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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극 ‘서툰 사람들’ 장진 작·연출 “앞으로도 유효할 ‘바보 미학’ 그리고 꿈꾸게 하고 싶은 마음”

[단톡심화] 연극 '서툰 사람들' 장진 작·연출

입력 2022-11-17 18:30
신문게재 2022-11-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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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툰 사람들’ 장진 작·연출(사진제공=장차, 파크컴퍼니)

 

“‘바보 미학’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아요. 우리는 누군가의 조금 서툴고 완전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귀여움을 느끼곤 하잖아요. 이 작품은 그런 의미가 있고 그 의미의 유효기간은 앞으로도 좀 길 것 같아요. 아마 10년, 20년이 지나도 이런 이야기는 통용되지 않을까 싶어요.” 


10년만에 돌아오는 연극 ‘서툰 사람들’(11월 26~2023년 2월 19일 예스24스테이지 3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장진 작·연출은 “여전히 유효하고 꽤 오래 유효할” ‘바보 미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95년 스물셋이던 장진의 대본으로 서울연극제에서 초연된 데 이어 2007년, 2012년 그의 연출로 공연된 후 1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서툰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사명감은 투철하지만 서툰 이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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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툰 사람들’(사진제공=장차, 파크컴퍼니)

어설프고 지나치게 친절한 도둑 장덕배(오문강·이지훈·임모윤, 이하 가나다 순)와 그런 덕배가 측은해 자신의 비상금까지 내어주는 중학교 교사 유화이(김주연·박지예·최하윤) 그리고 자살소동을 벌이는 아랫집 남자, 화이를 짝사랑하는 서팔호, 독특한 아버지 유달수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멀티맨(안두호·이철민)이 펼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다. 



◇여전히 유효한 ‘바보 미학’


“우리는 완벽한 사람만 대우 받는, 그래서 완벽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 세상에서 살다가 무대 위 서툰 사람들을 보면 놀리거나 조소하고 싶어지기 보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죠. 이런 마음으로 연극을 보신 분들이 주변의 조금 서툴고 미약하지만 내가 갖지 못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둘러보면 좋겠어요. 그들을 보면서 친구가 되고 싶고, 또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서 또 다른 즐거움이지 않을까요?”


장진이 꼽은 이 같은 작품의 미덕은 “덕배가 화이의 가방을 뒤지는 장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두툼한 지갑을 발견하고 좋아하지만 온통 1000원짜리라 “뭐 특별히 퇴계 이황을 존경하거나, 자손이거나 그런가?”라고 황당해 하는 덕배와 ‘지갑이 두꺼우면 기분이 좋으니까’라는 화이가 “농담도, 일부러도 아닌, 자연스러운 대사를 주고받는 이 장면에는 그들의 서툰 모습이 가장 잘 담겨있다.”

“그런 중에 덕배가 신용카드를 발견하고 좋아하니까 화이가 조금만 쓰라고 해요. ‘밤늦게 고생하시는데 제대로 가져가시는 게 없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분실신고는 내일 점심쯤 하겠다’고. 덕배 또한 ‘나를 바보로 아냐’면서도 현찰이 필요할지 모르니 5000원은 돌려주는 등…행동이 아주 서툴러요. 이 작품에 서툰 장면은 정말 많지만 이 장면이 두 인물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요.”


◇스물셋 그리고 쉰하나의 ‘서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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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툰 사람들’ 출연진(사진제공=장차, 파크컴퍼니)
 
초연 당시 스물셋이던 신진작가 장진은 이제 쉰을 넘긴 중견 작·연출이 됐다. 이제 서른살이 돼 가는 ‘서툰 사람들’을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수정의 기준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시대에 발맞추는 것이었다. 그는 ‘시대’에 맞게 수정된 것들 중 “예전엔 돼지저금통이 있어서 그거라도 드리면 되는데 제가 삼겹살 알레르기가 생긴 다음부턴 돼지저금통만 봐도 두드러기가 나서 그것도 없앴거든요”라는 화이의 대사를 예로 들었다. 

“지금은 의학이 좋아져서 확실한 병명(알레르기)으로 치환될 수 있거든요. 뚜렷한 목적이 아니라 저도 이 시대에 길들여져서 자연스럽게 나온 대사죠. 30년 전엔 이런 대사를 쓸 생각을 못했거든요. 너무 튀고 이상한 대사이니까요. 지금이니까 쓸 수 있었던 대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수백억원의 제작비가 투자되는 OTT드라마 등으로 바쁜 날들을 보내는 장진에게 지인들은 “수백억짜리 프로젝트에 전력투구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우려를 표하곤 한다. 이에 장진은 “사실 저에게는 ‘서툰 사람들’이 매진돼 200명의 관객을 만나는 거나 영화로 하루 20~30만명 관객을 만나는 거나 어젯밤 갑자기 생각난 얘기를 친구 한명한테 들려주는 거나 체감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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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툰 사람들’ 장진 작·연출(사진제공=장차, 파크컴퍼니)

“단순히 상업적인 사이즈로 제 행보 중간에 왜 ‘서툰 사람들’이 있는지 누구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저한테는 너무 중요한 작품이죠. ‘서툰 사람들’은 저와 함께 한 역사가 있거든요.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대학로에서 이 작품을 50이 넘어 한다는 건 저에겐 큰 의미죠.”

 

그리곤 2012년 이후 10년만에 ‘서툰 사람들’을 다시 꺼내든 이유에 대해 “작가 입장에서는 미완이라 누구한테 드리기도 어려운, 결국 내가 해야하는 작품”이라며 “이 작품을 내 인생에서 버리느냐 계속 가져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시기가 지금”이라고 밝혔다. 


◇변함없는 “꿈을 꾸게 하고 싶은 마음”
 
“너무 어릴 때 쓴 작품이라선지 아쉬움이 많아요. 게다가 30년 전 작품이라 말이 안되는 것들도 너무 많죠. 23살에는 용납 가능했던 폭이 컸어요.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캐릭터들의 착한 면들, 순진무구한 면들을 용납하는 폭이 넓었고 어찌 보면 조금 과하게 얘기했던 것도 같아요.”

이어 “시대에 맞게 좀 수정해야지 하고 보니 세상을 살면서 빡빡함에 길들여지고 이해가 됐는지 애가 뭐 그렇게 해맑은지…너무나도 허무맹랑할 뿐 아니라 캐릭터들에 설탕을 발라 놓은 것 같았다”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들도 꼴보기 싫어져서 고친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수정할 것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서툰 사람들을 통해 꿈을 꾸게 하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예요.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꿈같은 로맨스처럼요. 만날 수도 없고 만나기도 힘든, 말도 섞을 수 없는 누군가와 설레는 한밤의 로맨스로 대리만족하고 혹은 꿈을 대신 무대에서 꿔주는 듯한 구조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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