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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명색이 아프레걸’ 김광보 연출·고연옥 작가·나실인 음악감독 “모두가 힘든 시기, 그럼에도…”

입력 2021-01-22 18:30

명색이 아프레걸
국립극장 통합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의 김광보 연출(왼쪽부터), 고연옥 작가, 나실인 작곡가·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같은 역할이라도 배우마다 다른 음을 부르기도 해요. 박남옥 역할의 배우들 뿐 아니라 모든 캐스트가 그래요. 각자의 기량, 음역대에 따라 더 높은 음을 내기도, 낮은 음에서 맛을 살리기도 하죠.”



국립극장 전속단체(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통합공연 ‘명색이 아프레걸’(1월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의 나실인 작곡가·음악감독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소리를 낼 수 있게끔 하고 있다”고 밝혔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전후 오롯한 자신만의 의지로 영화계에 입문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삶을 따른다. 젊은 시절 투포환 선수로 활약하다 배우 김신재에 대한 동경으로 영화에 입문한 박남옥 감독의 여정과 그가 남긴 단 한편의 영화 ‘미망인’(1955)이 교차되며 시대를 초월한 한 인간의 열망과 집념 그리고 현시대를 조망한다.

 

명색이 아프레걸 나실인
국립극장 통합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의 나실인 작곡가·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세종문화회관 산하의 9개 예술단(서울시극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청소년국악단, 서울시 무용단, 서울시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통합공연 ‘극장 앞 독립군’의 김광보 연출, 고연옥 작가, 나실인 작곡가·음악감독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박남옥 감독의 특별한 행보에서 평범함의 가치를 건져 올린 작품으로 실패하더라 좌절하지 않는 한 인간의 의지와 집념을 그린다.

프랑스어로 전후(戰後)를 뜻하는 ‘아프레 게르’(Apres Guerre)와 소녀의 영어 표현인 ‘걸’(Girl)을 조합한 ‘아프레걸’은 전쟁 후 전통적인 사회구조와 봉건적인 관습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며 진취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꿋꿋이 수행하고자 했던 여성상을 일컫는다.

아이를 업고 촬영장을 직접 통제하는가 하면 배우와 스태프들의 밥을 손수 지어 먹인 일화로도 잘 알려진 박남옥 감독 역에는 국립창극단원이자 ‘트로이의 여인들’ ‘오르페오전’ 등과 뮤지컬 ‘서편제’ ‘아리랑’ 등의 이소연 그리고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 ‘배비장, 제주를 만나다’ 등의 김주리가 더블캐스팅됐다.

박남옥이 동경하던 김신재는 김지숙·백나현, 영화 ‘미망인’ 주인공 신을 연기했던 이민자는 김미진·정은송, 이택균은 김준수·정보권 등 국립창극단원들과 객원배우들이 번갈아 연기한다. 더불어 국립무용단 무용수 전정아·박준명·박수윤·박소영·이태웅·이도윤, 국립관현악단의 장광수(대금)·김형석(피리)·장재경(해금)·서희선(가야금)·손성용(거문고)·정재은(아쟁)·이유진(타악)과 피아노·드럼·기타·베이스 연주자들이 힘을 보탠다.


◇두 명의 박남옥, 이소연과 김주리

 

명색이 아프레걸
국립극장 통합공연 ‘명색이 아프레걸‘ 박남옥 역의 김주리(왼쪽)와 이소연(사진제공=국립극장)

 

“소리꾼으로 오래도록 자신의 소리를 다져온 이소연 배우와 이제 막 만들어가는 김주리 배우의 차이라면 연륜 정도예요. 이소연 배우의 박남옥 감독은 자신만의 소리가 캐릭터에 그대로 묻어나와요. 반면 김주리 배우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죠.”

이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고 전한 나실인 작곡가·음악감독은 “한 캐스트는 현대극처럼 느껴지고 다른 캐스트는 성숙하고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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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통합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의 김광보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나실인 작곡가·음악감독의 말에 김광보 연출은 이소연과 김주리가 표현하는 박남옥의 차별점에 대해 “박남옥이라는 인물이 전적으로 끌어가는 극이다 보니 배우가 어떻게 그 인물을 해석해내느냐와 맞물린다”고 부연했다.

“국립창극단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가 있고 커리어가 짧은 친구가 있어요. 자신의 삶을 박남옥이라는 인물에 어떻게 담아내는지의 차이죠. 이소연 배우는 그 인생의 깊이만큼 인물을 보여주고 있고 김주리 배우는 자유롭고 도전적이죠.”

나실인 작곡가·음악감독은 ‘명색이 아프레걸’로 첫 창극에 도전하면서 “소리적인 측면으로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창극의 음역대는 오페라나 뮤지컬과는 달라요. 오페라 성악가들이 마이크 없이 무대를 꽉 채우기 위해 가성을 내죠. 그 음역대에서는 가사나 연기에서 노래로 넘어갈 때의 괴리감이 있어요. 반면 창극 배우들은 자신이 말하는 톤에 노래를 얹어서 해요. 상대적으로 음역대가 낮은 편이죠. 특히 여자 배우들은 그 차이가 두드러져요. 가사나 연기에서 노래로 넘어갈 때의 괴리가 느껴지질 않아요. 자연스럽죠. 그게 창극이 가진 매력같아요.”

그리곤 “그 음역대 자체가 주는 편안함과 호소력, 전달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여자 음역대에서 좋은 소리가 잘 전달되는 노래들이 생겼다”고 귀띔했다.


◇2020년에 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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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통합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의 고연옥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예정된 공연들을 못했죠. 2021년으로 미뤄지기도 하고…”

‘명색이 아프레걸’ 대본을 집필한 고연옥 작가의 말처럼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냈다. ‘명색이 아프레걸’ 역시 지난해 12월 개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3차 재확산으로 개막이 미뤄져 축소공연 중이다.

“2020년은 ‘너무 힘들다’ 말하는 것도 미안한 마음으로 보냈어요. 저는 지금까지 공연을 많이 했으니까요. 하지만 젊은 친구들, 동료들, 후배들이 공연을 못해 좌절하는 모습에서 제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공연을 못하는 데 미안하고 마음 아프고…그런 생각으로 한해를 보낸 것 같아요.”

왠지 모를 “미안함”을 토로하는 고연옥 작가의 말에 김광보 연출 역시 “일희일비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고통스럽다’ 말하기도 어려운 한해였다”고 동의를 표했다.

“어렵다 말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공연들이 짧은 기간에 정상으로 돌아오긴 힘들겠지만 노력하는 후배들과 동료들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광보 연출의 바람에 나실인 작곡가·음악감독 역시 2020년에 대해 “심정이 복잡한 한해”라며 “2, 3년 전부터 계획된 많은 작품들이 2020년 공연예정이었지만 거의 취소되거나 미뤄졌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박남옥 감독이 불굴의 의지와 집념으로 영화 ‘미망인’을 완성시켰던 것처럼 그리고 실패를 무릅쓰고 후대의 길을 열었던 것처럼 “좌절하기 보다 서로에게서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코로나19로 착잡한 상황을 맞았지만 모두가 힘든 시기잖아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좌절하지 않고 힘을 얻으며 함께 가는 시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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