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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명품백을 살때도 하지 않았던 '오픈런'을 '빵'을 위해 뛰었다!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16년만에 출시된 추억의 포켓몬 빵

입력 2022-05-05 18:30
신문게재 2022-05-06 11면

포켓몬빵 구매 대기줄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앞에서 시민들이 포켓몬빵을 구매하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

 

“먹으려고 사는 거예요? 모으려고 사는 거예요?”

말에는 짜증이 섞이고 눈에는 한심함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대부분 등교한 9시 반 즈음 아들이 곧잘 ‘득템했다’고 귀띔한 동네 마트를 찾았다가 당한 봉변(?)이었다. 나는 국진이 빵 세대도 아니고 핑클의 광팬도 아니었기에 ‘빵=스티커’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빵’은 다르다. 시작은 ‘집돌이’인 아들이 매일 8시 반이면 동네 편의점 순례를 나서면서였다. 학교에서 ‘띠부띠부씰’(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이 인기라고 했다. 한곳에 줄 서는 사람이 많아서 빵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여러 군데를 돌아야 한다는 말에 두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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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넘치는 품절 안내문. (사진=이희승기자)

 

문제는 ‘하늘의 별따기’인 빵 구하기에 동심이 다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대부분은 아니었겠지만 “포켓몬 빵 있냐?”는 말을 하루에도 수백번 씩 듣는 입장에서 초딩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치고 있으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빵을 구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이들의 언행을 보면 기가 찼다. “없어요” 정도는 애교다. “저리가 있어라” “기다리려면 뭐라도 사 먹던지” 등 하대도 이런 하대가 없다.

늦둥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곤 잘 가는 집앞 편의점에 들렸다. 그간 사간 맥주캔만 밟아 쌓았어도 11층 높이는 쌓을 수 있는 단골집이었다. “포켓폰 빵을 구할 수 있냐”고 하자 “그것 때문에 죽겠다”라는 하소연이 돌아온다. 초등학교 앞에 있는 탓에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몰리는데 할당되는 건 하루에 많아야 두개라고 했다. 돈을 더 드릴테니 따로 빼 놓을 수 있냐고 읍소도 해봤지만 단호하다. 빵이 들어오는 시간이 퍼지면서 입고 1시간 전부터 기본 다섯 명이 매장에 앉아 대기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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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지만 다른 각 매장별 포켓몬 빵 안내문. 이런 기본적인 배려가 판매점의 호감도를 높인다는 걸 각 브랜드는 알까?(사진=이희승기자)

 

혹시라도 빵을 빼거나 예약을 받았다고 하면 바로 싸움이 난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먼저 온 학생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빵이 도착하는 바람에 부모들까지 와서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있었단다. 당시 시간은 오전 9시 20분. 주문서를 보던 단골 주인은 11시쯤에 새로 나온 ‘앙버터 빵’ 1개가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사가라는 눈치였다.

동네를 둘러보니 사정은 심각했다.  편의점 영업 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오픈런’, 물류차를 쫓는 ‘물류런’ 현상은 기본이다. 재출시 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켓몬빵을 사기 위한 부모들의 노력은 상당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첫날 들은 정보덕에 10시 30분부터 매장에서 대기한 후 첫 포켓몬 빵을 살 수 있었다. 물건을 내려주는 기사분에게 어느쪽으로 가시냐고 물어보니 “근처로 간다”는 짤막한 대답이 돌아온다. 하도 많이 들은 말이라 대답할 힘도 없어보였다. 머리를 굴려 근처 CU편의점을 훑었다. 두 번째 방문한 곳은 허탕. 세 번째 도착한 곳은 분명 빵이 보이는데도 “예약제니 휴대폰 번호를 남기라”는 말이 돌아왔다. 3일 정도는 기본으로 기다린다는 말에 맹모삼천지교도 하는 판국에 이 정도 개인 정보쯤은 흘릴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이틀 만에 온 빵은 유통기한이 하루 남은 거였다는 건 (안)비밀이다. 그나마 중간에 포기하신 분이 있어 차례가 빨리 돌아온 거라는 말에 위안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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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백을 살 때도 하지 않았던 ‘오픈런’으로 구한 포켓몬 빵. 맛도 훌륭했다. 다시는 사지 않을테지만.(사진=이희승기자)

 

그 와중에  평소에 잘 연락하지 않던 성당 구역장님이 편의점을 운영하신다는 게 생각났다. 안부를 전하며 슬쩍 물어보니 그야말로 대란이란다. 매장에 손님이 없어야 가능하다는 말에 물류차가 들어오는 시간만 얻고 전화를 끊었다. 시간 맞춰 가보니 저녁 9시 반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모습은 없다. 다만 학부모처럼 보이는 사람 두명이 팔짱을 끼고 초초하게 서 있다. 그날 들어온 빵은 세개. 아쉽게 탈락.

며칠 편의점 순례를 하다 보니 아침에 들어오는 빵과 저녁에 들어오는 빵의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도 알았다. 저녁에는 초코롤이나 치즈케이크가 배달됐다. 아이들이 빵을 사는 이유는 맛 보다도 안에 들어있는 159종의 띠부실이었다. SPC삼립이 2006년 단종한 제품을 16년 만에 다시 내놓으면서다. 당시 어린이였던 주요 구매자들의 추억을 건들이며 2030성인들까지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한 술 더 떠 띠부실을 중고거래에 내 놓고 사고 팔기도 한다. 실제 아들 역시 희귀 캐릭터인 ‘뮤’가 나오자 “4만5000원 짜리”라고 외쳤다. 혹시나 해서 올려봤더니 실제 구매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빵이 1500원인데 이 가격에 팔리면 분명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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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비상식량도 이렇게 든든하지 않았던 포켓몬 빵 세개를 구한 날. (사진=이희승기자)

 

이제는 아들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애가 닳았다. 집 근처 주요 편의점과 슈퍼에 동선을 그리고 입고시각을 기록했다. 최단 동선을 짜는 게 중요했다. 맘 먹고 한 구역을 돌면 운이 좋은 경우 4개나 득템(?)할 수 있었다. 주말 오전은 빵을 구할 수 있는 황금 시간대다. 남편은 이런 내모습에 “예전에 ‘노(No)재팬’으로 뭉쳤던게 엊그제인데 포켓몬 로열티가 얼마인줄 아느냐?”고 혀를 찬다. 일본 포켓몬 컴퍼니에 돌아가는 금액은 통상 10% 내외라고 알려져 있기에 뜨금했다. 이후로도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났다. 자기 시간대가 아니어서 언제 빵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알바생, 내가 먼저 기다렸다는 말에도 “내가 먼저 집었으니 내 것”이라며 눈을 부라리던 대학생, “먹고 싶어서” 구한다는 말에 따로 빼 놓은 빵을 손에 쥐어주시던 야간 근무자 등. ‘빵 하나가 뭐길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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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를 거치고, 건조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포켓몬 띠부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품질은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사진=이희승기자)

 

결정적인 사건은 세탁실에서 터졌다. 주말 체육을 갔다 온 아들이 그간 모은 띠부실이 없어졌다고 애를 태웠는데 결국 건조기 안에서 발견됐기 떄문이다. 주머니를 확인 안한 엄마 탓을 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싹 말라 분리된 띠부실을 보더니 “이 참에 다 붙여버리고 다시는 사지 않겠다”는 말이 돌아온다. 행여나 닳을까, 학교에 가지고 다니면 없어질까 가슴 졸였는데 도리어 마음이 편하다고. 

그러고 보니 몇년 전 품절 대란을 일으킨 허니버터칩이 생각난다. 지금은 매장에 보여도 그 옆의 새우깡을 사지, 이 과자를 집어들지 않는다. 2011년 라면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꼬꼬면은 어떤가. 연간 500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던 이 라면은 결국 판매라인을 대거 늘렸지만 판매량이 급감하며 사라졌다. 어쩌면 포켓몬도 2040년 정도에 또다시 유행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있을지 없을지 모를 손주를 향해 또다시 ‘오픈런’하지 않을 것임을 이 지면을 빌어 약속한다. 그때까지 나의 관절이 쌩쌩하다면 말이 또 다르겠지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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