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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위대하거나, 위험하거나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오찬호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입력 2024-08-10 07:00
신문게재 2024-08-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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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문명의 이기(利器)’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인류가 발명해낸 많은 창조물들은 우리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도 적지 않다. 이 책의 부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야 할 질문’인 이유다. 저자는 정말로 멋져 보이는 문명의 이기들에게서 발견되는, 우리가 한 번쯤은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점들을 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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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오찬호|북트리거

◇ 편리하지만 끔찍한 ‘플라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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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플라스틱 중독 세상’에 살고 있다. 주변이 온통 플라스틱 투성이다. 처음에는 ‘신의 선물’이었다. ‘생각한 대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의 그리스 어원 ‘플라스티코스’ 그대로 였다. 그런데 이제는 ‘플라스틱의 역습’이 이뤄지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도, 남극 눈 속에서도 발견된다. 태평양 한 가운데 거대한 쓰레기섬 GPGP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1조 8000억 개나 있다고 한다.



분리수거가 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중 재활용 비율은 고작 1.7%에 불과하다. 그것도 2060년 예상치다. 재활용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해 환경 문제도 야기된다.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최대 이슈다. 저자는 “이제 누구나 ‘환경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선 자본주의의 미덕인 ‘소비’도 자제 혹은 절제해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한다.

 


◇ 간편함 뒤의 찝찝함 ‘수세식 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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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에서 제대로 된 화장실을 이용 못하는 인구가 15억 명이다. 우리도 집에 수세식 화장실 없는 인구가 2022년 기준 2.5%(130만 명)에 달한다. 수세식 변기는 백신, 항생제와 함께 인류 건강을 지킨 대표 발명품이다. 문제는 이걸 한 번 내리는데 10리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생수통 100여 개가 오물 치우는데 사용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악평도 받는다.

2020년부터 6리터 이하 변기 제조를 의무화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수도법 시행규칙에 ‘변기 막힘 해소’를 위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그래서 4리터 이하 1등급, 5리터 이하 2등급, 6리터 이하 3등급 식으로 절수 등급 표시 의무화로 바뀌었다. 저자는 “우리는 오물을 물로 흘려보내면 그만이라는 듯 살고 있다”면서 “그 간편함 탓에 다른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병 주고 약 주는 ‘진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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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는 ‘아편’에서 유래한 단어다. 병원에 가는 순간 우리는 이 마약성 진통제에 노출된다. 이제 길거리 마약보다 의사들이 처방해 주는 약이 더 큰 문제다.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의사처방이라는 합법적 경로로 전염병처럼 퍼져 나간다. 이러니 음지에서는 모르핀보다 안전하다며 불법 약물 ‘헤로인’ 공급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기적의 진통제’가 ‘사람 죽이는 진통제’가 되고 있다. 2021년에 미국에서 11만 명이 약물 오남용으로 사망했는데, 75%가 오피오이드 관련 사망자였다. 제약회사들은 ‘중독성 있음’이라는 문구만 붙이고는 부지런히 합성 마약을 만들어 낸다. 한국 역시 남용 우려가 크다.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를 쓴 앵거스 디턴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과 미국의 절망사가 배경이 비슷하다”며 깊은 우려를 내보였다.

 


◇ ‘피임약’, 여성은 해방시켜 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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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 임신 중 의도치 않은 임신이 48%에 이르고, 이 중 임신중절로 이어지는 비율이 61%에 이른다는 유엔인구기금의 통계가 있다. 미국의 산아제한 운동가 마가릿 생어는 피임 방법을 알려주는 클리닉을 만들어 이런 의도치 않은 임신을 막는데 기여했다. 가난하고 무지해서 피임을 몰라, 가족 모두가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깨려 했다. 그의 어머니도 19번의 임신과 11번의 출산으로 49세에 요절했다.

계속되는 임신과 출산을 ‘엄마’라는 이유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강요된 모성’이다. 피임약은 그렇게 여성을 구원했다. 가능한 만큼만 출산해 ‘자발적 모성’이 가능해졌고, 임신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여성들은 인생을 ‘계획’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저자는 “임신을 초래한 남성은 여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성들이 피임약을 먹는 것도 그런 불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스마트하지만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 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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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스마트하다는 기계가 전혀 스마트하지 않다. 엉터리, 가짜 뉴스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풍성함이 주는 놀라움에 취해 그것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는 나쁜 습관이 생겼고 결국 중독이 되어 버렸다. 끊임없이 찾고, 고민하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도 줄어들었다. 무엇을 빨리 찾는 게 스마트해 보여서, 자신이 얼마나 스마트하지 않은 지를 모르게 되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해 죽는 ‘노모포비아(Nomophobia)’의 시대다. 여기에 챗GTP는 사람들의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단번에 해결해 준다. 예전에는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는 게 ‘성장’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비효율을 넘어 한심하다고 까지 느껴진다. 스마트 폰이 신체 일부가 되어 버린 ‘포노 사피엔스’가 넘치는 세상이 되었다. 저자는 “스마트 폰이 ‘기계’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찍혀서 안심되지만 불안한 ‘CC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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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폐쇄형’ CC TV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로켓 시험 발사대 부근을 특별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지금 CC TV는 ‘양 날의 검’이 되었다. 안전을 담보해 주는 유용한 도구일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감시의 도구로 약용될 여지도 많다. 탁월한 범죄 해결에 대한 신뢰 덕분에 “없었으면 큰 일 날 뻔 했다”는 만족감도 크지만 “왜 여기에 CC TV가 있냐”는 불만도 가득하다.

한국에서 공공형 CC TV는 2008년 15만 7000대에서 2022년 160만 7000대로 폭증했다. 민간 CC TV는 그 10배로 추정된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이유다. 문제는 찍히는 대상이 준 범죄자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촬영되는 순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폐쇄회로의 ‘폐쇄’는 기계를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사람의 삶이 매우 제한되어 버렸다”고 꼬집는다.

 


◇ 동네를 점령한 ‘프랜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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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편의점에는 없는 것이 없다. 심지어 집과 차도 판다. 전국적으로 5만 곳이 넘는다. 1989년에 지금 형태의 편의점이 나타나면서 라이프 스타일이 변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발달하면서 동네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 빵집 대신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자리를 차지했다. 피아노 학원도 프랜차이즈화되었다. 그 고급스러움과 깨끗함이 주는 안락함에 동네 자영업자들은 살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프랜차이즈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된다. 가맹비와 교육비, 광고비 등이 크게 발생한다. 창업 비용도 주인이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매장 넓이도 최소 기준이 정해져 있다. 점포 사장은 위험 부담을 줄여준다는 대가로,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가게 주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저자는 “기업의 비용 절감, 이윤 증가’ 법칙이 우리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무시하지 말자”고 호소한다.

 


◇ 가장 효율적이지만 가장 위험한 ‘원자력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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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핀란드와 스웨덴, 프랑스만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했을 뿐, 대부분 나라가 핵폐기물을 발전소 내부에 임시 보관 중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도 있지만 너무 비싸다. 그 과정에서 플루토늄이 추출되어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나라들만 가능하다. 핵 폐기물을 로켓에 실어 우주에 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실패해서 공중폭발이라도 하면 인류는 멸망한다.

우리는 2015년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원전에서는 매년 평균 700여 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해 누적된 양이 2만 톤에 달한다. 원전 내부의 임시저장소는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다. 저자는 “재생에너지 수준이 높아져 원전에 의존하는 비중을 줄여 위험도를 낮추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나는 시원해지고 우리는 뜨거워지는 ‘에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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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에어컨은 분명 20세기 공학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다. 에어컨이 가동된 수술실에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그 쾌적함을 추구하는 속도가 기후변화보다 너무 빠르다. 에어컨 냉매제인 CFC(염화불화탄소)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에서 통제 방침이 확정되었지만, 2010년이 되어서야 지구 전체에 금지되었다.

급한 불은 끄기는 했지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CFC의 대체제로 선택된 HCPC(수소염화불화탄소)는 여전히 오존층을 파괴했고, HPC(수소불화탄소)도 이산화탄소 1000배 수준의 온실가스를 내뿜었다. 저자는 “에어컨을 파괴하자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쾌락함이 주는 말초적 감각에 경도되지 말고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할 책임 있는 질문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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