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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듣는 직업'의 어려움

입력 2024-07-03 09:22
신문게재 2024-07-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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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영 기자
일천한 경험이지만 기자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한 일은 ‘듣는 일’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사람에게 묻는 일도 제대로 듣기 위한 초석이었다. 지난 5월 리딩방 피해 자들을 인터뷰 하기 위해 주말 동안 삼남 지역을 다녀왔다.



첫 인터뷰부터 난관이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명함을 건넨 뒤 준비해 온 질문지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것부터 여쭤보겠습니다…’ 취조도 아닌데, 그 순간 취재원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어색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의 편안한 대화를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인 편견도 잘 ‘듣는 일’을 방해했다. 리딩방 사기 피해 기사의 단골 댓글은 ‘속는 사람이 바보’라는 글이다. 사실 용산에서 떠나는 새벽까지도 반신반의했다. 피해자가 세력을 이용하려다 당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 콩쿠르 비용이 시급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자기 집 보물이라며 딸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절박하면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녹취를 들어봤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가 모스부호처럼 ‘툭’하고 끊겨있었다. 기자는 취재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장 질문을 이어갔다. 생각에 잠겼던 인터뷰이는 하려던 말을 머금고 이내 다음 질문에 대한 답으로 넘어갔다. 진심이 담긴 대화가 아닌 기계적인 작용과 반작용이었다. 취재원은 그냥 질문에 반응했을 뿐이었다.

이런 식의 인터뷰가 누적되면서 ‘듣는 일’이란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자 침묵을 기다리는 것이란 점을 느끼게 됐다. 요즘은 취재원을 만나면 “구름이 잔뜩 끼었다”는 식의 인사부터 꺼낸다. 때로는 명함보다 그런 말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대답을 들어도 바로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말이 끝났다는 눈빛을 읽기 전까지 기다린다. 그러고 나면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는 길에 악수를 받게 된다. ‘잘 들어줘서 고마웠다고.’

노재영 기자 noh@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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