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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푼돈 잘 굴리면, 큰 돈이 굴러들어 오는 법! 미국 주부의 '쿠폰 정복기'

[#OTT] 왓챠 '쿠폰의 여왕'이 선사하는 범죄의 신세계

입력 2022-07-13 18:30
신문게재 2022-07-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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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쿠폰의 여왕’.(사진제공=왓챠)
 

미국의 한적한 주택가에 갑자기 FBI가 들이닥친다. 수면 안대를 하고 자고 있던 평범한 주부 코니(크리스틴 벨)가 “이 순간이 너무 굴욕적이라 처음부터 내 소개를 하겠다”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쿠폰의 여왕’은 2012년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범죄를 바탕으로 한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코니의 유일한 낙은 쿠폰을 모으는 것. 시험관 아기를 연이어 실패해 개인파산에 가까운 빚을 진 상태다. 남편은 한두번 시도해보고 안되면 부부끼리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인 평범한 남자였다. 아내의 욕심에 불임시술을 무리하게 받으며 결국 사랑도 식고 은행잔고도 마이너스로 곤두박질 중이다. 코니가 겪는 결핍은 곧 쇼핑으로 이어진다. 거창한 물품도 아니다. 시리얼이나 세제, 휴지 등 생필품이 대부분인데 10개의 쿠폰을 모으면 약간의 할인 혹은 1+1이 생기는 식이다.

 

쿠폰의 여왕1
영화 ‘쿠폰의 여왕’의 한 장면.(사진제공=왓챠)

 

국세청 직원인 남편은 그런 행위를 과소비로 치부하고 코니는 생활비를 아끼는 방법으로 여긴다. 대중의 수상한 비자금이나 덜 낸 세금을 감시하는 남편으로선 아내의 이런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쿠폰의 여왕’은 미국인 열명 중 아홉명이 쓴다는 쿠폰에 대한 국민성을 방증한 작품이다. 창고형 마트에서 6개월치 분량의 식료품을 사제끼는 미국인들에게 쿠폰은 없어선 안될 필수품이다.



극 초반 코니는 200달러가 넘는 계산서를 보고는 자신이 모아온 100장 분량의 쿠폰을 내민다. 최종 결제금액은 16불 정도. 이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니라는 듯 체념한 표정의 계산원에게 “절약이란 이런 것”이라고 우쭐대는 주인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쿠폰의 여왕
쿠폰이 모자라면 쓰레기통 뒤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코니의 당당함이야말로 그를 비상한 범죄자로 만드는 데 한몫한다.(사진제공=왓챠)

 

결론적으로 한국 정서로 해석하자면 코니는 진상이지만 머리는 결코 아둔하지 않다. 도리어 배포가 남다른 타고난 사업가에 가깝다. 우연히 상한 제품에 대한 항의 메일을 보내고 새로운 제품을 받게 되면서 옆집 유튜버 조조(커비 하웰-밥티스트)를 꾀어 쿠폰장사에 나선다.

알고 보니 거대 브랜드들이 받는 이런 항의(?)는 일상다반사였고 코니는 바로 그런 점을 노려 쿠폰이 제조되는 먼 멕시코까지 건너간다. 인쇄업체의 직원을 매수해 자투리 쿠폰을 제공받아 싸게 팔면 돈이 될 것이란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신원 도용 범죄로 피해를 본 조조 역시 처음엔 긴가민가 하지만 현실의 짐을 벗기 위해 함께 무료 쿠폰을 받아 팔기 시작한다.

‘쿠폰의 여왕’이 가진 또 다른 재미는 관료주의와 인종문제, 명의도용, 총기사고를 아우른다는 점이다. 옆집 조조는 못된 해커에게 개인정보가 털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금융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방문판매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지만 카드를 받지 못하는 신세라 판매실적이 바닥이다. 결국 엄마집에 얹혀살며 유튜브에 일상을 공유하는 낙으로 산다.

이들은 더이상 가족들에게 무시받던 낙동강 오리알이 아니다. 현금은 쌓이고 사업은 승승장구한다. 갑자기 불어난 은행잔고로 계좌가 동결되자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해커를 고용해 돈세탁과 계좌 분산을 시키는 치밀함까지 보인다.

 

쿠폰의 여왕
자그마치 4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두 배우의 궁합은 ‘쿠폰의 여왕’을 보는 또다른 재미다. (사진제공=왓챠)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미국 전역에 팔린 쿠폰이 발행 기업들에게 돌아가며 피해를 본 브랜드들이 늘자 손실 방지 전문가 켄(폴 월터 하우저)이 나서며 ‘쿠폰의 여왕’은 제법 범죄물 특유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쿠폰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와 그런 구매욕구를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 기업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두 여성의 모습은 사실 판타지에 가깝다.

영화의 말미 이들은 각종 명품, 스포츠카, 전용기까지 구입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현금화하며 부의 단맛을 맛본다. 표면적으로 보면 중고나라나 당근마켓과 다를 바 없다. 구매하는 사람으로서는 거의 새것과 같은 제품을 반 가격에 사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코니와 조조 역시 공짜나 다름없는 쿠폰을 팔아 챙긴 돈을 합법적으로 소비하는 거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쿠폰의 여왕’을 연출한 에런 고젯, 지타 풀러필리 감독은 사건을 맡았던 수사관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시나리오를 완성해 실제 상황과 같은 디테일을 담아냈다. 결말은 다소 허망한데 코니는 감옥에 들어가기 직전 남편 대신 선택한 정자은행의 꽃미남 DNA가 한번에 착상돼 감옥에서 행복한 출산을 기다린다. 원래 40년을 선고받았지만 모아둔 막대한 현금으로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가석방이 가능한 11개월이 선고됐기 때문. 조조도 미국과 범죄인도협약을 맺지 않은 국가로 떠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공동구매를 통해 터무니없는 커미션을 받았던 스타 블로거나 이제는 마이크로 브랜드(Micro Brand)란 거창한 타이틀로 인스타그램에서 DTC(Direct-to-Consumer)로 떼돈을 버는 유명인들이 지금 어딘가에서 소비촉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걸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티셔츠, 신발, 인테리어 소품, 매트리스, 소형 전자기기, 주방용품 등 이들이 파는 제품이 쿠폰과 다를 바 없어보인다면 당신은 분명 현명한 소비자일 것이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안나 목소리로 친숙한 크리스틴 벨이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 코니 역할로, 영화 ‘크루엘라’로 제대로 존재감을 뽐낸 커비 하웰-밥티스트가 조조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손실 방지 전문가 켄을 연기하는 폴 월터 하우저의 거들먹거림은 ‘쿠폰의 여왕’이 가진 최고의 웃음 포인트다. 게다가 진중한 우편검열국 요원 사이먼 역할은 빈스 본이니 믿고 봐도 좋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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