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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춘향가 파먹기’ 3년 소리꾼 이승희 “춘향과 향단에서 깨달은 연대의 힘”

입력 2020-09-27 18:00

이승희
2018년 ‘동초제 춘향가-몽중인 夢中人’에 이어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를 선보인 소리꾼이자 국악창작자 이승희(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사실 그간의 저는 ‘사람은 혼자 사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좀 이상하게 살았었어요. 하지만 돌아보니 제가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님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죠.”



2018년 ‘동초제 춘향가-몽중인 夢中人’부터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까지를 선보인 소리꾼이자 국악창작자 이승희는 3년 간의 ‘춘향가 파먹기’로 “연대의 힘을 발견했다”고 털어놓았다.

“신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춘향과 향단의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춘향과 향단처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관계는 분명 어디에나 있거든요. 지금도 모든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잖아요.”
 

이승희
2018년 ‘동초제 춘향가-몽중인 夢中人’에 이어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를 선보인 소리꾼이자 국악창작자 이승희(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이렇게 전한 이승희는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 중 꿈속에서 만난 ‘언니’를 통해 춘향이 없으면 스스로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향단이 춘향 역시 내가 없으면 안되는구나를 발견하면서 신분을 뛰어넘는 춘향과 향단의 관계에 대해 논한다. 이는 곧 인간 이승희가 유지해 오던 삶의 태도 변화로 이어졌다. 

 

“내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위안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의 저를 돌아봤을 때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다시 좀 잘 살아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죠.”


◇사박자, 엇모리…현대화의 바이블, 전통판소리

“창작 판소리는 전통 판소리를 바탕으로 해요. 전통 판소리는 바이블처럼, 이야기 안에 상황에 맞는 장단과 음조가 치밀하게 짜여져 있거든요. 현대화 과정에서도 상황에 따라 느리고 슬픈 곡조, 빠른 장단 등 전통적으로 쓰는 방법들을 차용하죠.”

그렇게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 중 향단이 꿈으로 들어가는 부분의 ‘사박자’, 말붙임이 맛깔스러운 ‘엇모리’ 등의 장면이 만들어졌다.

“특히 엇모리는 전통 판소리에서는 거의 안쓰는 장단이에요. 중이나 호랑이가 내려오는 등 신비한 장면에 주로 쓰이죠. 시선이나 분위기를 바꿔줘야할 때 쓰는 모리죠. 저는 엇모리를 많이 쓰는 소리꾼이에요. 말붙임이 너무 재밌어요. 5박자 안에 들어가야하는 말 개수가 정해져 있어서 함축적으로 담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거든요.”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에서도 향단이 ‘일을 할까, 아니야’라고 고민할 때 쓰인다. 이에 대해 이승희는 “향단이 하는 ‘일을 할까, 아니야’라는 말과 소리가 붙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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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동초제 춘향가-몽중인 夢中人’에 이어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를 선보인 소리꾼이자 국악창작자 이승희(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춘향과 향단의 꿈에 주목한 ‘몽중인’ 시리즈를 비롯해 ‘안데르센’ 동화 시리즈, 최근 선보인 ‘레미제라블’ 중 ‘팡틴’ 등 판소리의 현대화와 창작에 주력하는 이승희의 행보는 녹록치 않은 작업들의 연속이다.

 

“판소리를 현대화하거나 서양의 이야기 중 일부를 판소리화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현대 악기를 들여오면서 리듬은 익숙해졌지만 선율은 여전히 어렵죠. 게다가 판소리는 장르 특성상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거든요. 소리 광대는 까불거나 너름새(무슨 일을 벌이고 주선하는 솜씨)가 좋아야 하는 등 관객들이 기대하는 부분들이 있죠. 아무리 무거운 이야기라도 재밌게 풀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올 때마다 늘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승희
2018년 ‘동초제 춘향가-몽중인 夢中人’에 이어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를 선보인 소리꾼이자 국악창작자 이승희(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잃어버린 12바탕의 소리를 찾아서!


“남아있는 다섯 바탕 외에 잃어버린 12바탕 등 판소리에는 변주되고 현대화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죠. 동물이야기인 ‘수궁가’에 사람을 빗대도 재밌을 것 같고 글은 남아 있지만 소리는 사라진 12바탕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고도 싶어요.”

이렇게 전한 이승희는 “저 뿐 아니라 젠더 바꾸기, 음악 및 반주 바꾸기, 비틀어 보기 등 판소리의 변주, 현대화가 많아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판소리, 국악 등이 이슈화되고 새롭게 다가가고 발견되는 것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전통과 창작이 선택이었다면 현재는 창작이 필수처럼 바뀌어가고 있어요. 소리꾼꾼들 색에 맞춰 재탄생되기도 하죠. 잘 알려진 이야기 혹은 정말 몰랐던 이야기들이 저만의 방식대로 판소리로 만들어 발표되는 기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이렇게 바람을 전한 이승희는 ‘소리꾼으로서 자신만의 색’에 대한 질문에 “여러 무대를 만들어가면서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관객과 나누지 않거나 혼자 갇혀 있는, 소리꾼 내면에 머무는 인물을 많이 그리는 편이에요. 이런 것들을 계속 하다 보면 오히려 저 스스로 제 안에 갇힐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빨리 벗어나야겠다 싶어요. 쌓아 놓은 이미지들도 전통 소리꾼이라기보다는 모던하다는 평이 많은데 이 역시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거든요. 이를 빨리 깨기 위해서 지난해부터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죠. 앞으로도 한쪽으로 치우치기 보다는 다양하게 몸집을 바꿀 수 있는 소리꾼이면 좋을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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