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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 “누구도 안갔던 길, 소심하지 않게 뚜벅 뚜벅”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3-04-28 18:30
신문게재 2023-04-28 11면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이제 허니문이 지났어요. 모두들 저한테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해주셨고 오페라단 내에서도, 밖에서도 기대감이 굉장히 컸죠. 이제야 조금씩 맞춰 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새로 임명된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은 자신의 상태를 ‘결혼’에 비유했다. 마냥 좋기만 하던 신혼을 지나 이제 비판과 지적들을 접하는 “웃음기가 사라지는 순간들로 실감하고 있다”는 그는 “순진한 생각으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현실적인 감각이 좀 달라졌다”고 털어놓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오더 극장(클라이스트 극장), 카셀 국립극장,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였고 2000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교수였던 그는 “이 안에 들어와 보니 막연하게 외부 사람으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털어놓았다.

“밖에 있을 때는 마음 편하게 비판도 하고 ‘왜 이러냐’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하기도 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해도 되고…제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죠. 이제 막 신혼이 지났나봐요. 조그마한 일들이 생기는 걸 보니.”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당장은 예산이 문제다. 최 단장이 부임하기 전 이미 내년까지 기획이 마무리된 상태에서 “당장 내년 예산이 삭감된다는 얘기가 와서 우리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던 모든 것들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다”며 “조금 미루거나 절약 혹은 축소해서 진행하거나 해외 출연진들에 양해를 구하는 식으로 정리 중”이라고 밝혔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 그리고 대중화의 기로에서

“오페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예술 분야 중 하나예요. 전통과 혁신 그리고 실험적인 결합해 발전하며 지금까지 전승돼 온 예술이죠. 재해석하고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 결합, 새로운 기술 활용, 실험적인 기법 및 무대 연출 등을 시도하며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새 시대의 음악적 흐름과 대화하면서 진화해왔어요.”

전통 장르에서 빠지지 않는 현안이자 고민거리는 관객 개발 및 확장 등 수요의 문제다. 오페라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오페라는 노래, 무용, 연기,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장르가 모여 만들어내는 예술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예술”이라며 “그 가치가 절대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이에 최 단장은 전통의 본질은 고수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의 연출, 현대기술을 접목한 무대제작, 의상 등과 창작오페라”로 현대화와 대중화를 추구할 예정이다.


“아무리 수요 창출이 급하고 대중화가 절실해도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면서까지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약간 문턱을 낮추는 접근 방식을 계획 중이죠. 가격을 조정하고 오페라에 낯선 이들을 위한 사전 교육 프로그램 등 시스템을 만들고자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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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이어 “이 모든 시스템의 근간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재밌으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며 “어린시절부터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어려서의 문화경험이 평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저 역시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당시에는 억지로 갔던 공연들, 연주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게 싹을 틔워 지금 예술가가 된 것 같거든요. 제 아들도 독일에서 태어나 제가 연습하는 걸 매일 보면서 대여섯살 무렵엔 오페라 전곡을 외웠으니까요. 그런 기회를 아이들에게도, 부모님들에게도, 서울 뿐 아니라 지역 곳곳에 제공했으면 좋겠어요.”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그리곤 “현재 국립오페라단 내에 있는 문화소외지역을 위한 프로그램을 좀더 확대시켜 이어갈 것”이라며 이탈리아에서 진행됐던 어린이 프로그램 목격담을 전하기도 했다. 

 

“밀라노의 600~700석 되는 조그마한 극장이었어요. 아침 9시 극장을 가득 채운 아이들이 왁자지껄 시끄럽고 난리가 났죠. 그러다 연주가 시작되고 지휘자가 돌아서서 아이들한테 지휘를 하니 노래를 하더라고요. 똑같은 가사, 멜로디로 노래를 하고 정리를 하고 또 다시 노래를 하고 정리를 하고…그렇게 서로 주고받으면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는 걸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 작품도 아닌 창작물이었어요. 전 지구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지구온난화, 공기오염, 플라스틱 등 환경문제에 대한 이야기였죠. 그게 현대화 같아요.”

이어 “지방의 작은 학교 학생들이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은 예술가였다. 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몇 달 후 모여 함께 연주하고…”라 전한 최 단장은 “특히 어릴수록 예술로 받은 것들이 강하고 오래 가는 것 같다. 좀 잊고 지내가다도 다시 경험하면 또 떠올리고…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어린이 교육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국립오페라단 내에도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있어요. 어린이를 위한 그 프로그램을 좀 확장하고 싶어요. 환경 등 지금의 이슈들을 음악을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오페라를 몇 편 함께 하고…그러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미래의 자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K컬처 열풍, 그래서 중요한 창작뮤지컬

 

“오페라는 장르 자체가 서양의 고전이에요. 우리 클래식 인재들이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부분은 매우 뛰어나도 결국 유럽음악이죠. 우리만의 얼과 한, 정서 등이 들어간 작품을 만들어내야 해요. 그래서 창작오페라가 중요하죠.”

한국 오페라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거세게 불고 있는 K컬처 열풍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정서, 색채를 담은 “창작오페라가 중요하다”고 밝힌 최 단장은 “우리 것을 오페라적인 소리로 승화시킨 창작오페라가 K컬처의 진정한 의미를 담는 거라고 생각한다. 창작작품에 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에 2025년부터는 신작을 비롯해 한편의 창작오페라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내년에 공연될 작품 중 서거 100주년을 맞은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를 제외한 바그너의 ‘탄호이저’,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벤자민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가 신작이다.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무겁고 어렵지만 그 뒤로 상상의 세계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바그너 작품 입문에 편안한 작품이죠. 벤자민 브리튼 ‘한여름 밤의 꿈’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판타지가 있고 젊은 세대를 향한 메시지도 많아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악가들도 우리가 알고 있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등만이 아니라 카운트테너, 콜로라토라 소프라노 등 굉장히 다양하고 세분화된 성부의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젊은 성악가들을 배치하려 노력하고 있죠.”


◇20여명의 자체 앙상블, 젊은 지휘자·작곡가 발굴 “결국 작품!”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요즘은 ‘레지테아터’(Regie-Theater), 연출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가 주목받고 있어요. 음악을 기반으로 하지만 연출, 연기, 캐릭터 분석 등이 중요해졌죠. 그러다 보니 외부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시간은 제한돼 있고 연기를 따로 연습시킬 수도 없죠. 그래서 국립오페라단 자체 내에 우리 앙상블을 만들고 싶어요. 매일 훈련을 시키고 실험도 해보고.”

초기에는 “유연함을 갖춘 형태로 20여명 규모를 고려하고 있다는” 최 단장은 “성악 파트에 맞춰 구성해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진짜 필요한 그런 과정을 거쳐 서로 눈만 봐도 어떻게 할 줄을 알 정도로 케미스트리가 맞는 앙상블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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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잘 훈련시켜 무대에 설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그들은 국립오페라단의 뿌리가 되고 큰 나무로 성장할 거예요. 그런 앙상블을 지속적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수장이 오더라고 지속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의 헌법이 변하지 않고, 변해서도 안되는 것처럼요.” 

  

뮤지컬에서 운용 중인 ‘얼터네이트’ ‘언더스터디’ ‘스탠바이’ ‘커버’ ‘스윙’ 등까지도 염두에 둔 자체 앙상블과 더불어 최 단장은 젊은 지휘자와 작곡가 발굴·지원·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유지하는 건 너무 중요한 일이에요. 지속적으로 젊은 층이 올라올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분야에서 음악적 창조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이어 “음악적 창조성을 발휘할 작곡가, 연주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지휘자를 키워내는 것은 새로운 음악 창작, 새로운 작품, 예술적 경쟁력 등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젊은 성악가들 뿐 아니라 오랫동안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이들도 나이가 먹었다는 이유로, 무대활동이 좀 소홀해졌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면 충분히 해내요. 시간을 좀 더 주면 돼요. 파바로티나 우리의 자랑인 연광철 성악가도 너무 잘,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잖아요.”

젊은 성악가, 작곡가, 지휘자, 연출가 등의 발굴·지원·육성 그리고 선배들의 등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이에 대해 최 단장은 “지금까지는 명목상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느낌이었다”며 “어떻게 하면 수치적으로만 맞추는 게 아닌 진정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이어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수장이 바뀌어도, 어떤 변화가 생겨도 견고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을 뛰어넘는 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를 통해 “젊은이들이 나도 저기 들어가 함께 활동할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그러기 위해 사회적인 관심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정부의 아주 든든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쉽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한번은 안 갔던 길을 가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용기 있게, 소심하지 않게 그냥 뚜벅 뚜벅 앞으로 가보고 싶어요. 그 발자국들에 굳이 제 이름이 새겨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우리 오페라가 한번쯤은 새로운 도약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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