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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셰익스피어 원작 그대로…200분짜리 ‘리어왕’ 무대 오르는 이순재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구사 ”

입력 2021-10-03 14:30

리어왕 이순재
연극 ‘리어왕’의 리어 이순재(사진=허미선 기자)

 

“동숭동에서 많은 ‘리어왕’이 연극으로 공연됐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풀 버전이 없어요. 다들 두 시간 내외죠. 이번의 ‘리어왕’은 3시간 30분짜리 원전 그대로, 3시간가량이에요. 의상, 분장 등도 원전 그대로죠. 그대로 보지 못한 셰익스피어의 원형을 재현해보자 합의했습니다.”



연기인생 65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10월 30~11월 2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원작을 그대로 살린 무대에 오른다.

이순재 외에 첫째 딸 고너릴 역에 소유진·지주연(이하 가나다 순), 둘째 딸 리건에 서송희·오정연), 셋째 딸 코딜리아와 광대에는 이연희가 출연한다. 고너릴과 리건의 남편 올바니 공작과 콘월 공작은 각각 유태웅, 염인섭이, 글로스터 백작은 최종률, 그들의 아들인 에드가·톰은 권해성·박재민, 에드먼드는 박영주, 리어왕의 충신 켄트백작은 박용수가 연기한다.  

 

리어왕
연극 ‘리어왕’ 출연진(사진제공=파크컴퍼니)

“리어는 욕심나는 역할이고 해볼 만한 역할이지만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건 어떻게 보면 만용이죠.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어요. 이런 작품을 앞으로 언제 또 해보겠어요. 셰익스피어 작품은 문학성이 충분이 전달돼야 하고 연기와 학문은 차이가 있어요. 연극은 모든 환경의 사람들이 와서 이해하고 동감해 줘야 하죠. 너무 전문적으로 치우져 관객들이 이해를 못하고 가면 연극적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연극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로 어느 부분이든 관객이 이해하게끔 풀어내줘야 한다”며 “연습을 하다 보면 우리끼리는 다 알아서 넘어가는데 관객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조정 중”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에 이순재는 가장 중요하고 역점을 두는 것으로 “언어구사”를 꼽았다. 그는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언어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내용 전달이 거의 안된다”며 “단어, 비유, 복합적 용어, 문학적 수사 등이 많아서 정확히 전달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이 작품은 대화와 독백, 방백 세 가지 형식이 어울려 있어요. 한 사람 대사가 한장을 훌쩍 넘기는 경우 많죠. 면밀히 분석하고 장면들을 구성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언어구사력이죠. 이 작품 뿐 아니라 모든 작품이 그래요. 신분, 직업, 지적 수준 등의 표현이 언어로 가능해지거든요. 그 후에 수반되는 게 표정과 동작이죠. 그런데 그 부분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아요. ”

이어 이순재는 “셰익스피어의 영어는 (언어가 무시되고 표정과 동작으로 표현되는) 그런 영어가 아니다”라며 “정확한 언어전달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큰 고민이며 극복해야할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이순재는 200분 남짓의 23회차를 원캐스트로 혼자 감당해야하는 데 대해 “반복연습”을 강조했다.

“대본에 충실하는 수밖에 없어요. 대본의 상황, 인물의 조건, 심리 등의 변화에 맞출 수밖에요. 힘이 필요한, 역동적인 장면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늘 걱정이 앞서고 있어요. 단순한 준비로는 도저히 불가한 일이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반복 연습밖에 없어요.”


◇87세 이순재의 “셰익스피어 형식을 띤 내 작품 아닌 진짜 ‘리어왕’”

리어왕 이순재
연극 ‘리어왕’의 리어 이순재(사진=허미선 기자)

 

“배우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작품, 역할 등을 하고 싶다는 바람들 있어요. 연극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도 있어요. 배우로서 최고 행운은 그런 작품과 연출을 만나는 거죠. 특히 연극에서 고전을 접할 기회가 대단히 흔한 것 같지만 쉽지 않아요. 저 역시 60여년 연기생활 중 셰익스피어 작품을 못했어요.”

그는 “고전은 절대 쉽지 않다.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작품들도 아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있는 힘껏 내 역량을 뽑아내도 될까 말까한 작품들”이라며 “KBS 초기,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방송하던 시절” 한 PD와 논했던 ‘신파와 예술의 차이’를 털어놓았다.

“행위 자체로 끝나는 건 신파예요. 고전은 셰익스피어처럼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흘러가고 살아있으면서 지금 이후의 먼 후대까지도 이어나갈 것들이 고전이죠. 그 중 하나가 ‘리어왕’이에요.” 

 

리어 이순재
연극 ‘리어왕’의 리어 이순재(사진=허미선 기자)
그리곤 “셰익스피어는 물론 안톱 체홉의 작품도 제대로 다룬 연극을 본 적이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안톤 체홉의 작품들은 아주 훌륭해요. 체제 변화와 변혁을 요구하는, 희극이 아닌 비극들이죠. 하지만 (우리 무대에서 공연된 연극들은) 비극을 희극으로 변주하면서 다 잘라버렸어요. 역사는 생각하지 않고 희극만을 하려니 그렇죠. ‘갈매기’가 그래요. ‘갈매기’는 재정 러시아 말기 작품이에요. 최악의 시대였고 모두가 ‘개혁’ ‘개혁’ ‘개혁’이었죠. 사상적 배경이 강한, 시대 때문에 위장한 작가 원안대로 표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고전의 가치’ 그리고 ‘리어왕’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질문에 이순재는 “최상에서 최하로 떨어지는 비극성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이 연극은 결국 절대권력자가 자신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재산과 통치권 등을) 분할해준 결과 딸들에게 밀려나고 버림받는 비극적인 이야기죠.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폭풍우 속에서 얻어맞은 후 하는 리어의 대사 중에 있어요.”

그리곤 “의지할 집도 없이 이 무자비한 폭풍우를 견뎌 내야만 하는 헐벗은 가난한 자들이여. 어떻게 (그 구멍 나고 찢어진 누더기 옷으로) 이 모든 폭풍우를 견뎌 왔는가. 이런 그대들의 문제를 내가 너무 몰랐구나”라는 리어의 대사를 읊었다.

“중요한 대사입니다. 통치자로서 국민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군림했던 모순, 실정을 자탄하는 대목들이 몇 군데 있어요. 은유적으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상징성을 가지는 대목들이죠. 셰익스피어는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을 잘 알아요. ‘리어왕’ 뿐 아니라 ‘한여름밤의 꿈’ 등에서도 그래요. 늘 그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작품을 쓰죠.”

이어 “제일 밑에 있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의 고충을 함께 안고 갈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닌, 맨 밑바닥에서 함께 하고 도움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걸 얘기한다고 느껴요. 구체적으로 나오기보다 마디마디에 그런 메시지들이 있죠. 리어는 완전 익히지 않으면 제대로 표현이 어려운 인물이라 대사가 잘 녹아나야 해요. 자다가도 튀어나올 정도여야 하죠. 자기 전에도 눈을 감고 한 대목씩 해봐요.”

혼자서 회당 200여분에 달하는 23회차를 소화해야하는 이순재는 “아직 건강은 괜찮다. 잘 버티고 있지만 나이가 있으니 장담하기는 어렵다”며 “중간에 잘못되면 큰일이라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보약 등으로 관리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판을 벌리면 쟁이는 신이 나요. 생명력은 현장에서 연기하는 데서 나오죠.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 중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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