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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K패션 노리는 '상표 도둑'

입력 2024-05-26 14:35
신문게재 2024-05-27 19면

전소정 변리사
전소정 인탤런트 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필자가 일하는 특허사무소는 9년 전 특허청에 의뢰를 받아 중국 상표 브로커들에 대한 조사 업무를 시작했다. 조사 과정에서 모 중국 브로커가 한국 기업들의 유명 상표들을 수백 건 출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설립한 회사명으로도 수백 건을 출원했고 해당 브로커가 대표로 되어 있는 회사만 5개에 달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2000여 개가 넘는 한국 기업 상표가 중국인 한 사람에게 도둑 맞은 셈이었다.


특허청에서 우리 기업의 상표를 보호할 만한 묘안은 없는지 자문을 구했으나 그 당시 중국 상표법은 해외에서만 유명한 상표를 보호해 주는 제도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당소는 머리를 맞대고 중국 상표법과 판례 연구를 하기 시작해 중국 본토 내에서 자국의 브로커들에 대해 중국 상표법 제44조(기타 부정당한 수단으로 등록한 상표)를 적용하여 무효화시킨 최고인민법원 판례를 찾은 것이다.



이 판례와 함께 자국의 브로커들에 대해 중국 상표법 제44조를 적용해야 한다는 중국 법학자들의 법률칼럼 등을 모아 중국 상표 브로커들에 대한 대응 솔루션을 만들어 공동소송에 나서, 줄줄이 승소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 특허브로커에게 무단 선점된 상표들은 대부분 한국 프랜차이즈 음식점, 카페 상표들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 상표브로커 문제가 가장 심각한 업계는 한국의 패션 업계이다. 당소는 매년 정기적으로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 기업들, 특히 패션, 뷰티, 푸드 분야의 상표 무단 선점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 중 패션분야의 무단 선점 실태는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를 살펴본 즉, 화장품 분야의 경우 중국에서 화장품에 대한 승인 절차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법적인 요건을 꼼꼼하게 검토할 가능성이 높아 상표권 등록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패션 분야는 알리, 타오바오, 테무 등 중국 온라인 시장을 통해 어떤 승인 절차도 없이 빠르게 유통될 수 있기 때문에 법적 보호를 타 분야보다 소홀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패션 분야는 신진 디자이너 등이 홀로 사업을 운영하느라 1인 다역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미처 상표 출원 등을 챙기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로도 상표 출원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특히 최근에는 무신사 등에 입점된 수백, 수천개에 이르는 K-패션 브랜드들이 중국 상표 브로커에 무단 선점 되어 있는 사실이 발견되어 여러 의류 기업이 해당 중국 상표 브로커에게 공동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전쟁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중국의 지식재산권 제도도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온라인 시장에서의 모조품 유통은 여전히 성행 중이다. 중국인들의 지식재산권 의식 제고와 함께 우리 기업의 적기 출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패션 기업들이라면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중국, 동남아 시장 진출은 상수라고 생각해야 한다. 국내 상표 출원과 함께 적어도 중국 상표 출원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책이자 대응책이다. 무단 선점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정부에서 거의 모든 소송비용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번거롭다는 이유로, 아직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지원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은 의식과 태도의 문제이다. 지식재산권에 대한 의식과 태도를 끌어올리지 않는 한, 이 전쟁의 종전은 요원할 것이다.

전소정 인탤런트 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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