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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제대로' 먹어는 봤나? 떡.볶.이

[이희승의 영화보다 요리] 주인공 아니어도 미친 존재감 '떡볶이'
쌀떡인가 밀떡인가 당신의 선택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서 먹은 인생 떡볶이...사장曰"비결은 너희의 배고픔"

입력 2022-06-16 18:30
신문게재 2022-06-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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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책이 있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증상이 지속되는 상태)와 불안장애를 겪은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책 제목으로 선정한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그 주인공이다. 

가벼운 에세이로 생각하고 읽었지만 구구절절 공감과 위로의 문장이 넘쳐난다는 바로 그 책이다. 이후 ‘몸짱이 되고 싶지만 치맥은 먹고 싶어’ ‘다이어트 중이지만 빵은 먹고 싶어’ 등등 패러디가 넘쳐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적셨다.

사실 떡볶이가 영화의 메인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손예진의 결혼 전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서른, 아홉’에서 “이제는 떡볶이를 먹으며 콜라 대신 술을 마시는 나이가 됐다”며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님을 자조할 때 혹은 영화 ‘이웃사촌’에서 옆집에 사는 유력 대권 후보의 집을 도청하게 된 부산 출신의 직원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무심히 올려놨던 경상도식 떡볶이가 다였다. 아니면 고졸이라는 이유로 매번 승진에 탈락하는 여성들의 성장기를 담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상사들을 씹으며 포장마차에서 먹던 길거리 음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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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47년 째 시어머님의 손맛을 이어온 며느리와 외손녀가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사진제공=tvN)

 

그저 소품에 불과했지만 차례대로 보자면 ‘서른, 아홉’의 떡볶이는 “며느리도 몰라”라는 유행어를 낳은 마복림 여사의 신조기도 하다. 고추장으로 버무린 떡볶이에 라면과 계란, 어묵 등을 넣어 신당동을 유명 분식촌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원래는 연탄불로 볶는 방식을 고수할 정도로 깐깐했고 실제로 당일 파는 양념을 여든이 넘어서까지 직접 제조할 정도로 비율에 대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전해진다. 

아흔이 가까워졌을 무렵에야 자신의 뒤를 이어 분식을 하는 아들들에게 고추장에 춘장이 들어가는 비율을 전수했을 정도로 ‘아무도 모르는 떡볶이 양념’의 지존으로 불린다. 일단 여기의 떡은 시중에 파는 떡볶이와는 사뭇 다르다. 쌀떡이냐 밀떡이냐의 구분보다 외형부터 길쭉하고 얇은 편이다.
 
영화 ‘이웃사촌’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오게 돼 낮이고 밤이고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때부터 견제를 받았던 야당 정치인이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귀국했지만 곧바로 가택연금을 당한 배경이 영화의 소재로 쓰였다.

영화에서는 대통령 선거로 설정됐지만 실제로는 국회의원선거 때문이었고 출마가 아닌 신민당의 총선승리를 위해 활동했다. 이 같은 배경을 알고 영화를 관람하면 ‘이웃사촌’을 더 구석까지 즐길 수 있다. 

이웃사촌
극 중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이유비는 극중 정의를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애교 많은 딸, 누나로 등장해 도청팀을 정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극 중 떡볶이는 ‘빨갱이’라는 시선을 거둬들이는 역할로 등장한다.(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더불어 극 중 이의식(오달수)을 도청하던 정보부 팀장 대권(정우 )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게 되면서 교감하는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감동을 더한다. 여기에 떡볶이의 출연은 약 2초 정도다. 당시는 맛있는 음식은 옆집과 나눠 먹는 게 당연한, ‘이웃의 정’이란 게 남아있는 시기였다.
 
담벼락을 두고 설왕설래하면서도 두 사람은 묘하게 소통한다. 의식의 딸과 아들이 떡볶이를 들고 방문하고 대권이 빈 그릇에 감자로 화답하는 식이다. 사실 그 장면을 보고 생각난 건 정우가 구사하는 사투리에서 시작됐다. 부산은 의외로 떡볶이 성애자들이 손가락에 꼽는 성지다. 안 그런 곳도 있지만 대부분 맛집으로 이름난 곳은 손가락마디 두 개 정도로 굵은 떡에 꾸덕하게 양념이 묻은 것이 특징이다. 흡사 가래떡을 어묵국물에 장시간 불린(?) 물떡을 연상케 한다. 

매년 영화제 출장을 위해 그곳을 방문하지만 그때마다 물떡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는 나에게 부산이 고향인 선배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짭조름한 간장의 맛이 가래떡에 뭉근하니 불려져 씹는 맛이 일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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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길거리 음식을 만긱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도무지 떡을 왜 굳이 간장 국물에 불려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흡사 평양냉면이냐 함흥냉면을 구분하는 개인의 기호이니, 이번 지면에서는 생략하겠다.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굵은 떡에 고추장과 무를 넣어 단맛을 더한 양념을 조리는 걸 넘어 거의 묻히는 경상도식에 충실한 떡볶이가 사실감을 더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삼인방으로 나온 고아성, 이솜, 박혜수의 최애 음식은 아마도 ‘술’일 것이다. 실무 능력은 만랩이지만 커피를 타야 하고 대졸 직원들의 비위를 맞추고 가짜 영수증을 맞추는 등 일만 해대는 그들은 본사직원이란 미명 아래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하는 신세다. 

회사의 주요 산업을 담당하는 지방의 공장에서 수상한 폐수를 발견한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먹태와 골뱅이, 칼국수, 꽈배기까지 흡사 ‘먹방영화’라고 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는다. 토익 점수 600점을 넘어야 진급할 수 있다는 소리에 발 벗고 나선 상고 출신 여직원들의 고군분투기 사이에 포장마차에서 먹는 떡볶이의 분량은 미미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반가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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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내 취향을 자극하는 밀가루 떡볶이의 모습.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떡볶이(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간혹 쌀떡을 파는 곳도 있지만 탄수화물이 가진 특유의 단맛은 단연코 밀가루 떡볶이다. 새끼 손가락 정도의 길이와 통통함이라면 일단 합격. 고추장을 물에 푸는 경우도 있지만 고수들은 고추가루를 물에 개는 것으로 칼칼한 맛과 감칠맛을 더한다. 동국대학교 부속 여자고등학교가 명성여고였던 시절 분식집 ‘모두랑’이 있었다. 0교시까지 수업을 하고 저녁 자율학습까지 치면 오전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는 고난의 시간이었다. 

아침밥을 안 먹고 겨우 눈꼽만 떼고 등교하는 탓에 집에서 싸준 2개의 도시락은 2교시에 하나, 점심시간에 하나가 사라지는 먹성 좋은 시기였다. 모두랑은 허기진 여고생들의 위를 쫄면과 떡볶이로 채워주는 힐링 공간이었다. 이곳의 짜장 떡볶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저 춘장과 물, 사리로 선택하는 라면과 계란에 의해 양념이 더하거나 빠지는 식이었다. 오죽하면 졸업 후 방송국에 취업한 선배들에 의해 점점 언론을 타더니 결국 서울 근교의 여러 곳에 지점을 내며 프렌차이즈에도 성공했다. 

몇 년 전까지 여전히 매장을 지키고 있던 모두랑 사장님은 “결혼 후 임신을 하면 찾아오는 졸업생들이 그렇게 반갑다”면서 “비결은 없다. 너희들이 잘 먹어준 덕분”이라며 딸에게도 가업을 이어주지 않을 것임을 은연 중에 내비쳤다. 어쩌면 그 시절 내 인생의 떡볶이는 허기짐은 기본, 같이 먹은 친구들, 연인 그렇게 쌓아온 추억이 아닐까.


집에서 하는 떡볶이가 ‘생각보다’ 맛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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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① 일단 요리를 좀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남이 해준 음식이 가장 맛있는 법. 

그럼에도 굳이 하겠다면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완성형 떡볶이를 시험 삼아 먹어보고 자신의 입맛에 가장 맞는 브랜드를 고르는 게 좋다. 

 굳이 떡 따로, 양념 따로, 들어가는 사리 따로 구분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가장 맛있는 떡볶이의 8할은 집에 있는 냉장고를 터는 것이다. 

고급진 떡볶이를 수없이 먹어봤으나 떡볶이는 떡볶이일 뿐이다. 살치살, 로제, 캐비어 등을 올린다고 떡볶이가 금볶이가 되진 않는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떡볶이가 맵다고 쿨피스를 마시는 일은 하지 말기 바란다. 매우니까 떡볶이다. 아님 나처럼 짜장 떡볶이를 주문할 것.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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