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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뮤지컬 ‘인간의 법정’으로 제작까지! 장소영 음악감독…‘관객’이라는 배심원을 만나다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11-25 18:30
신문게재 2022-11-25 12면

인간의 법정 장소영 음악감독
뮤지컬 ‘인간의 법정’으로 제작자로 첫발을 내디딘 장소영 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AI를 탑재한 안드로이드 로봇인 아오가 의식을 얻게 됐을 때 ‘어쩌면 좋을까요?’라는 말을 해요. 사실 정말 중요한 말이죠. 의식이 없을 때는 선택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 자체를 안하잖아요. 의식이 있어서 하는 고민이니까요. 그렇게 의식이 생기면서 할 수 있는 최적의 말이 ‘어쩌면 좋을까요’라고 생각했어요.”



공연 막바지에 이른 뮤지컬 ‘인간의 법정’(12월 4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제작자로 나선 장소영 음악감독은 “극의 핵심이자 특징인 ‘행정소송’과 ‘의식’을 잘 드러내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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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간의 법정’ 공연장면(사진제공=대로컴퍼니)

 

변호사인 조광희 작가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인간의 법정’은 22세기를 배경으로 주인을 살해해 폐기처분될 운명에 처한 AI(인공지능) 로봇 아오(류찬열·유태양·이재환·최하람, 이하 가나다 순)가 인간처럼 형사재판을 받을 권리를 두고 국가와 벌이는 ‘행정소송’을 다룬다.

AI가 상용화된 근미래, 의식생성기를 달면서 혼란에 빠진 아오와 그를 돕는 호윤표 변호사(박민성·오종혁·임병근), 아오의 주인이었지만 그에 의해 살해당한 한시로(김승용·선한국), 그의 연인 오미나(이상아·이서영), 인간의 법정에 설 권리를 주장하는 아오의 반대편에선 경찰청 소속 변호사 서인구(김승용·선한국), 안드로이드가 의식생성기에 적응하도록 돕는 AI 카운슬러(이상아·이서영)가 꾸리는 SF법정극이다. 

 

살해 입증이 아닌 AI가 인간의 법정에 설 자격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법정공방은 결국 인간의 본질과 존재론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어렵지만 간절하게, 온힘을 다한 ‘내 작품’

인간의 법정 장소영 음악감독
뮤지컬 ‘인간의 법정’으로 제작자로 첫발을 내디딘 장소영 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제가 했던 작품 중 가장 어려웠어요.”

뮤지컬 ‘그날들’ ‘투란도트’ ‘라카지’ ‘조선삼총사’ ‘형제는 용감했다’ ‘리걸리 블론드’(금발이 너무해), ‘미스터 마우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만덕’ 등의 작곡가, 음악감독으로 활약했던 그가 이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의식을 가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철학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어려운 길을 택한 첫 번째 이유는 원작 소설이었다.

“소설을 보고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굉장히 흥미로웠죠.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오랜 공부 결과로 확장시킨 세계관에 존경심마저 들었어요. 너무 어렵기 때문에 뮤지컬로 풀면 훨씬 재밌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진짜 도전하고도 싶었어요. 제가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뮤지컬 20년차를 맞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레이어가 다른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에 그는 “재판이라면 무조건 변호사와 검사의 대결이라고만 알고 있는,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의 존재조차 몰랐던 법 상식 수준의 제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길고도 지난한 대본 수정 과정을 거쳤다.

그 수정 과정에서 법정물이라는 전문성이 상쇄된 데 대한 아쉬움을 전한 장소영 감독은 “AI인 아오가 재판장에 선 이유가 죄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정으로 가기 위한 행정소송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그게 잘 표현돼야 인간만이 존재해야하는가 라는 원천적인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데 그렇지 못해 상쇄돼 버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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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간의 법정’ 공연장면(사진제공=대로컴퍼니)


“(한시로의 여자친구) 미나가 원작과는 달리 수동적으로 표현되면서 성인지 감수성에도 문제가 생겼죠. 중심축이 되는 인물들이 해야할 역할의 균형도 아쉽고…그런 의견들을 모아서 두 번째 공연 때는 제대로 풀어내야겠다 싶어요.”

 

이어 “제작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만드는 작품마다 없어져서다. 제가 작업한 25여편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이 ‘그날들’ ‘투란도트’ 정도”라고 덧붙였다.

“만들면 없어지고 만들면 없어지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제 작품인데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고…너무 속상하고 아쉬웠어요. 제가 직접 제작을 한다면 제가 원하는 시기에 저랑 잘 맞는 스태프, 배우들과 계속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흥행 요소들로 꾸려 돈 버는 데만 신경쓰기 보다는 진짜 공들인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 작품이 절실했고 정말 온힘을 다해 만들었죠.”

 

인간의 법정 장소영 음악감독
뮤지컬 ‘인간의 법정’으로 제작자로 첫발을 내디딘 장소영 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음악감독 장소영 vs 제작자 장소영

 

“음악감독만 할 때랑 제작자일 때랑은 또 달라요. 작품 위주로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 작품이 무대에 잘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 등은 배려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돼요.”

‘인간의 법정’ 제작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장 감독은 “어쩌면 인간이 제일 인간답지 못한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데 좀 부족했던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법정극에서 관객은 재판 관람을 위해 모인 시민 혹은 심리나 재판에 참여해 평결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선출된 배심원과도 같다.

“처음엔 관객들의 비난이 ‘너 이제 그만 둬’라고 들리더라고요. 너무 큰 상처였어요. 포기하고도 싶었죠.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또한 저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귀를 더더욱 열어 그 어떤 말도 긍정적으로 힘과 응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용기를 내고 있어요. 더불어 한국 관객들을 만족시킨다면 어디서든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한국 공연을 마치고는 해외 공연을 통해 다양한 시선과 평가를 받아보려고 해요.”

한국 공연이 마무리된 후 ‘인간의 법정’은 지난해 4월 출간과 동시에 해외 뮤지컬 판권이 팔린 중국, 프랑스, 베트남 등 서유럽·아시아 8개국을 비롯해 일본 등과도 라이선스 공연을 조율 중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이 어려운 걸 괜히 건드렸나 싶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뮤지컬을 한번도 안본 사람들도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재미와 매력을 선사하는 작품을 만들어 저변을 확대하고 싶은 제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은 장점들은 두고 단점들을 보완해 가장 핵심이 돼야할 이야기의 주제를 어떻게 더 잘 보이게 할지를 고민해야겠다 생각해요. 정말 잘 만들어서 계속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진심으로.”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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