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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의사 특혜냐…소신진료 지원이냐

복지부, 필수의료 의료사고 부담으로 기피…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추진
복지부, 공소제기 제한·필수의료 과실치사상 형 감면
환자·시민단체, 위헌 소지·피해자 보호 정책 없어…“의료인 특혜만 규정”
의료전문 변호사 “현실 형사처벌 극도로 낮아”…의사에 기울어진 운동장 제도화 가능성

입력 2024-08-25 14:07
신문게재 2024-08-2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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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특별위원회 의료개혁추진단(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 주관)이 지난 22일 개최한 환자·의료인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안전망 구축 방향 토론회에서는 2시간 동안 환자·시민단체와 의사들이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제정을 추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을 놓고 환자·시민단체와 의사들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앞으로 입법 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줬다.



복지부는 지난 2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의료인(의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 등)들의 의료 사고로 인한 민·형사상 부담을 줄여주고 특히 의사가 ‘소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복지부는 필수의료 분야가 취약해지는 이유 중 하나로 높은 의료사고 부담을 꼽았다. 적정 보상체계가 없고 사고 시 소송 위주 해결이 많아 의사가 기피한다는 것이다.


복지부, 필수의료 “적정 보상체계 부재, 소송 위주 해결 많아”…업무상과실치사상죄 입건 의사 2020년 868명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5월 발간한 제22대 국회 입법·정책 가이드북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입건된 의사수는 868명으로 6년 전 677명에 비해 28.2% 증가했다.

이에 복지부는 필수의료 분야 강화를 위해 충분한 피해자 소통·배상을 전제로 의료인의 형사적 책임을 완화·경감해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공청회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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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건복지부
우선 책임보험 가입과 피해 당사자 합의를 조건으로 반의사불벌(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음) 원칙(4조 처벌의 특례)이 도입된다. 다만 수술 부위·투약·수혈 오류 등 중대한 과실 8가지와 의무기록 열람, 사본 교부를 거부하는 등 의료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위·변조하는 경우, 의료분쟁 조정절차에 참여하는 않는 경우 등은 예외로 뒀다.

이어 중대 과실 8가지·의료정보 미공개 등 예외 사유와 중상해(사망) 외는 종합보험에 가입을 조건으로 형사소추 면제(5조 보험 등에 가입된 경우의 특례)가 가능토록 했다. 또 종합보험 가입을 전제로 응급 의료행위, 중증질환, 분만 등 필수의료행위로 인한 상해 및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면제(6조 필수의료행위에 대한 형의 감면)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책임보험 가입 전제 반의사불벌·필수의료 행위 사망 시 형 감면 가능…복지부 “소신 진료 여건 마련”

복지부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시행되면 의사가 과도한 사법리스크 없이 소신 것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한 환자·시민단체와 의사(단체)의 입장차가 크고, 의사에 대한 특혜적 규정이 많다는 논란에 따라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환자·시민단체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의사(의료인) ‘특혜적’이고 ‘위헌적’이라며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료소비자연대·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6개 환자·시민단체는 지난 6월 발표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공동의견서에서 법안은 위헌 소지가 있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정책은 담기지 않았으며, 필수의료 회복이라는 제정 취지와 다른 의료인 특혜만 규정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 단체는 지난 2009년 위헌 결정을 받았던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유사한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며 필수의료행위인 경우 중상해에도 형사고소 자체를 금지시킨 내용은 재판절차진술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특정 직군을 위한 특례의 입법례를 국내·외에서 찾아볼 수 없고 기존 의료인 특례 제도에 추가 특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자·시민단체, “위헌 소지, 특혜적…피해 입증책임 전환 반드시 필요”

이들 단체는 “환자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12개 유형의 이외의 모든 중과실로 발생한 의료사고와 사망 또는 중상해 결과가 발생한 의료사고까지 공소제기 불가와 형의 임의적 감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료인에 대한 특혜만 부여하는 특례법 제정을 중단하고 환자피해 구제를 강화하기 위한 종합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환자피해 구제를 강화하기 위한 핵심 방안으로 의료사고 입증책임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 시 의료인이 본인 책임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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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시 중구 T타워에서 환자·의료인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안전망 구축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보건복지부)

 

지난 22일 열린 의료사고안전망 구축 방향 토론회에서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입증책임 전환을 전제로 특례를 준다”며 “하지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입증책임 전환이 안 돼 있어 여전히 환자가 (피해)입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기종 대표는 이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모든 국민이 다 가해자가 될 수 있지만 의료사고는 의료인만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특징 때문에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은 발의해봤자 위헌이 된다”며 “저는 정부가 이 법을 발의 안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기종 대표는 또 사망 등 의료 사고 시 과실이 있는 것 같으면 의사가 애도와 설명 등을 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불만이 많다며 그럼에도 “형사 고소를 하지 않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이야기 한다”며 “그래서 환자들에 대한 설명 의무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 기소 통계 오류 등 형사적인 부담이 과장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박호균 변호사(의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일각에서 알려진 한국 의사들이 연간 약 750건 정도 기소가 된다는 주장에 대해 통계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호균 변호사는 “이 통계의 정확성에 대해 조사를 해봤더니 750건 정도 형사 기소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호균 변호사는 최근에 알려진 20년 자료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의사 기소는 연간 15건 정도라고 설명했다.



의사 기소 통계 오류 “연간 15건”…이미 현실은 의사 우위 ‘기울어진 운동장’

또 일선 의료 사고 소송현장에서는 실제 의사 처벌 비율이 굉장히 낮아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기존 의사 우위의 현실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와이케이 신은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현실에서 이미 의사에게 법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제도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은규 변호사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논란에 대해 “이미 현장에서는 의사를 업무상 과실 의료행위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고소를 해도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 자체가 극도로 낮고 설사 형사처벌 단계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벌금 몇 백만원 정도 내고 끝나고 사망했는데도 합의하면 기소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들 측의 주장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통과가 돼야만 의사들이 더 소신껏 진료를 할 수 있고 위험 부담이 없다고 하는데 이미 현실에서는 의사들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인해서 어떤 신변에 영향이 갈 만한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도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 ‘신중한 검토’를 주문했다. 입법조사처는 제22대 국회 입법·정책 가이드북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필수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 부담을 완화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도모할 수 있는 균형잡힌 법률 제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원배 기자 lwb2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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