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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문화강국'연 故 이어령 전 장관 영면… "애초에 있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별별 Tallk] 문단 권력에 맞섰던 우리시대 최고 지성

입력 2022-03-03 18:00
신문게재 2022-03-04 11면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연합)

 

지난달 26일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영결식이 2일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엄수됐다. 향년 89세.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유족 측은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 통증 없이 돌아가셨다. 유언은 따로 남기지 않으셨다”고 밝혔다.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말기 췌장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마지막에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집필에 몰두했다. 

이 전 장관은 문학평론가로 가장 먼저 이름을 떨쳤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우상의 파괴’라는 글을 써 문단 권력을 정면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30여년간 이화여대 강단에서 국문학도를 가르치기도 했다. 문화예술 행정가로서의 존재감도 뚜렷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회식·폐막식을 총괄 기획, 한국 전통의 ‘여백의 미’를 살린 기획이 개회식에서 등장한 굴렁쇠 소년은 지금도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평가된다.

특히 고인은 6공화국 때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함에 따라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에 임명됐다. 국립국어원을 세워 한국어의 성체를 견고히 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해 예술 영재의 터전도 닦았으며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 계획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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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장(葬)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문화예술계 인사 2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장례위원장인 황희 장관은 조사를 통해 “고 이어령 장관님은 불모지였던 문화의 땅에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워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주셨다”며 “그 뜻과 유산을 가슴 깊이 새기고, 두레박과 부지깽이가 되어 이어령 장관의 숨결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임 문체부 장관들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2008년 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재임한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은 “이어령 장관은 어떻게 보면 우리 문화의 상징이었다”며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 마음이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7년 6월부터 2019년 4월까지 문체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민주당 의원도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다”며 “지성을 대표하시는 분이셨고 문학하시는 분으로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는 그런 존경할 만한 분이셨다”고 했다.

노년의 삶은 작가로 집중했던 날들이었다. 출판계에 따르면 이어령 전 장관의 책들은 별세전 계약한 책만 30여권에 달한다. 지난 1월 24일 출간된 대화록 ‘메멘토 모리’는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됐다. 이 시대의 지성이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마지막 질문에 답한 책이다. 신과 종교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24가지 질문에 답하며 그는 코로나19가 찾아온 세상을 “코로나의 창궐에 대해서는 죽음을 통해 황폐화된 개인을 응시하게 된 것이며 죽음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영결식이 열린 2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 영상에는 ‘대한민국의 큰 스승 이어령 전 장관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라는 추모 문구와 함께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등 고인의 생전 메시지로 마지막 길을 비췄다. 유해는 충남 천안공원묘원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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