콜라보레이션한 제품들이 날개돋힌 듯 팔려 나가는 건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기업과 협업해 내놓는 제품도 있다.

젊은이들의 감성을 겨냥한 제로퍼제로(ZERO PER ZERO) 디자인 스튜디오와 콜라보레이션 라인업을 출시한 써모스의 보온 제품들은 쌀쌀해진 제품과 함께 대중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한정판이나 고가의 제품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는 키덜트족은 시장 전체의 매출 향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키덜트
올 여름 출시된 비스포크의 디즈니 컬렉션.(사진제공=삼성전자)

 

지난 여름 삼성전자가 출시한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입힌 비스포크 무풍에어컨은 디즈니가 ‘팀 비스포크’(TEAM BESPOKE)에 합류하면서 만들어졌다. 팀 비스포크는 삼성전자가 각 분야의 전문 업체들과 함께하는 오픈협업시스템으로 운영되며 디자인·테크·콘텐츠 파트너로 함께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겨울왕국2’ ‘토이스토리’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다양한 캐릭터를 적용한 무풍에어컨 벽걸이 와이드 ‘디즈니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총 4000여대 한정으로 출시돼 완판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18일 레고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년 6개월 사이 국내 레고스토어 매장은 7개에서 15개로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레고코리아의 작년 매출은 1521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레고그룹이 해리포터, 마블 시리즈 등 성인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와 협업한 고가 제품을 내놓으며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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