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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겨울아우터의 로열 패밀리, 더플코트의 화려한 귀환?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제발 나를 '떡볶이 코트'라 폄훼하지 마세요

입력 2021-12-21 18:30
신문게재 2021-12-2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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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폴레이디스가 선보인 더플코트.(사진제공=빈폴)

“이 가방은 내가 죽을 때 같이 묻어달라.”

예전의 다이어리를 보면 원하던 가방을 샀을 때의 기쁨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이제는 어딜 가도 즐겁고 설레는 건 잠깐이다. 그런 내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이먹음을 느끼는건 나만의 느낌일까.

중년이 되니 감정에 무뎌짐을 느낀다. 새 옷을 사고 어딘가를 가고 뭔가를 먹을 때의 환희가 확실히 줄었다. 그런 중에도 여전히 설레는 존재가 있다. 바로 더플코트다. 스무살 때 “더플코트를 입은 남자는 뭐든 용서가 된다”고 말했을 때 당시 친구들은 유치하다고 놀려댔다. 30대에 들어서도 더플코트에 대한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요즘 말로 치면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과인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옷을 구매한 시기인 이 때 색깔과 브랜드별, 시즌별로 더플코트를  쟁였음(이라고 쓰고 ‘돈지랄’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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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딩턴’의 주인공이 입은 더플코트.(사진제공=이수C&C)

 

한때 ‘떡볶이 코트’라고 불렸던 이 옷은 벨기에 앤트워프 남쪽의 작은 도시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더플’이라는 도시에서 생산한 거칠고 두껍고 보온성이 좋은 천을 북유럽 지방 어부들이 방한복으로 입었다는 것. 북유럽의 거친 날씨 때문에 어부들은 두툼하고 활동성이 편한 모자 달린 옷이 필요했는데 늘 장갑을 끼고 일한 그들이 코트를 쉽게 여밀 수 있는 디자인에서 유래됐다는 게 패션학자들의 이야기다.

바로 이 단추가 ‘떡볶이’라는 애칭을 가진 ‘토글’이다. 96학번이던 내가 학창시절 겨울에 교복에 맞춰 입은 외투로는 파카 혹은 백화점 여성복 코너에서 파는 끈 달린 코트가 전부였다. 추억의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7’을 보니 내가 졸업한 후에 ‘교복=더플코트’란 공식이 생겨난 듯 하다. 몇 년 전 큰 조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호기롭게 더플코트를 사주겠다고 하자 정색을 하며 “요즘 누가 떡볶이 코트를 입냐”고 한걸 보면 요즘애들은 확실히 더플의 세계를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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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사진제공=CJ ENM)

 

기억을 더듬어 보면 더플코트에 대한 사랑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그는 평소에도 이 코트를 즐겨입고 종종 소설속 주인공도 더플코트를 입을 모습으로 묘사된다. 사실 더플코트야 말로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옷이다. 포멀한 정장에 더플코트를 매치하면 클래식하기까지 하다. 나는 추운 겨울 흔한 패딩이 아닌 더플코트를 입은 남자를 보면 설레기까지 하다. 약지에 반지라도 끼고 있으면 ‘아내가 혹은 여친이 한 센스 하는데?’라는 칭찬이 절로 나올 정도다. 배가 나와도 머리가 벗겨져서 입으면 또 어떤가. 더플코트야 말로 배도 가려주고 민머리를 귀엽게 만들어주는 마성의 옷이다.

모든 옷이 그렇지만 더플코트야 말로 천의 소재에 따라, 모(울)의 비중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 말인즉슨 어떤 소재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옷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적어도 더플코트에 있어서만큼은 ‘가볍고 따듯하다’는 공식은 통하지 않는다. 디자인만 더플코트인척 하는 ‘폴리에스테르 70% 레이온 30%’의 재질은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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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이 셋 중 하나를 구매했다는 사실이다. 과연 어떤색일까? (사진=글로버올 홈페이지 캡쳐)

 

돌고 도는 패션업계에서 더플코트의 디자인은 엇비슷하지만 단추나 색감에는 대 변화가 일고 있다. 소뿔 모양의 단추가 사라지고 끈의 여밈이 도드라지는 식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각종 결혼식 및 시상식, 화보 등에서 더플코트를 세련되게 매치해 입은 모습이 소개되는 것을 보면 유행은 돌고 도는 게 분명하다. 

최근 유니클로가 질 샌더와 협업해 내놓은 제품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도 더플코트다. 오프라인 매장에는 입고 자체가 안될 정도로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지난달 패션편집숍인 W컨셉에 따르면 올해 더플코트의 판매량은 동년대비 600% 상승했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30·40에는 추억을, 10·20에는 새로움을 주는 것”이라며 “이전과는 길이 등이 조금씩 다른 형태로 패션 업계 뉴트로 바람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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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색깔이 미묘하게 다른 더플코트들.(사진=글로버올 홈페이지 캡쳐)

 

그래서일까. 한동안 자제하고 있던 더플코트 사랑은 올해 다시 부활했다. 마음 속 불변의 더플코트 1위 브랜드는 글로버올 제품. 영국구매대행을 통해 일찌감치 한벌 도착한 상태다. 현지 구매액과 옷에 대한 과세로 한국 세관에서 15만원이 넘는 세금을 납부하라고 연락이 왔지만 기꺼이 빛의 속도로 입금을 완료했다. 

혹자는 말한다. “더플코트가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다르냐”고. 같은 빨강이어도 과거 백지영이 기자회견때 입고 나와 품절된 더플코트와 올해 버버리에서 나온 레드 더플코트는 엄밀히 다르다. 한겨울 펑펑 눈이 내리길 기도하는 아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날씨가 추워질 수록 더플코트를 입고나갈 날이 많아질테니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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