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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제11회 서울국제작가축제 곽효환 한국번역원장 “월담하는 문학으로 서울 대표 문학축제로!”

[짧지만 깊은: 단톡심화]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

입력 2022-09-15 18:30
신문게재 2022-09-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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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한국번역원장(사진=브릿지경제 DB, 이철준 기자)

 

“문학의 본질은 경계를 넘어서는 거예요.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 사회와 사회, 세계와 세계를 잇는 게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죠. 기존 틀과 궤도를 넘어 인간이 가야 할 지향점과 가치를 찾는 문학은 가장 전위적이고 모험을 감행하는 예술입니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올해로 11회를 맞는 ‘2022 서울국제작가축제’(9월 23~30일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커뮤니티 하우스 마실, 인천공항)의 주제 ‘월담: 이야기 너머’(Beyond Narrative)를 두고 “마땅하다”고 표현했다.

곽효환 한국번역원장
곽효환 한국번역원장(사진=브릿지경제 DB, 이철준 기자)

“‘월담’이라는 주제는 2000년 초반 굉장히 유행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월담’은 좀 달라요. 포스트 코로나 이후 신(新) 경계, 신 장벽주의, 신 냉전주의 등 20세기적인 경계와 장벽이 회귀하는 데 대한 우려가 큽니다. 실제로 겪고 있기도 하죠. 작가라는 사람들은 늘 한발짝 먼저 넘어가는 데 있는 사람들이에요.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엮이면서 미래지향적 작가 축제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올해의 축제는 그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죠.”



◇모두가 중심이고 모두가 변방인 시대, 어젠다 선점과 연대 그리고 공유

“과거의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을 따라가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특정 담론을 누군가가 주도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과거의 한국문학이 일방적인 수용자였다면 지금은 수용하면서도 영향을 주며 동시에 주고받죠. ‘월담’은 포스트 코로나 시점에서 선제적 담론이 될 거예요.”


이어 “문학과 예술에서 중요한 건 누군가 만든 담론을 따라가느냐가 아니라 보편적 담론을 누가 선점하고 적절하게 펼쳐가느냐 라고 생각한다”며 “어젠다를 선점하고 이를 폭넓게 교류하는 장(場)이 될 이번 축제가 그런 방향으로 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각화 시대예요. 누가 정점이나 중심이라고 할 수 없는, 모두가 중점이고 모두가 변방인 시대죠. 적절한 어젠다를 제시하고 반열에 오르는 과정이 중요한 시대거든요. 이에 이번 축제에 참여하는 작가들과 담론을 같이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고구려가 강성했던 이유를 아세요? 북방의 12개 민족이 잘 융합해서 강성한 연합국가가 됐고 고구려가 좋은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죠. 지금이 그런 시대예요. ‘한국이 세계문학을 주도한다’가 아니라 가진 이야기를 주변과 교류하고 연대하며 공동의 어젠다를 만드는 역할을 하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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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자 포레스트 갠더(왼쪽)와 김혜순 시인(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

곽 원장은 축제에 대해 “한국문학번역원은 이를 위한 마당을 깐 것”이라며 “그 마당에서 작가들은 맘껏 뛰어 노는 연희자들이다. 그들이 어떤 연희로 관객들과, 다른 연희자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2021년을 온라인으로만 진행했던 서울국제작가축제는 3년만에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된다. 

이번 축제에는 퓰리처상 수상자 포레스트 갠더,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동시 수상한 나오미 크리처,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 넷플릭스 영화로도 선보인 ‘피버 드림’으로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라틴아메리카 문학계가 주목하는 사만타 슈웨블린, 김혜순 시인의 작품을 번역해 세계문학계에 선보인 최돈미 등 8개국에서 활동 중인 12명의 해외작가가 함께 한다. 

최돈미 작가
최돈미 시인 Photo by SONG Got(사진제공=한국번역원)

더불어 김혜순, 김보영, 이윤하, 하성란, 김현, 오은 등 23명의 한국 작가들도 참여해 낭독, 대담, 공연 등 19개 프로그램을 통해 토론하고 교류하며 공동의 어젠다를 도출할 예정이다.


곽효환 원장은 이번 참여 작가들 중 “나오미 크리처와 최돈미 시인을 눈 여겨 봐야 한다”고 꼽았다. 

곽 원장은 “SF작가인 나오미 크리처를 초청한 건 이른바 ‘엘리트 문학’ 안에서는 파격적”이라며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데도 SF는 여전히 장르문학으로 여겨진다. 이번 나오미 크리처의 초청은 SF문학이 엘리트 문학과 대등하게 놓이는 과정 중 하나”라고 의미를 더했다.

 

“그 과정이 더 큰 시장을 만들어 낼 거예요. 장르문학으로의 쏠림이 아니라 새로운 하이브리드, SF와 본격문학의 융합, 교류 등이 어떤 결과를 도출해낼지 관중의 입장에서 즐겁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불어 최돈미 시인을 주목해서 봐야 해요. 김혜순 시인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린 번역가지만 스스로도 훌륭한 시인이죠.”

지난해 최돈미 시인이 수상한 맥아더 펠로십에 대해 “천재들만 받은 상으로 그 장학금 규모가 10억원이 넘는다”며 “그의 한국어판 시집이 한권도 없는 게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작가를 주목해야 해요. 우리는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있지만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시인이거든요. 왜 미국이 최돈미를 주목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 만나는 무대

곽효환 한국번역원장
곽효환 한국번역원장(사진=브릿지경제 DB, 이철준 기자)

 

“우리 문학 자체가 과거와 달리 세계문학과 나란히 하고 있어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 만날 틀과 무대, 공간이 필요해 졌죠.”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곽효환 원장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 만나는 장은 대산문화재단에서 노벨상 수상자, 월드클래스 작가들과 5년에 한번씩 진행하는 서울국제문학포럼이 있다”며 “빅네임 작가들이 모여드는 것도 좋지만 우리 문학이나 작가들과의 대등한 교류는 어렵다”고 부연했다. 

“서울국제문학포럼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만나게 하기 위해 젊은작가축제로 시작했어요. 11회까지 오면서 변화를 계속했죠. 너무 긴 텀, 빅네임 작가들과의 관계 설정에서의 어려움 등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가진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서울국제작가축제로 전환을 감행했습니다.”

곽효환 한국번역원장
곽효환 한국번역원장(사진=브릿지경제 DB, 이철준 기자)

더불어 “지금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주최하는 ‘장’(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프로골퍼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한국에서도 KPGA를 개최하는 것처럼”이라고 말을 보탰다.


“우리 축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노벨상 수상자도, 세계적으로 최정상급에 오른 빅네임 작가들도 아닙니다. 이미 정상에 오른 작가가 아니라 정상을 향해 열심히 가는, 미래지향적인 작가들이죠. 그들과 한국작가들이 교류하고 섞이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곤 “김이듬 시인도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만난 미국 시인이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고 번역까지 해 미국 시장에 소개했다. 2020년에는 미국 문학번역가협회 전미번역상, 미국 문학번역가협회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받기에 이르렀다”며 “그런 차원에서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곽 원장은 “독일의 작가축제하면 베를린 국제문학축제(Internationales Literaturfestival Berlin), 아일랜드하면 더블린 국제문학축제(International Literature Festival Dublin)를 떠올리는 것처럼 서울 하면 서울국제작가축제를 떠올리게 할 과정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국 독자들의 시선이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고루 쏠리게 될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우리 문학계의 체급을 키우는 무대가 될 겁니다. 이런 과정을 잘 겪어내면 담론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는 서울국제문학포럼과 어울리고 교류하고 만나는 데 초점을 둔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윈-윈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예술 전체를 아우를 담론과 방향성을 향해

곽효환 한국번역원장
곽효환 한국번역원장(사진=브릿지경제 DB, 이철준 기자)

 

“늘 말씀드리지만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게 아니에요. 세계적이면서도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겁니다. 성공한 콘텐츠들은 과거처럼 한국의 한(恨)을 강조하지 않아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지점에서 ‘그 문제에 대해 한국은 이렇게 생각해’라는 방식으로 한국적인 걸 선보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학 작가들의 시야, 세계관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동시대성을 가진 주제들을 놓고 작가들이 만나고 다양한 시선들을 주고받으면서 자극을 받고 서로의 지평을 넓힐 거라고 믿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제74회 에미상에서 감독상(황동혁), 남우주연상(이정재) 등 6관왕의 쾌거를 이루는 등 K콘텐츠 전성시대다. 그런 가운데 지난 9월 2일 동시 개막한 한국화랑협회 주최의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한국에 첫선을 보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의 극과 극 풍경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곽효환 한국번역원장
곽효환 한국번역원장(사진=브릿지경제 DB, 이철준 기자)

이에 대해 곽 원장은 “보기에 따라 초라하다가 아니라 같이 하면서 키아프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첫해와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면 문제겠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깨닫고 프리즈를 보면서 어떻게 가야 할까를 가늠하고 고민하다 보면 격차는 좁아질 거예요. 그렇게 성장하는 거죠. 우리 축제에 참여하는 작가들 중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고 최정상에 오를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만남과 교류로 작가들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한두명 정도의 빅네임 작가들을 초청할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그 작가들을 담아낼 프로그램이나 방식을 고민하는 등 변화 노력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곽 원장은 “작가라는 존재들은 경계에 선 사람들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경계에 서서 해체하거나 문제를 고민하고 감시하는 사람들”이라며 “문학은 문자로 된 기초 예술이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료하다. 다른 예술에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화 예술 생태를 인식시키고 새로운 방향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잔치를 준비한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기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지금은 사정이 좋아졌지만 연초에 오프라인으로 축제를 진행한다고 결심했을 때는 도박이었어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문학계에서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첫 국제 축제거든요. 이번 축제는 문학을 중심으로 일상회복의 중요한 관문이 될 것이고 예술 전체를 아우를 담론, 방향성을 가늠해 보는 척도가 될 겁니다. ‘월담’ 역시 의미심장한 주제가 될 거예요.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 뿐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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