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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엔젤스 인 아메리카’ 신유청 연출 “더 그레이트 워크의 뜻, 엔젤스의 S에 대한 질문들”

[人더컬처]

입력 2021-12-06 18:15
신문게재 2021-12-07 11면

신유청 연출
‘엔젤스 인 아메리카’ 신유청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극 마지막에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 프라이어에게 ‘예언자’라 칭하며) 말하는 ‘더 그레이트 워크’(THE GREAT WORK), ‘위대한 일’은 무엇일까. ‘뜻이 이뤄진다’고 번역했는데 그 뜻은 무엇이고 제목의 ‘엔젤스’(Angels)의 ‘S’들은 누구인지 질문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유청 연출은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12월 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의 메시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독일 신학자 등의 말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THE GREAT WORK’는 대문자로 돼 있는 걸 보고 ‘인간의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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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그 ‘THE GREAT WORK’에서 ‘Work’는 왜 단수인지, 왜 모두 대문자로 돼 있는 건지…신학적인 것과 미국 사회, 오늘날 종교인들이 가진 기득권들 사이에서 올바른 해석을 하게끔 중심을 잡으려는 일들의 연속이었어요. 저에게는 재밌고 흥분되는 일이었고 더 공부하는 계기가 됐죠.”

그 뜻과 ‘S’들을 찾는 여정은 8시간에 달한다. ‘링컨’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등의 극작가 토니 커쉬너(Tony Kushner)의 작품으로 1991년 초연돼 퓰리처상,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등에서 작품상을 거머쥔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2003년 알 파치노, 메릴 스트립 등의 TV영화로 만들어져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을 받기도 했다.

8시간짜리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현재의 ‘파트 원: 밀레니엄이 온다’와 내년 선보일 ‘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나뉘어 관객들을 만난다.

 

1985년 보수주의와 에이즈의 공포가 휩쓸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프라이어(정경호), 그의 동성연인인 유대인 루이스(김세환), 악마의 변호사 로이(박지일), 스스로의 정체성을 거부하려 애쓰는 몰몬교도 조셉(정환)과 그로 인해 괴로운 아내 하퍼(김보나), 조의 어머니 한나(전국향), 흑인 드래그퀸 벨리즈(박용우) 등이 풀어가는 인간 본성과 심리 등에 대한 이야기다.

“김광보 예술감독님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국립극단 라인업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신유청 연출과 함께 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한 평론가님께서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외쳤다고 하시더라고요. 전작이라면 ‘와이프’와 ‘그을린 사랑’을 보셨을텐데 저를 떠올려 주셨다니 감사했죠. ‘그을린 사랑’이 ‘1+1=1’인 것처럼 ‘와이프’+‘그을린 사랑’이 ‘엔젤스 인 아메리카’라고 생각했어요. ‘와이프’ ‘그을린 사랑’ 등으로 저와 함께 해온 팀들은 숙련됐음에도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만만치가 않았죠. 이 작품이 국내에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열망들, 기원들을 저와 동료들이 이뤄낼 수 있어 감사해요.”


◇회전무대 그리고 이면들
 

신유청 연출
‘엔젤스 인 아메리카’ 신유청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유튜브 등으로 짧을 것들을 즐기는 요즘 이렇게 긴 이야기에 집중해줄까’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4시간짜리지만 1, 2, 3장의 짧은 장면들로 이뤄져 있고 공간들도 계속 바뀌고 장면이 많이 진행되는 작품이에요. 카메라 기법에 어울릴 법한 작품이죠.”

이에 신 연출은 “대·소도구들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늘어놓고 신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가장 연극적인 방식과 턴테이블을 두고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처음엔 턴테이블을 선택했다가 중간에 버렸다가 다시 턴테이블을 선택했다.” 그는 “신들이 빠르게, 컷 넘어가듯이 해야하는데 턴테이블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적잖이 소요되고 큰 회전이 이뤄질 때마다 관객들의 긴장감을 늦추는 경우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 고심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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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하지만 그 많은 말들이 존재하는 무대에서의 회전은 일종의 침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음 같은 말들이 진행되는 중 그 침묵을 배경으로 생각할 여백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종 선택했죠. 연습하면서 회전이 신과 신의 매듭들로 작용하며 연결되는 걸 보곤 잘했다 싶었어요. 그 잠시의 침묵들로 자연스레 사색의 시간으로 빠져들겠다 싶었죠.”

회전무대는 “사실 배우들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신유청 연출은 “4시간이 넘는 공연은 연기자가 편해야만 잘 흘러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며 “장면마다의 연결을 위해 매듭들을 추가적으로 만들어야하는데 그 매듭들은 대사가 아닌 움직임의 영역이다. 그런 부분이 추가되면 광대한 대사 외에도 신체적으로 공유해야할 것들이 꽤나 많아져 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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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어떤 창작진은 회전무대에 조명이 켜지며 돌아가는 모습에 ‘달의 이면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볼 수 있는 면이 있고 뒷면들이 생기고…사실 하나의 땅덩어리에 살고 있지만 그 이면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죠. 그 이면들이 마치 서로 연결이라곤 없을 것 같은 관계들 같았어요. 극이 진행되면서 무관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졌죠.”


◇장벽 없는 배우들, 다양한 역할의 배우들

“(학교 후배이기도 한 정)경호는 예전부터 ‘연극을 하고 싶다’고 하곤 했어요. 사석에서 연극하고 싶은 마음을 얘기하면서 불쑥불쑥 ‘내 연극 첫 작품 연출은 (신)유청이 형이어야 해’라고 말하곤 했죠.”

이어 “하물며 제가 없는 자리에서 혹은 저를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얘기하곤 했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전해 들었다”며 “이 작품을 보는데 ‘경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호가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경호가 너무 즐거워해서 천만다행이에요. 선배이자 형 입장에서는 다른 장르에서 온 후배가 즐겁게 연극을 하고 ‘다음에 또 하고 싶다’ 생각하거나 연극한 경험들이 자신의 업계로 돌아가 가치있게 쓰이면 좋겠어요. 그게 연극의 가능성이지 않나 싶어요.”

그리곤 “단순한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인종의 다양함, 피부색의 다름들에 우리나라에서 표현할 수 는 것들을 넣어보고 싶었다”며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 작품을 만들고 참여하는 우리의 경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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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드라마든 영화든 뮤지컬이든 하는 배우들 혹은 국립극단 작품에 캐스팅될 법하지 않은 배우들 등 다 달랐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게 허물어지는 모습을 해낸다면 객석까지 전해질 테니까요. 그렇게까지 다양한 배우들은 아니지만 1990년대 연극계를 이끈 선배들이 계시고 국립극단의 시즌단원들이 있고 경호처럼 다른 매체에서 온 배우도 있고…차이들이 분명 있음에도 힘들을 내줘서 장벽을 없애면서 여기까지 잘 올 수 있었죠.” 

 

그렇게 다양한 면면의 배우들은 한 캐릭터가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프라이어가 에이즈인 걸 알고 도망을 친 루이스가 공원에서 만나는 남자를 프라이어 역의 배우 정경호가 소화하고 로이 역의 박지일이 프라이어2를 하면서 품격 있는 귀족 역할을 한다거나 한나 전국향이 랍비, 주치의 등으로 분하는 식이다.

“작가님(토니 커쉬너) 텍스트에 설정이 적혀 있어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면서 ‘누구 역할은 어떤 역의 배우가 해야 한다’고. 한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혀 다른 캐릭터의 모습과 맥락들이 짚였어요. 이 또한 숨겨진 이면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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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스 인 아메리카’ 신유청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우리 안의 빗금치기, 그 장벽의 철폐

“우리 안에는 빗금치기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와 나의 차이, 정치색, 남녀, 인종, 신의 존재에 대한 이견 등이 있고 신이 있다고 믿는 이들 사이에서도 ‘성스럽다’ ‘아니다’로 나뉘죠. 그 행위들 속에 자꾸 나눌 수밖에 없는 인식들이 있죠. 그런 것들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 같아요. 출신, 지역, 소속, 위치 등으로부터 수많은 일들 일어나고 불화가 생기고….”

그의 설명처럼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종교’에 빗댄 우리 안의 ‘빗금치기’와 ‘장벽’에 대한 이야기다. 신유청 연출의 “요즘 국내는 물론 해외 뉴스를 장식하는 불화와 전쟁은 결국 ‘빗금’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너의 색을 포기하고 나의 색을 합쳐서 ‘하나’가 아니라 이색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화합하는 걸 이야기 하고 있죠.”

이렇게 전한 신유청 연출은 “그 작업 과정에서 저의 경험도 보게 됐다. 쉽게 얘기하면 한국에서만 살다가 유럽을 다녀오면 인식이 넓어지는 것과 같다”며 “제가 만약 유럽 뿐 아니라 이슬람도 다녀왔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편견은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편견이 깨지고 깨달음을 얻게 돼요. 살짝 스포일러를 하자면 지구에서의 삶을 넘어 천국까지 갔다 온다면 어떨까요. 지금 이 땅에서 겪는 편견, 생각 등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그러면서 화해도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인류에겐 큰 문제일지라도 모든 걸 넘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어 “결국 시간과 의지의 문제”라는 신유청 연출은 “모든 장벽을 철폐해버리고 싶은 원대한 꿈 가지고 하나하나 해가고 있다”며 “당연히 이뤄지지 않을 것임도 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또 가만 생각해보면 베를린 장벽의 무너짐이나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은 예상하지 못한 채, 불시에 한번에 이뤄졌어요. 어쩌면 평화는, 장벽 철폐는 하나하나 제거하는 게 아니라 한방이구나 싶어요. 내 안의 단단한 벽을 허물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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