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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작곡가 나실인 “일생 동안 오페라 10편, 발레 5편, 뮤지컬 네댓 편을 목표로!”

입력 2020-09-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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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실인 작곡가(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제 꿈은 베르디처럼 오페라 10편 정도는 써보고 가는 거예요. 오페라 10편, 발레 5편, 뮤지컬 4, 5편 정도 하고 죽으면 여한이 없을 듯해요.”



그 누구 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실인 작곡가의 바람은 이랬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재확산에 온라인으로만 만난 ‘부동산’ 소재의 창작 오페라 ‘빨간 바지’와 취소된 오페라 ‘춘향 2020’ 뿐 아니다.

연말 국립극장의 3개 전속단체(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가 합동으로 선보일 예정인 ‘명색이 아프레 걸’(가제), 음악적 요소가 많은 연극 ‘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 두산아트센터 제작 뮤지컬 시범공연,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뮤지컬 ‘쌍용스쿨’(가제) 쇼케이스, 대구에서 공연될 오페라까지. “올해까지 해보고 다음 일정이 안생기면 관두자” 했던 올초 결심이 무색하게 분주한 행보다.


◇‘재밌는 오페라’로 의기투합한 윤미현 작가

윤미현 작가
오페라 ‘빨간 바지’ ‘춘향 2020’, 연극 ‘양갈래머리와 IMF’ 등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윤미현 작가(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발레든,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음악극이든 마찬가지죠.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다뤄질 만한 혹은 동시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찾고 있어요. 앞으로도 윤미현 작가님 옆에 꼭 붙어 있으려고요.”

클래식과 대중 장르, 동서양이 만나는 등 이종 간의 조우가 당연해진 시대, 나실인 작곡가는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이야기”라며 “좋은 이야기를 만나 잘 표현해내는 게 첫 번째”라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재밌는 오페라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같아요. 작가님도, 저도 재미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통하는 것 같아요.”

2020년 나실인 작곡가의 작업 중 오페라 ‘빨간 바지’ ‘춘향 2020’, 연극 ‘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 두산아트센터 제작 뮤지컬 등 절반 이상이 윤미현 작가와의 콤비작이다.

윤미현 작가는 나실인 작곡가와 호흡을 맞춘 ‘빨간 바지’ ‘춘향 2020’ ‘검은 리코더’를 비롯해 오페라 ‘텃밭 킬러’, 연극 ‘텍사스 고모’ ‘궤짝’ ‘광주리를 이고 가시네요, 또’ 등 극빈층, 노인들을 비롯한 소외된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의 대본을 집필했다.

“(윤미현) 작가님이 견지하는 시선이 좋았어요. 공연예술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인 경우가 별로 없는데 작가님 작품 속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이죠. 한번은 작가님 이야기는 마음에 드니 극빈층인 주인공을 회장님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어요.”

그리곤 “작가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극빈층 사람들 마인드는 웬만한 회장 저리 가라일 정도로 더 부자”라며 “특히 노인 시리즈에서 85세 넘은 할머니들의 생명력은 정말 강하다”고 설명했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오페라 ‘텃밭킬러’의 할머니(골륨)처럼 완전 가난한데 생명력은 누구보다 강한 캐릭터들이 너무 좋아요. 현실적인 캐릭터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불쌍하고 도와줘야 한다’ 등 사회가 씌워놓은 프레임을 깨는 인물들이죠. 작가님 작품 안의 그런 생명력이 너무 좋아요.”


◇탈옥한 춘향, 장원급제는 남의 얘기 몽룡, 다정도 병인 양한 변사또 ‘춘향 2020’

나실인
오페라 ‘춘향 2020’ 연습실의 나실인 작곡가(사진제공=예술의전당)

 

“1분마다 웃겨야 하는 ‘청춘 로맨틱 코미디’로 콘셉트를 잡았어요. 아리아나 레치타티보(Recitativo,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 보다는 모차르트의 징슈필(Singspiel, 노래연극)처럼 대사가 많죠. 하지만 오페라답게 예쁜 아리아들도 많아요.”

나실인 자곡가는 ‘춘향 2020’에 대해 “스토리는 안바뀌지만 캐릭터들이 변화를 맞는다”며 “춘향이는 탈옥하고 몽룡이는 끝까지 급제를 못하며 변사또는 춘향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소개했다.

“변사또는 춘향이를 감옥에 가두지만 모든 편의를 봐줘요. 매일 춘향이를 위해 시 한편씩을 써서 바치기도 하죠. 사실 그건 ‘스토킹’이죠. 지금 시대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결국 춘향이는 탈옥해 몽룡이를 공부시키려고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고 변사또는 이 마저도 지켜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제스처를 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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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춘향 2020’(사진제공=예술의전당)
나실인 작곡가는 “모든 작품의 음악작업을 할 때 힘을 빼는 데 초점을 맞춘다”며 “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식”이라고 털어놓았다.

“예전에 실패했던 작품들은 ‘오페라를 쓸거야’라는 생각으로 썼어요. 하지만 지금은 힘을 빼고 최대한 듣는 사람을 생각하죠. 오페라를 쓸 때는 ‘뮤지컬을 쓸거야’, ‘극장 앞 독립군’ 같은 음악극을 쓸 때는 ‘동요를 쓸거야’라고. 제가 잘나거나 음악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에요. 엄청난 양질의 음악을 원하는 요즘 청자들을 만족시키면서도 보다 친근하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함이죠.”


◇국립극장 ‘명색이 아프레걸’, 연극 ‘양갈래 머리와 아이엠에프’, 뮤지컬 ‘쌍용스쿨’…

“제가 오페라 10편을 한다고 다 좋을 수는 없잖아요. 10편 정도 해서 2, 3편이나 남으면 다행이죠. 그래서 역사에 남으려면 일단 작품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빨간 바지’ ‘검은 리코더’ ‘춘향 2020’까지 오페라는 3편을 했고 발레는 ‘처용’ ‘오월바람’ 두편을 했어요. ‘극장 앞 독립군’으로 뮤지컬도 한편 했죠.”

목표로 세운 10편의 오페라, 5편의 발레, 네댓 편의 뮤지컬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그는 남은 2020년도 다양한 작품에 힘을 보탠다. 국립극장의 ‘명색이 아프레걸’은 지난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체 통합공연 ‘극장 앞 독립군’으로 함께 했던 김광보 연출, 고연옥 작가의 작품으로 한국 최초 여성감독인 박남옥 선생의 일대기다.

‘아프레 걸’은 프랑스어로 전후(戰後)를 뜻하는 ‘아프레 게르’(Apres Guerre)와 소녀의 영어 표현인 ‘걸’(Girl)을 조합한 조어로 16미리 영화 ‘미망인’(1995) 단 한편을 남긴 박남옥 감독의 이야기다.

더불어 윤미현 작가와 함께 할 연극 ‘양갈래 머리와 아이엠에프’, 두산아트센터에서 제작할 신작 뮤지컬 시범공연을 비롯해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뮤지컬 ‘쌍용스쿨’(가제) 작업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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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실인 작곡가(사진제공=예술의전당)

 

“뮤지컬 ‘쌍용스쿨’은 세종대왕과 광개토대왕이 동시에 등장하는 무협액션판타지예요. 두 왕과 지금을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광개토대왕 담덕, 세종대왕 이도가 왕으로 즉위했을 때가 각각 19세, 21세였어요. 전혀 다른 세대를 살던 또래의 두 사람을 지금의 19세 청년이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졌죠.”

12월 쇼케이스로 먼저 진행될 ‘쌍용스쿨’에 앞서 나실인 작곡가는 9월 말 대구를 기점으로 활동하는 사립오페라단의 신작 작업에 돌입한다. 그는 “박희광이라는 독립운동가를 다룬 오페라”라 소개하며 “일제강점기 3인조 암살단 중 한분으로 친일파를 잔혹하게 죽인 걸로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자양분이 되는 “실패도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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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실인 작곡가(사진제공=예술의전당)
“제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오페라, 음악극 등을 계속 하고 있거든요. 사실 저는 음악에 별로 소질이 없어요. 귀가 좋은 편도, 피아노를 엄청 잘 치는 것도 아니죠. 클래식 작곡가로서 기본적으로 걸어야하는 길이 있어요. 유학을 가고 해외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고…저도 2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많은 시도를 했지만 별로 이루질 못했어요. 콩쿠르마다 탈락하고 유학생활 내내 생활고 해결을 위해서만 살았죠.”

그런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는 “오페라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오페라가 하고 싶었어요. 19세기 성행했던 오페라는 지금의 영화 같았어요. 당시 선호되던 그리스로마신화, 유럽 전쟁사, 실제인물 등의 소재로 무대화되던 대중적인 장르였죠. 하지만 어느 순간 오페라가 박제화되면서 과거 문헌을 재현해보는 의미로 반복돼 온 것 같아요.”

이어 “관객은 줄었지만 성악가들을 보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관객들은 여전히 많다”며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오페라를 만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오페라 아카데미, 세종 카메라타(한국 창작 오페라 연구·개발을 위해 서울시오페라단에서 2012년부터 결성한 작가, 작곡가 등 창작자모임) 등 우리가 반복해서 즐길 만한 잘 만들어진 오페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작품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모인 데 함께 할 기회가 생겼죠.”

그 기회를 통해 나실인 작곡가는 “어떻게 하면 재밌는 소재를 찾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작곡가, 작가들과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검은 리코더’ ‘극장 앞 독립군’ 등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정말 많은 곡을 썼어요. 오페라는 시범공연만 하고 본공연이 안되는 경우도, 지역자치단체에서 진행하다 갑자기 제작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많아요. 저 역시 그런 경험이 많죠. 완벽하게 써놓고 공연을 못한 경우가 네댓 작품은 돼요. 그때의 실패들과 써두고 선보이지 못한 많은 곡들이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의 위촉도 걱정이 안돼요. 그만큼 실패도 중요하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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