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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멀리 떨어져야 '제맛'인 건 가족과 요리의 공통점 일지도…

[이희승의 영화 보다 요리] 영화 '남극의 쉐프' 대왕 새우튀김
팔뚝만한 새우튀김이라면 '남극'쯤이야!

입력 2024-05-23 18:00
신문게재 2024-05-2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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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극 중 캐릭터들이 먹는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사진제공=스폰지이엔티)

 

사람이 살 온도가 아니다. 평균 기온 영하 53인 남극은 바이러스 조차 생존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지만 인간은 이곳에 기지를 세웠다. 영화 ‘남극의 쉐프’는 지난 2009년 개봉해 당시 수많은 오타쿠들의 성지이자 연례행사였던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 TASTE OF JAPAN’ 최고 흥행작으로 불렸다. 실제 남극관측 대원으로서 조리를 담당했던 니시무라 준의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 요리인’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지금은 ‘요노스케 이야기’ ‘모리의 정원’등 힐링 무비의 대가로 불리는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데뷔작으로 국내 팬들에게 ‘일본의 중년 원빈’으로 불리는 사카이 마사토가 주연을 맡았다. 그가 맡은 니시무라는 평생 남극에 가는 게 꿈이었던 선배 요리사의 갑작스런 오토바이 사고로 ‘파견’돼 가족과 헤어지는 불운(?)을 겪는 가장이다.



일본 해양청의 요리사로 나름 넘버2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집에서는 아내가 만든 눅눅한 닭튀김을 불평없이 먹어야 하는 신세다. 젖먹이 아들과 유치원생 딸을 키우며 독박육아 중인 아내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집에서까지 요리를 하며 지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180도에서 두번 튀기는 게 튀김의 국룰”이라고 은근슬쩍 말해보지만 영 통하질 않는다.

‘남극의 쉐프’는 머리가 떡진 8명의 중년 남녀가 주인공이다. 좁은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는 옆에서 용변을 보는 식이다. 물이 귀한 곳이라 그나마도 함부로 씻을 수 없다. 일본에서 녹화해온 체조영상을 보며 단체로 운동을 한 뒤 니시무라가 만든 전형적인 일본 가정식을 앞두고 오늘 해야할 일을 간단히 브리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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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세 가츠히사, 도요하라 고스케, 고라 겐고 등 감초 배우들의 명연기도 볼만하다. (사진제공=스폰지이엔티)

 

울며 겨자 먹기로 온 남극기지의 식사는 사실 여의치 않다. 냉동식품이거나 통조림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기압이 낮은 탓에 물은 85도에서 끓는다. 라면을 먹어도 속은 익지 않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남극의 쉐프’에는 빈속에 보면 안될 음식이 한가득이지만 그 중 백미는 ‘에비 후라이’라 불리는 새우튀김이다. 정확히는 전임자가 미쳐 요리하지 않은 왕새우를 발견한 동료의 제보로 비극은 시작된다. 자신과 달리 이미 남극 생활에 찌든 연구원과 의사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의 일본인들은 니시무라 보다 더 큰 향수병에 젖어있다.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냉동으로 발견한 새우는 회로 먹어야 제맛인데 다들 튀김옷을 입은 새우를 원한다. 손가락 크기의 새우를 튀겨야 맛인데 랍스타급 굵기의 왕새우를 다뤄보지 않은 그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화면이 바뀐 ‘남극의 쉐프’ 속 새우튀김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팔뚝만한 굵기에 꼬리까지 손바닥만한 크기의 새우는 일명 닭새우로 불리는데 대원들의 실망어린 눈빛이 화면가득 잡힌다. 애써서 요리했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역시 회로 먹어야 했어”라는 타박 뿐이다. 요리하는 입장에서는 기운이 빠지지만 니시무라는 제한된 재료 속에서 최대한 ‘집밥’의 맛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실 영화 속 음식들은 소박함과 거대함을 오간다. 프랑스 코스 요리 푸아그라와 과학적 지식을 동원한 수타 라면, 앞서 밝힌 새우튀김과 두툼한 직화 스테이크가 그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한 진심이 깔린 음식이 영혼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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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적인 입장에서 크기를 무시했던 대원들의 난감한 상황을 코믹하게 다룬 영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스폰지이엔티)

 

촬영은 원작자 니시무라 준의 고향 홋카이도의 아바시리에서 이루어졌는데 하얀 눈과 파란 하늘의 대비가 실제 남극 로케이션을 방불케한다.

사실 한국에서 새우의 제철은 가을이다. 해양수산부는 가을에 먹으면 배로 맛있는 제철 수산물로 삼치와 큰 새우를 뜻하는 대하를 선정했다.

대하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바다에서 서식하는데 성미가 급해 금방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마다 거리 곳곳의 수족관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새우는 자연산 대하가 아닌 양식인 흰다리 새우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대하는 이마에 있는 뿔이 코끝보다 길게 나와 있고 더듬이가 흰다리새우보다 길다. 수염은 몸통 길이보다 길며 다리는 붉은색이고 꼬리 끝부분이 녹색이다.

새우는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미 전세계적인 열풍을 끌었다. 특히 1968년 출범한 미국의 레드랍스터는 ‘무한리필’ 서비스로 한때 매출 순위가 미국 내 24위에 올랐고 팝스타 비욘세의 노래 ‘포메이션’(Formation)의 가사에 포함됐을 정도다. 미국 551개, 캐나다 27개, 멕시코·일본·에콰도르·태국에 27개의 점포를 두며 승승장구했지만 지구 온난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의 여파로 지난 20일(현지시간)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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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을 요리해주기만 했던 니시무라는 영화의 말미 가족과 햄버거를 먹으며 “맛있다”를 연발한다. (사진제공=스폰지이엔티)

 

국내에서는 배양육 스타트업 ‘셀미트’가 명품 수산물로 꼽히는 독도새우를 이용한 세포배양 식품으로 대체육 시장에 진출한 상태다. 세포배양 독도새우를 활용한 시제품과 메뉴 개발을 마치고 본격적인 판매에 앞서 식약처 승인 절차만을 남겨둔 상태다. 갑각류 세포 배양육은 이번이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어쨌거나 ‘남극의 쉐프’는 제목에 충실한 영화다. 영화는 식사 때마다 안내방송으로 대원들에게 알리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침샘을 자극한다. 연어와 성게알, 장조림을 넣은 주먹밥과 주변이 온통 얼음이어서 가능한 초대형 통구이 스테이크, 수 천년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만년설에 포도주스를 뿌려 즉석에서 먹는 즉석빙수 등이 입맛을 돋운다.

기상학자, 대기학자, 기상학자와 의사, 통신 담당과 연구 대학원생 등 다양한 직업군의 고립된 삶은 결코 외롭지 않다. 그 중심에는 정작 가족에게는 심드렁했지만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니시무라의 자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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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70도가 넘은날 대원들은 이벤트로 밖에서 팬티 차림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고립과 외로움, 스트레스로 점철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사진제공=스폰지이엔티)

 

공통점이라고는 그저 같은 성별이라는 것 뿐인 이들은 모두가 잠든 밤, 야식으로 라면을 탕진한 히로시 대장의 비밀이 드러나며 전환점을 맞는다. 여기에 지역적인 특성으로 해가 뜨지 않는 2주 동안 예민해진 대원들의 싸움이 기름을 붓는다. 오랜 해외 생활에서 유독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 욕구를 느낀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일본인의 라면중독은 갈등과 결속의 결과물로 ‘남극의 쉐프’를 아우른다.

이 역할을 제안받은 사카이 마사토는 체중조절은 물론 요리를 따로 배우며 역할에 매진했다는 후문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듯해지는 음식들은 ‘카모메 식당’ ‘안경’‘심야식당’으로 유명한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오미가 맡았다.

 


◇ 튀김의 맛 정하는 '타르타르 소스'

- ‘타르타르 소스’는 사전적으로 마요네즈에 레몬즙, 다진 피클, 양파, 달걀 등을 적절한 양으로 조합한 소스지만 어떤 튀김과도 잘 어울린다.
- 해외에서는 케이퍼, 허브가 들어간 매콤한 맛으로 시작됐다.지금은 깔끔한 맛이 대세. 새우튀김과 최고의 궁합으로 불린다.
- 요리 고수들은 파 혹은 고수나 파슬리 등을 넣어 신선함을 더한다.
- 대부분 생선튀김이나 일식집에서 주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돈가스에도 어울린다. 매운 음식에도 얹어먹으면 의외의 감칠맛이 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오이같은 존재다. 
- 떡볶이나 라면에 치즈를 넣어 먹는 걸 좋아한다면 강추!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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