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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여전함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Culture Board] 유승호 연극 무대 데뷔작 '엔젤스 인 아메리카 파트1'

입력 2024-07-31 18:00
신문게재 2024-08-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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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프라이어 월터 역의 유승호(왼쪽)와 손호준(사진제공=글림컴퍼니)

 

무려 200분, 3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에 인터미션만 두번이다. 하물며 2부작 중 절반인 1부일 뿐이다. ‘링컨’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등의 토니 커쉬너(Tony Kushner)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파트1’(Angels in America, 8월 6~9월 28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이 개막한다. 

밀레니엄 직전의 세기말을 배경으로 동성애자, 모르몬교도, 유대인, 흑인 드래그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혼란을 마냥 새하얗지만은 않은 천사를 등장시켜 혼돈과 공포,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켜 풀어가는 문제작이다. 파트1 ‘밀레니엄이 다가온다’와 파트 2 ‘페레스트로이카’로 나뉜 8막짜리 작품으로 1991년 초연 후 1993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퓰리처상,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등을 휩쓸었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연습 중인 프라이어 월터 역의 유승호(왼쪽)와 벨리즈 태항호(사진제공=글림컴퍼니)

 

2003년 알 파치노, 메릴 스트립 등의 TV영화로 만들어져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을 받기도 했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국립극단에서 정경호, 박지일과 박용우 부자 등의 출연으로 2021년 파트1, 2022년 파트2가 초연된 데 이은 두 번째 시즌이다. 

 

소녀시대 수영의 연극 데뷔작 ‘와이프’를 비롯해 ‘그을린 사랑’ ‘튜링머신’ ‘언체인’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신유청 연출작으로 ‘스파이더맨’ ‘데드풀’ ‘엑스맨’ ‘쥬만지’ ‘존웍’ 시리즈와 ‘보헤미안 랩소디’ ‘콜 미 바유 유어 네임’ 등 할리우드 영화와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썸씽로튼’ ‘식스 더 뮤지컬’ 등으로 잘 알려진 황석희 번역가가 새로 합류했다.

 

엔젤스인아메리카 공연 포스터_제공 (주)글림컴퍼니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포스터(사진제공=글림컴퍼니)

신유청 연출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저를 뒤흔들었던 작품”이자 “제 삶을 뒤집어 놓는 경험들을 하게 한, ‘엔젤스 인 아메리카’ 이전과 이후가 좀 달라졌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더불어 황석희 번역가의 전언처럼 “영화를 600편 가까이 번역했지만 정말 드문, 채 5편도 안 되는 완성도 있고 멋있는 문장”과 “굉장히 긴 묵직한 독백에도 흐름이 끊기지 않는 위트들”로 무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데뷔 24년을 맞은 유승호의 연극 데뷔작으로 그는 손호준과 더불어 북동부 특권층을 일컫는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 WASP,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 출신의 동성애자이자 에이즈환자인 프라이어 월터를 연기한다. 

 

프라이어의 연인이자 미 연방 제2항소법원의 유대인 사무직원 루이스 아이언슨은 드라마 ‘펜트하우스’ ‘연애지상주의구역’, 연극 ‘어나더 컨트리’ 등의 이태빈과 뮤지컬 ‘앤’ ‘오즈’ 등의 정경훈이 더블캐스팅됐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공주의 남자’ ‘시티헌터’ ‘신기생뎐’ ‘자이언트’ ‘불멸의 이순신’ ‘야인시대’ ‘여인천하’ 등에서 굵직한 연기를 선보인 이효정의 25년만의 무대 복귀작이자 ‘삼남매가 용감하게’ ‘멜로가 체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빠는 딸’ 등으로 이름을 알린 이유진의 연극 데뷔작이기도 하다. 

부자 사이인 이효정과 이유진은 각각 스스로가 유대인이며 동성애자이자 에이즈환자임을 극구 부인하는 악마 변호사이자 보수주의 정치계의 유력인사 로이 콘 그리고 성정체성과 모르몬교도로서의 신념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미국 연방 제2항소법원 수석 서기관 조셉 피트로 호흡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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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지간인 이유진(왼쪽)과 이효정은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애정 관계에 빠져드는 조셉 피트와 로이 콘으로 분한다(사진제공=글림컴퍼니)

두 사람은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혼란스럽게 여기면서도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며 기묘하게 얽혀드는, 쉽지 않은 인물들을 연기한다. 절대적인 악의 영역에 서 있는 실존 인물을 극화한 로이 콘은 이효정과 더불어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등의 김주호 그리고 그와 애정관계로 발전하는 조셉 피트는 이유진과 ‘광염소나타’ ‘마마돈크라이’, 화가시리즈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아르토, 고흐’ ‘천사에 관하여: 타락천사 편’ 등의 양지원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발륨 중독으로 환상에 갇혀버린 조셉의 아내 하퍼 피트는 ‘빙의’ ‘그녀는 예뻤다’ 등 고준희와 ‘시지스프’ ‘여고괴담’ ‘히든’ 등 정혜인이, 드래그퀸 출신의 혼혈 간호사 벨리즈는 태항호와 민진웅이, 조셉의 어머니 한나 피트로는 무대와 매체를 오가며 활약 중인 전국향과 방주란이 더블캐스팅됐다. 프라이어에게 신의 계시를 전하고 천국과 지구를 연결하는 메시저인 천사는 초연에 이어 권은혜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91년이나 배경인 1980년대는 동성애나 유대인, 흑인 등이 차별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다. 부정부패가 팽배하고 소수자에 대한 무시와 멸시,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던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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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연습 중인 프라이어 월터 역의 손호준(왼쪽)과 루이스 아이언슨 이태빈장면(사진제공=글림컴퍼니)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안의 빗금치기 그리고 너와 나, 정치색, 남녀, 인종, 신의 존재에 대한 이견 등으로 갈라치기가 난무하고 전쟁과 인권유린이 여전한 지금. 그 여전함에서 스스로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소수자가 아니라고 해서 마냥 자유롭고 정당한 대우나 배려를 받고 있는가. 정치적, 국가적 상황을 등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신앙, 국가와 사회, 기득권들 사이에서 올바른 해석을 하고자 중심을 잡으려는 일들의 연속인 지금과도 맞닿은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30여년 전에 쓰여졌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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