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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늙었다 무시하지 말아라, 너도 곧 그렇게 된다!

[이희승의 사적라이프] '노인 학대'와 '혐오' 사이, 우아한 노년은 없는걸까?

입력 2022-12-08 18:00
신문게재 2022-12-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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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은 수많은 MZ세대들이 꼽은 ‘만나고 싶은 시니어’로 꼽힌 캐릭터다.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동네 수영장에 가면 항상 만나는 은발의 할머니가 한분 계신다. 평생 고생이라곤 안 해본 듯한 첫인상이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자유수영을 주 5회 할 만큼 정정하셨다. 주름은 상당했지만 누가 봐도 오드리 헵번의 말년 모습과 외모가 비슷했다. 

 

그 나이대의 어른들이 그러하듯 누구에게도 스스럼 없이 말을 거셨고 나 역시 화답하며 친분이 쌓였다. 한번은 “염색을 해도 절대 그렇게 우아한 백발은 연출될 것 같지 않다”고 하자 “사실은 내가 젊었을 때 양장점을 했다”며 소녀처럼 미소지었다.

 

바로 그때 주변의 이상한 눈빛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못 걸렸어’ ‘그러게 말을 걸지 말았어야지’ 정도의 경고의 눈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분은 끊임없이 탈의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계셨다. 처음 수영장을 갔을 때는 키 반납이나 신발장 위치를 파악하기에 급급해 이상함을 못 느꼈는데 다들 의도적으로 그 할머니와의 대화를 ‘피하고’ 있었다.

 

그 눈빛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은 건 몇 주가 지나서였다. 수영 시간은 달라도 탈의실에서 만나면 아들 자랑과 며느리의 직업 그리고 자신이 낀 반지의 가격과 언제 샀는지까지 세세하게 말해주셨다. 처음에는 듣는 게 재미있었다. 아마도 미혼이었다면 화장하고 머리 말리고 나가기 급급해 말을 걸어도 무시했을테지만 나는 마흔의 중반.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이 닿지 않아 그런데 등 좀 닦아 달라”라던지 “색시는 아이가 몇이고?” 등의 질문이 별로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분의 행동이 스포츠센터에서 회원들의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며칠 전 할머니가 “아무래도 차에 휴대폰을 두고 왔다”고 걱정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 역시 몇 달째 배우고 있는 줌바 수업에 늦은 터라 바로 교실로 이동했는데 이 분이 거의 한 시간 넘게 수영도 안하고 동동거리셨나보다. 샤워장에서 만난 그 분은 “치매가 걸렸는지 맨날 뭔가 하나씩 까먹는다”면서 “휴대폰 찾느라 이번 타임에 수영을 못했다”고 풀장 안으로 걸어가셨다. 

 

이후 몸을 닦으려 나가보니 탈의실을 관리하는 직원부터 몇몇 회원들이 지친 표정으로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내가 수업에 올라간 뒤에도 들어오는 모든 회원들에게 자신이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말을 반복했고 결국 수영복을 갈아입고도 물을 뚝뚝 흘리며 샤워바구니를 안 가져왔다고 나가고 들어가기를 반복했다는 것. 

 

그리고 나를 보고는 “말을 너무 받아주지 말아라” “한 번 잡히면 끝도 없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댔다. 모두 입을 모아 “저 연세에 운동을 다니면 불안하지도 않나…” “운동하러 왔는데 (저 분 때문에) 피곤이 쌓인다” “곱게 늙으면 뭐하냐고. 본인이 피해주는지를 모르는 걸” 같은 말을 쏟아냈다. 사실 나 역시 과한 수다와 간섭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구박(?)을 받는 게 짐짓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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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에 비로소 만난 사랑의 감정을 그린 ‘장수상회’에서는 자기주장 강하고 억척스러운 주인공 성칠을 내세운다. CJ엔터테인먼트

 

자연스럽게 지난달 국민의힘 한민수 인천시의원이 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서 고령 노동자들을 겨냥해 “81세면 돌아가실 나이”라고 했던 망언이 생각났다. 그는 “(학교에서 일하다) 죽으면 큰일 나지 않느냐, 만일 돌아가시면 누가 책임지냐”며 “정리해야 한다”고도 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얼마전 친정 부모님의 안과 진료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아빠의 정기점진에서 안과에 관련된 이상 소견이 나와 긴 시간을 기다려 유명하다는 병원에 간 엄마가 대뜸 “의사가 마음에 안든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하셨다. 

 

몇 달을 기다려서 만난 의사가 제대로 된 설명도 안 해주거니와 너무 불친절하다는 게 이유였다. 유명 대학병원은 아니었지만 전국에서 노인들의 안과 시술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70대 후반인 엄마가 받았을 상처는 쳐다보지도 않고 “원인이 뭐래?”라고 물었더니 질문도 못 해보고 “수술해도 좋아질지 모르는 나이니 할지 말지를 결정해라”라고만 했단다. 

 

“원래 평균 상담시간이 2분을 넘지 않는다”고 넘겼지만 이후 다른 병원에서 부모님이 녹음해온 의사와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톤의 불친절함을 느꼈다.  대화를 녹음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막상 설명을 들을 때는 기억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뭐라고 했는지 가물가물해서였다. 약 이름도 헷갈리고 적기에는 말이 너무 빠른데다 “병원도 같이 안 간 너희들이 물어 볼 때마다 입 아프다”는 게 부모님의 항변이었다. 

 

총 녹음 시간은 약 7분여. 들어가서 앉아 소견을 듣는 데 50초, 수술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오가는데 부모님이 비슷한 질문을 두번 정도 더 하자  3분 정도 지점부터 “다른 환자도 봐야 한다. 여기서 자꾸 같은 말 물어보지 말고 자식분들과 상의해서 오시라”라는 말이 반복됐다. 

 

수술을 하면 더 잘 보일지 처방된 약은 무엇인지,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5분 정도의 상담이 지나자 간호사에게 추가 설명을 들으라고 했다. 요지는 “환자의 나이로 봐서는 노안이기에 수술 후 더 좋아질지는 모르겠으나 수술을 하겠다고 하면 다른 선생님과 의논을 하겠다”였다. 이런 두루뭉술한 대답을 듣고 온 부모님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예약된 외래 진료를 제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간호사에게 필요서류도 아닌 “궁금한 걸 물어보라”는 이 태도와 “늙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건조한 대답은 뭐란 말인가. 그래도 부모님은 첫 번째 의사보다는 궁금증이 많이 풀린 눈치였다. 태도가 어쨌든 어른들 입장에서는 말을 들어주고 (비록 구박은 좀 받아도) 원하는 대답을 듣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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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송 포 유’는 노년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치 않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사진제공=NEW)

 

출퇴근 시간에 수많은 노인들을 만난다. 대체적으로 막무가내고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다. 여기저기 툭툭 치거나 어깨를 밀고 들어오는가 하면 배낭을 맨 상태에서도 가슴으로 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와 전시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주말 전철 안에서 칭얼거리는 6살 딸을 겨우 자리가 나 앉혔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당당히 “애는 안고 가고 내가 앉으면 안될까”라는 분도 만나봤다. 며칠 전에는 한 할머니가 내 허벅지와 무릎을 짚고(?) 일어나기도 했다. 내리기 직전까지 “차 안이라 잘 안들리니 크게 말하라”고 당당히 긴 통화를 이어가셨다. 

 

인간은 모두가 늙는다. 하지만 그 모습은 모두 다르다. 수많은 구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만인의 할머니’로 거듭난 밀라 논나 같은 우아한 노년도 있지만 ‘남에게 끼치는 피해’를 권리로 생각하거나 아예 배려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 이제는 잘 먹고 잘 살기를 넘어 ‘잘 늙기 위한 공부’가 필요할 때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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