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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깊은: 단톡심화]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맨디 엘-사예&이근민 ‘Recombinant’

입력 2022-11-04 18:00

맨디 엘-사예 이근민
‘Recombinant’ 전시를 함께 꾸린 맨디 엘-사예(왼쪽)와 이근민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이근민 작가님이 살고 계신 한국사회와 제가 속한 서양사회는 역사상으로나 문화적으로, 미술 사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어요. 피를 포함해 한국이 드러내지 말아야할 것은 드러내지 않거나 감추는 반면 저희는 감정을 한껏 드러내도록 장려하고 용인하는 분위기죠. 그런 여러 가지 요인들로 같은 ‘피’를 소재로 하지만 작품세계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활동 중인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는 이근민 작가와 같은 듯 다른 작품세계가 “속한 사회가 다른 데서 오는 차이”라고 밝혔다. 3일 시작된 맨디 엘-사예&이근민의 ‘Recombinant’(12월 10일까지 리만머핀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두 작가의 작품들은 유사한 듯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맨디 엘사예
‘Recombinant’ 맨디 엘-사예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검색 엔진 알고리즘에서 ‘유사한 이미지’로 추천한 대한민국의 이근민 작가 작품을 발견한 영국의 맨디 엘-사예가 다이렉트 메시지로 연락을 취하면서 소통하기 시작한 두 사람의 작품은 유사한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추상화된 신체들이다.

맨디 엘-사예는 “이근민 작가님과의 상호작용 혹은 교류를 하면서 주안점을 두고자 한 것은 정신이 우리 신체에 미치는 영향 혹은 일종의 테러 공격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할지에 대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 과정에서 파편화된 인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그 조각조각들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결합되면서 새로운 현실로 거듭나도록 만들어낼 수 있는지까지를 탐구했고 그 결과물이 이번 전시작들입니다.”

이근민 작가는 “맨디가 외상에서 시작했던 작업들이라면 저는 약간 정신병리학적인 부분이었다”며 “둘이 합쳐지면 하나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조합이었다”고 부연했다.

“대학교 입학 전부터 사회가 발전되고 세련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또 다른 대상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약자나 바보 이미지 같은 것들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에 대해서요. 공정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에서도 뭔가 이면이 느껴지는 그런 부분에 관심이 많았죠. 그러다 대학교 입학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아프게 됐고 의사에게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뒤 진단을 받게 됐어요.”

이어 이 작가는 “그때의 진단 코드나 병명이 과거에의 제 생각과 연결 지점이 보였다. 제 작품이 사회가 어떤 대상, 한 개인을 카테고리로 나누고 데이터화하는 패키징에 저항하고 반문하듯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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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binant’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20년간 병자의 병상일기 혹은 그림일기처럼 비슷한 주제로 반복해 작업을 해왔어요. 좀 세련되지 못한 약자, 병자, 추한 모습 등에 집중하게 됐는데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봤던 환각들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기억을 거듭하면서 제 그림 속에서 좀 다듬어지고 회회적으로 디자인될 수는 있지만 환각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죠. 그때 받았던 상처, 심적 자극들을 나타내기 위한 노력들이 사회의 카테고라이징에 대한 저항감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예를 들어 사회적 카테고리 중 제가 진단 받은 병명이 있다. 하지만 그 병에서 나타나는 병증이 제가 타고난 성격일 수도 있다. 그런 성격까지 병증의 일부로 보이기도 한다”며 “사회에 속한 개인이 알게 모르게 데이터가 되고 카테고리가 돼 어떻게 정의당하는지도 모른 채 사회 시스템 안에서 일부처럼 돌아다니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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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binant’의 이근민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검색 엔진 알고리즘으로 만나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은 이미지라는 공통언어로 소통하고 각자의 미적 취향과 작업방식을 특징 짓는 예술적 충동 등에서 접점을 발견했다. 

 

전시 제목인 ‘Recombinant’는 이같은 그들의 소통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Recombinant’는 유전학 분야에서 DNA의 재조합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리만머핀 서울 관계자의 설명처럼 “DNA 재조합으로 새로운 물질이 생성되거나 유전자 혹은 세포들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이 두 작가의 그림과도 닮았다.”


신체를 추상화된 방식으로 그림으로서 각자가 속한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핏빛부터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맨디 엘-사예의 작품들이 이제 막 흘린 피 혹은 꾸덕꾸덕해지기 시작한 피딱지의 느낌이라면 이근민 작가의 핏빛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빨거나 지우려 애썼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상처와도 같다.

이에 대해 맨디 엘-사예는 “이근민 작가는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고 되돌아가서 작업을 하신다고 알고 있다”며 “하지만 저는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를 딱히 만들어야겠다, 무언가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제 마음가는대로, 그때그때 손 가는 대로 작업한다”고 털어놓았다.

맨디 엘-사예의 말에 이근민 작가는 “제가 지우려고 애썼는데 안 지워진, 과거에 피를 좀 수습하려고 닦은 기억이 많았다”며 “그림에 빨간 색 물감을 흘려서 일부러 거즈로 닦는 행위, 수습하는 행위 등을 하는 등 인위적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과거였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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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binant’ 전시를 함께 꾸린 이근민 작가(왼쪽)와 맨디 엘-사예(사진=허미선 기자)


“저에겐 피를 죽이려고 하거나 지워버리려던 중2병 같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닦든 지우든 피를 수습하려고 했던 기억들이 많아요. 그렇게 피를 수습하려는 행위 다음에는 늘 주사, 약물로 이어졌어요.

 

이어 하지만 그 과거에 머물거나 그 때를 강조하기 보다는 ‘피’라는 장치가 큰 것 같다”며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피는 생명이었던 무언가를 구성했던 자국들”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외계인일 수도 있고 사회가 만든 불쌍하고 세련되지 못한 존재들의 피 같은 것이기도 해요. 그리고 병자였던 저를 약간 은유한 표현이기도 하죠. 그렇게 병자나 바보 혹은 세련되지 못한 원시적인 것들, 그들이 흘릴 수 있는 피 같은 거랄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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