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고 나면 이 지구상 어디에선가 실제로 남성 임산부들이 있을것만 같다.(사진제공=넷플릭스) |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공식 포스터.(사진제공=넷플릭스) |
자궁이 없는 남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설정은 꽤 현실적이다.
50년 전부터 남성 임신은 지구 어디선가 매우 드물지만 꾸준하게 등장해왔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안될 것도 없어 보인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아놀드슈왈제네거의 영화 ‘쥬니어’로 선보인 소재였으니까.
어쨌거나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 겪는 임신의 고통과 사회적 편견을 요즘 시대에 맞게 그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수염이 굉장히 빨리 자라고 회의 시간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우연히 들은 아기울음 소리에는 젖꼭지가 흥건하게 젖는다. 구토도 영 가시질 않는다. 그저 과음 때문이라고 생각한 켄타로는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생명을 잉태한다. 들어는 봤어도 정작 주변에서 본 적은 없던 남성 임산부가 된 것이다.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초반부는 능력있는 남자가 한 순간에 사회 소수자가 되면서 겪는 고민과 결단에 집중한다. 일이 우선이었던 그는 임신으로 자신의 쌓아온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키 역시 아이는 낳고 싶지만 육아엔 관심이 없었기에 순순히 중절동의서에 사인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간 스테레오 타입으로 무수히 반복되어온 ‘갑작스런 임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남녀의 성별만 뒤 바뀌었을 뿐 그들이 하는 대사는 판에 박힌 듯 똑같다. “남자가 임신이나 하고 말이야”라는 말은 애교 수준. “낳고 안 낳고의 결정은 내가 해” “수술 하는 데 같이 가줄까?”가 누구 입에서 나오는지를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임신을 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모유 분출(?)신. 작품의 세세한 소품과 설정이 몰입도를 더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
결국 아이를 낳기로 한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진 가정에 대한 환상으로 또다시 다투고 만다. 켄타로는 아이를 낳지 않은 아키에게 은근히 엄마로서의 모습을 바란다. 아키 역시 함께 키우기로 한 아이지만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모습은 자신없다. 불 같은 사랑을 한 것도 아니었던지라 엄마이면서 아빠가 돼버린 한 남자와 임신이란 경험을 뺏겨버린 한 여자의 갈등이 중후반부를 가득 채운다.
드라마는 켄타로의 아빠 역시 남성 임산부였고 되려 여자보다 더 심한 차별 속에 숨어왔던 수많은 경험자들을 등장시키며 제대로 된 ‘한 방’을 안긴다. 극 중 켄타로의 아버지로 나오는 릴리 프랭키는 “대부분 핑크에 유아적인 디자인이 대부분인 임신용품 자체가 차별”이라며 “남성 전용 산부인과와 출근할 때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정장 수트를 사업화하겠다”고 갑자기 등장한다.
임신이 여자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던 탓에 임부복도 수유패드도, 심지어 요실금까지 대체품으로 버텨온 그들이다. 이것은 차별 속에 더한 차별로 불려도 무방하다. 이 작품의 기발함은 단순히 역차별을 개탄하는 대신 이미 수백세기 동안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인류에 경종을 울린다는 점이다.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사진제공=넷플릭스) |
극 후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육아휴직을 택한 켄타로는 “이 경험을 발판삼아 ‘~~다움’에 갇히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겠노라” 결심한다. 회사의 오랜 동료이자 여자선배가 그의 모습을 보고 “이미 여자들이 다 깨달은 걸 혼자만 아는 것처럼 떠드는 남자들이 이래서 귀엽다”고 응수하는 장면은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의 백미다.
결혼과 육아, 출산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당당히 제 삶을 사는 아키 역할은 국내에 두터운 팬층을 지닌 우에노 주리가 맡았다. 아무리 ‘다소 생소한’ 남성 임산부를 그린다지만 배 안에 아이가 있어서 힘든 연기가 너무 어색한 사이토 다쿠미는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해서인지 어색함과 신선함 사이의 중간에서 배회하며 아쉬움을 더한다. 다행히 8부작으로 이뤄진 각 에피소드가 약 25분 정도로 짧은 편이라 애교로 넘길 수 있을 정도다. 오픈 2022.4.22. 채널 넷플릭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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