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비바100] 망했다더니, 잘만 사네! 애플TV+ '우린폭망했다'

[#OTT] 애플TV+ ‘우린폭망했다'

입력 2022-05-11 18:00
신문게재 2022-05-12 11면

[편집자 주] #OTT는 대세로 자리잡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화제작이나 숨겨진 명작들을 문화부 기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우린폭망했다2
'우린폭망했다' 중 모두의 선망이었던 애덤과 레베카 부부. 고생하고 자라 꿈을 현실화 하는 게 절실했던 남자와 풍족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질 몰랐던 여자의 만남은 그렇게 ‘위워크’를 탄생시켰고 결국 말아먹었다. (사진제공=Apple TV+)

 

앤 헤서웨이와 자레드 레토를 보려고 켰지만 한국배우 김의성에 시선이 꽂힌다. 애플TV의 화제작 ‘우린폭망했다’는 실존인물인 애덤 뉴먼(Adam Neumann)과 그의 아내가 어떻게 ‘위워크’라는 희대의 기업을 창업했는지를 다룬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위워크’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한때 애플의 탄생 이후 가장 강력한 유니콘 기업으로 추앙받았던 ‘위워크’는 공유사무실을 통해 기업을 키워나갔다.

무제한 맥주와 핑거푸드, 캐주얼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는 기본이다. 고정자리는 없지만 자유롭게 사무실을 함께 쓰는 곳이다. 내가 낸 사업 아이템이 만약 색깔있는 마스크라고 했을 때 옆 사무실에는 구체적인 도안을 도와줄 디자이너가 있고 건너편에는 배달을 담당할 회사 관계자가 있는 식이다. 이들은 모두 한 곳에 소속된 직원은 아니지만 ‘각자 그리고 또 같이’ 일을 하는 관계가 된다.

PokmangUntitled-1
'우린폭망했다' (사진제공=Apple TV+)

업무와 놀이, 커뮤니케이션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먹혔고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우린폭망했다’의 시작은 ‘누가 그런 걸 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기옷, 힐과 운동화를 결합한 신발 등을 팔러 다니던 주인공 애덤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훗날 위워크 임원이자 브랜드 이미지를 전담하게 되는, 그와의 사이에 네명의 아이를 갖는 레베카 역시 첫 만남에서는 “당신 사업은 실패 할 수 밖에 없다”고 일갈할 만큼 볼품 없었다.


어린시절 이스라엘의 공유농장인 키부츠에서 자란 애덤은 본능적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꿈꿨을 것이다. 8부작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거침없이 폭주하는 전반 부와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기에 절실하게 매달리는 후반부로 나뉜다. 

자신의 신념을 지지하는 레베카와 결혼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일단 지르고 보는’ 그의 사업은 점차 승승장구한다. 유대인 특유의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은 그가 ‘부동산 왕’으로 거듭나는 데 일조한다. 보수적인 뉴욕사회에서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여지는 것’에 대한 차이를 깨달은 그는 모두가 고개를 저을 때 전투적으로 돌진한다.

창업을 하고 투자를 받는 과정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도 있다. 훗날 공식적으로 “위워크에 투자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할 만큼 그의 흑역사로 남았지만 동시에 위워크가 미국을 넘어 전세계에 사무실을 여는 데 일조한다. 당시 모든 젊은이들은 박봉에 매일 새벽 3시까지 일해도 무료로 제공되는 콤부차와 유명 래퍼를 초대한 파티 그리고 세계를 선도해가는 ‘위워크’의 직원이라는 자부심으로 그 시간을 견뎠다. 

우린폭망했다3
영화는 주인공의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고 세세하다. 공동창업자인 미겔은 우유부단함의 극치다. 이런 점이 애덤의 독단적인 기질을 더욱 부채질한 건 아닐까. (사진제공=Apple TV+)

 

상장만 되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혜자스러운 주식수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미끼’였다. 고작 16살의 나이에 이곳에 입사한 동양인 직원은 10년 가까이 일하며 8만여주의 주식을 모았을 정도다. 애덤 뉴먼은 기분이 좋을 때 마다 직원들에게 100주 이상씩의 보너스를 줬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데 천재적이었다.

 

‘우린폭망했다’는 그런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여동생의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불려나온 직원이 독설을 퍼부으며 관두려하자 갑자기 일본에서 직송한 와규를 케이터링해 들이밀며 “힘들었지?”하는 식이다. 

눈치없는 직원은 “에너지가 나쁘다”며 해고하기 일쑤. 능력있는 타 브랜드의 CEO를 영입해와서는 사내에서 존재감이 높아지자 가차없이 잘라버린다. 흥미로운 신이 대부분이지만 ‘안되면 그냥 사버리면 돼’라는 주인공들의 마인드는 ‘우린폭망했다’가 탄생한 이유를 가늠하게 만든다. 

우린폭망했다
이들은 여전히 이혼하지 않고(다른 재벌 부부들과 다르게) 그들만의 거대한 공동체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사진제공=Apple TV+)

 

극 중 “여자는 남자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레베카의 발언을 보도하려는 기자를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으로 무마시키는 장면에서는 우리나라 재벌을 비롯해 여러 기업들이 홍보 및 스카우트란 이름으로 기자를 데려가는 과정이 한눈에 파악될 정도다. 뒤로 갈수록 투자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는 투자 천재로 불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는 남편의 존재를 질투하는 아내의 분량이 많아지는 건 예정된 수순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뉴스를 통해 미리 알고 있는 결말을 세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실제로 ‘제2의 아마존’으로 거론되던 ‘위워크’는 상장을 앞두고 애덤 뉴먼을 내쫓고 몇년 뒤 초라하게 상장했다. 

사회에서 매장되는 건 기본이고 거의 회생 불가능해 보였던 애덤은 이사진의 고소와 직원들의 원망, 한때 든든한 뒷배였던 손정의의 경고에도 현재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이제는 수천 채의 아파트를 보유한, 눈에 안 보이는 유니콘이 아닌 실존 부동산을 거래하며 떵떵거리고 산다. 그런 결과를 알고 보는 ‘우린폭망했다’는 실제사건임에도 ‘한편의 영화’같다.

우린폭망했다1
극 중 김의성은 능숙한 영어와 일본어 사용으로 글로벌 배우로 한껏 날아오른 모습이다.(사진제공=Apple TV+)

 

CEO의 자질보다 괴짜 기질이 넘쳤던 한 남자의 몰락을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자레드 레토와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를 지지하는 앤 헤서웨이의 열연은 ‘우린폭망했다’를 보는 큰 즐거움이다. 그들이 엔딩에서 사해에 빠져 울부짖는 대사를 듣는다면 애덤과 레베카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는 것’이 결국 ‘돈’이었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자금 확보를 위한 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투자설명서의 일종인 S-1 등 알게 모르게 배우는 금융지식도 꽤 유익하다. 특히 앞서 말했지만 김의성의 출연은 ‘나는폭망했다’가 가진 신의 한수 격이다. 외국인들에게 ‘진짜 마사요시 손(손정의)이 아닐까’란 말을 들을 정도로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가 가슴을 후벼 판다. 오픈 2022.03.18 채널 Apple TV+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