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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빙수의 계절… 애망빙과 롯리빙수 사이에서!

[이희승의 영화 보다 요리] 영화 '안경'에서 만난 음식, 팥빙수
얼음위 팥을 먹는 방법에 따라 '비벼먹는' 비먹파냐, '살살 파먹는' 파먹파로 구분

입력 2022-07-14 18:30
신문게재 2022-07-15 11면

팥빙수
올해 처음으로 개시한 집 앞 카페의 팥빙수. 안에 든 떡을 싫어하지만 빼지 말아달라고 한 건, 그 안에 앙금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사진=이희승 기자)

 

당신은 ‘비먹’인가 ‘파먹’인가. 탕수육을 부어 먹느냐(부먹), 찍어 먹느냐(찍먹)의 문제보다 더 심오한 팥빙수를 먹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팥을 비벼먹는지, 얼음을 살살 파 먹으며 끝까지 팥을 남겨두는지는 사실 개인의 취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데 팥빙수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빙수’는 ‘얼음덩이를 잘게 갈아 눈과 같이 만들고 거기에 당밀(糖蜜) 또는 설탕, 향미료 따위를 넣은 음식’이라 나와 있다.

팥빙수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기원전 3000년경 중국에서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즙을 섞어 먹은 기록과  기원전 300년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할 때 만들어 먹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빙수는 잘게 부순 얼음 위에 차게 식힌 단팥을 얹어 먹는 일본음식(かき氷, 가키고오리)이 일제강점기 때 전해져 우리나라에서 발전했다는 게 다수 업체의 의견이다.

팥빙수
영화 ‘안경’ 포스터. 이상한 체조를 하고 굳이 친해지려는 행동을 하지 않는 손님들은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오롯이 힐링한다.(사진제공=서울환경영화제)

 

나는 체질상 팥이 맞지 않지만 팥빙수 만큼은 즐겨먹는다. 유명하다는 맛집에 줄을 서서 먹는 편은 아니지만 팥빙수는 예외다. 냉면맛집을 순례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사시사철 이 음식을 찾아 헤맨다. 그 중 겨울의 팥빙수는 소개팅이나 선자리에서 나올 법한 자조와 맞닿아있다. 미혼인데 외모도 훈훈하고 성격까지 좋은 이성은 모두 유부남(녀)이거나 이미 애인이 있다는 말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 겨울 팥빙수다. 추운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 단팥죽이 아닌 팥빙수를 권한다.

영화 ‘안경’을 인생영화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유도 딱 한 가지다. 주인공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는 한적한 바닷가의 요상한 민박집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다. 관광을 할 만한 근사한 풍경도, 맛있는 음식도 없다. 사람이 북적이는 게 싫어 간판을 내걸지 않은 민박집 주인과 함부로 친해지지 않으려는 성향의 손님들이 이곳에 있다. 

영화 안경
주요 등장 인물들이 안경을 쓰고 나온다는 것 말고는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안경’. 여름이 아닌 봄바람이 부는 시절에 먹는 팥빙수라는 점도 특별하게 다가온다.(사진제공=네이버)

 

분명 자신처럼 이곳에 손님으로 온 것 같은데 매일 팥빙수를 만들어 파는 사쿠라를 만난 곳도 그 곳이었다. 한국과 달리 팥을 먼저 깔고 얼음을 얹고 꿀 한 스푼을 올린다. 화려한 토핑은 기대하면 안된다. 고소한 콩가루나 씹을수록 쫀득한 인절미 혹은 과일 통조림은 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는 것도 돈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것은 악기연주, 뜨개질, 종이학 등이다. 제목이 ‘안경’인데 끝나고 나면 ‘팥빙수’가 남는 이상한 영화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간다. 

몇년 전 한국에서 열린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만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한국 팥빙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빙수의 얼음이 우유인 곳도 있더라. 일본은 시럽을 뿌리고 팥도 거의 넣지 않는다”고 했다. 팥을 밑에 까는 건 일본에서도 덥고 습하기로 유명한 오키나와식 빙수라고 했다.

팥빙수1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서 재료에게 말을 걸며 보여지는 알갱이들.(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극 중 사쿠라 할머니는 팥앙금을 만드는데 온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조급함은 금물”이라는 명언을 남긴다. 팥을 졸여본 사람을 알겠지만 유독 팥은 삶기조차 쉽지 않다. 여기에 설탕을 몇배로 넣고 졸이려면 불조절이 관건이다. 조금만 세게하면 물이 넘치거나 타버린다. 그렇다고 너무 뭉근히 끓이면 퍼져버린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바로 그 팥소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 전통 단팥빵인 도라야키를 만들어 파는 센타로(나가세 마사토미)는 가업을 이었다는 것 말고는 요리에 애정이 없는 인물이다. 기계적으로 빵을 굽고 안에 들어갈 팥은 업소용을 사다 쓴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당장 무덤에서 일어날 판이다. 

 

둥근 징을 닮은 모양의 빵에 달콤한 단팥이 씹혀야 하는데 반죽은 엉터리고 앙금은 그나마 중국산이다. 파리만 날리는 그곳에 도쿠에(키키 키린) 할머니가 찾아와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 젊은 자신도 힘들어 단팥을 삶지 않는데 할머니는 다르다. 만드는 내내 팥과 설탕에게 말을 걸고 정성을 다한다. 재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흡사 연애를 막 시작한 젊은 연인에게 비유하기도 한다.

 

정성을 다해 만든 앙이 든 도라야키는 날개 돋힌 듯이 팔린다. 하지만 굽은 손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 도쿠에 할머니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고 가게는 다시 썰렁해진다. 센타로는 좌절하지만 예전의 그가 아니다.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상처받았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했던 할머니의 태도에 위안과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배우 키키 키린의 유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비단 앙을 만드는 과정만 뿐 아니라 ‘모든 삶에는 의미가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한다. 

 

팥빙수2
‘애망빙’(애플망고빙수)이라 불리는, 고급 빙수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고든램지의 시즌 한정 빙수. (사진제공=고든램지레스토랑)

 

내가 꼽는 단 하나의 팥빙수는 지금은 없어진 강남역 사거리에 있었던 뉴욕제과에서 팔던 것이다. 우유를 얼려 곱게 갈은 얼음 그리고 끈적한 팥이 전부인 단촐한 빙수였다. 그때만 해도 비먹파였던 나는 숟가락으로 꼼꼼히 비벼 먹었는데 녹으면 물이 되는 게 아니라 진한 우유가 그릇에 반쯤 채워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빨간색, 초록색 설탕 묻은 젤리와 깡통 통조림에 든 과일을 잔뜩 올리는데다 씹는 맛을 더한다고 (용서할 수 없는) 시리얼까지 얹는 게 유행이었으니 얼마나 큰 자부심으로 만든 팥빙수였는지 가늠이 안될 정도다. 

 

그렇다면 요즘 팥빙수의 유행은 어떨까. 해운대 바닷가의 모래알만큼이나 다양한 빙수가 존재하는 한국은 한때 고급 빙수가 시장을 휘어잡았다. 돔 페리뇽 샴페인을 눈꽃얼음에 부어먹거나 망고를 잔뜩 올린 모 호텔의 빙수는 각종 SNS에 인증사진이 넘쳐난다. 이름하여 ‘애망빙’. 직장인 점심값의 몇배가 넘는 가격이다. 그나마 한정판은 가격이 두 배다. 지난해 최고 14만원짜리 버거를 선보여 화제를 낳았던  ‘고든램지버거’도 ‘애망빙’을 선보였다. 얼그레이 밀크티 얼음 베이스에 애플망고를 얹었다. 평일에만 하루 20개씩 판매하며 오는 8월 말까지 운영한다. 

 

고든램지 애플망고빙수의 가격은 4만5000원으로, 포시즌스 호텔 서울 9만6000원이나 신라호텔 8만3000원 보다는 다소 저렴(?)한 편이다. 얼음이 얼그레이 밀크티라니 안 먹어볼 수가 없었다. 당장 예약 전용 애플리케이션 캐치테이블을 다운받았지만 빙수 단독은 안된다는 안내문이 달려있다. 빙수를 먹기 위해 스테이크 가격대의 버거를 먹어야 하다니…내 ‘최애’인 맥도날드 치즈버거가 비웃을 판이었다.

 

롯데GRS
가격대비 최고의 만족도를 주는 롯데리아의 빙수는 ‘롯리빙수’라 불리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사진제공=롯데GRS)

 

사실 국내 팥으로 만든 빙수의 가격은 쌀 수가 없다. 그래서 집에서 DIY로 만들어 먹는 사람도 늘고 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1일 1빙’하는 자녀들의 먹성을 소화하기 위해 아예 빙수기를 갖추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직접 만든 수고로움 보다는 기대 이상은 맛있는 팥빙수를 찾는 데 더욱 정성을 기울인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발견한 롯데리아 빙수는 정말 기대 이상이다. 이미 팥빙수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에게 ‘롯리빙수’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빙수는 아이스크림에 딸기잼을 얹은 만큼 500칼로리가 넘지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란 말을 믿고 한번 먹어보길 권한다.

 

 

◆다시 한번, 비먹&파먹에 관하여

 

유치함의 끝판왕이라 여겼던 윤종신의 노래가사 ‘빙수야 빙수야 녹지마 녹지마’는 다시 들어보니 시대를 앞서간 명곡이었다. 여러 가지 토핑을 나열한 걸로 봐서 그는 결코 파먹은 아니다. 전체를 잘 비빈 뒤 얼음이 녹지 않길 바라며 시원한 걸 즐겼을 타입이다. 이런 경우 처음에는 얼음과 토핑을 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결국 얼음물이 대부분 남아 아쉬움을 더한다.

요즘 나는 신중한 파먹파로 타입을 변경했다. 팥을 섞지 않는 게 관건이다. 얼음의 맛을 텁텁하게 만드는 각종 가루는 이왕이면 빼달라고 한다. 대신 과일이나 팥을 더 달라고 하지만 가루를 뺀다고 고명을 더 얹혀주는 곳을 나는 단 한곳도 보지 못했다.

 

쌓여있는 팥의 옆을 잘만(?) 공략하면 팥빙수를 다 먹을 때까지 달콤한 팥을 맛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중앙의 팥을 눈치 없이 파먹진 말기 바란다. 팥빙수에 얼음이 없다면 그저 단팥죽에 불과하니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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