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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위암 4기, 죽음을 앞두고 카메라 앞에 섰다

[#OTT] 웨이브 다큐 '울지마 엄마',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슬픈 찬가

입력 2023-08-23 18:30
신문게재 2023-08-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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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간 투병하다 세상을 뜬 고 이은경씨의 생전 모습. 섬망이 오면서 어린시절로 돌아간 모습을 보여 먹먹함을 더한다.(사진제공=원더스튜디오)

 

미리 경고하지만 이 영화는 인간의 ‘마지막 숨’까지를 화면에 담았다. 입에 튜브를 꼽고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은 거의 빠진 환자들의 모습. 무엇보다 뼈 밖에 없는 죽음 직전의 모습을 영화는 가감없이 담는다.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엄마로 충만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가족들의 절규 속에 숨을 거둔다.


현재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울지마 엄마‘는 죽음을 앞둔 4기 암 환자들과 가족들 간의 마지막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가정의 달인 지난 5월 극장에서 조용히 개봉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들이 하루라도 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아름다운 이별이 주된 모습이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게 된 건 감독의 친누나인 이은경씨가 위암 4기를 선고받으면서부터다.



이호경 감독은 영화의 오프닝에 조카인 자신의 딸을 흡사 친딸처럼 아꼈던 누나의 씩씩한 생전 모습을 보여준다. 암으로 하늘이 무너질 듯한 충격을 받았어도 늘 그래왔듯 생일 케이크를 챙기고 함께 촛불을 분다. 주폭이 심했던 아버지의 영향이어서일까. 감독 자신을 제외하곤 가정을 이루지 않았던 형과 누나는 성인이 돼서도 막내인 그를 챙겼다고 한다. 늘 활달하고 건강했던 누나가 암 선고를 받자 감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암 환자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그것이 ‘울지마 엄마’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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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울지마 엄마’의 공식 포스터. 남겨진 이들의 일상까지 아우르며 떠나간 이들을 추모한다. (사진제공=원더스튜디오)

 

그 곳에서 만난 암 환자 4명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극적이지 않다. 언젠가 거리에서 한번쯤 보았을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기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아는 암 환자는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본다. 직업도 음악 선생님과 의사, 초등학교 교사, 직장인 등 일상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 이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죽음까지 남아 있는 시간을 사는 게 당연하지만 이들은 뭔가 다르다.

제7회 한국기독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이 영화는 화목한 세 가정에 닥친 비극에서 출발해 죽음은 애달프지만 기억은 이어진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중학교 음악 교사 출신 김정화씨는 어렵게 얻은 아들이 있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시험관으로 얻은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다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개구쟁이지만 여느 또래처럼 엄마에게 매달리지 않는 모습이 늘 가슴 아프다.

아들에게 자신은 늘 병원에 있거나 아픈 존재라는 걸 알기에 하늘이 무너진다. 부부는 여러 번의 항암치료를 받지만 결국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병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없었던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준비를 한다. 하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 없이 아들을 키울 남편의 일상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2주 뒤 그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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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괴로운 모습보다 최대한 즐겁고 좋았던 기억을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던 김정화씨의 마지막 길에는 제자들이 달려와 슬픔을 나눴다. (사진제공=원더스튜디오)

 

커뮤니티에서 여러 암 환우들의 증상을 진단해주던 외과 레지던트 출신 정우철씨는 촉망받는 의사였다. 동료들과 지도교수들이 인정하는 신의 손으로 불렸던 자신이 환자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마지막까지 자신같은 암 환자들에게 등불이 되고자 병원에서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을 풀어주고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눈다. 간호사 출신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말리지 않고 그를 지지한다.

암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이혼을 진행하던 김현정씨의 소원은 어린 딸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는 것 뿐이다. 암이 낫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그는 신에게 빌고 또 빈다. 카메라 앞에서 담담하게, 교대 출신 동기들 중에서도 유독 승승장구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뭘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었나 싶다”고 풀어놓는 그는 결국 교실로 돌아간다. 딸들에게 침대에 누워있던 모습보다 교단에서 ‘일하는 엄마의 당당한 기억’을 심어주고 싶다고 뜨겁게 눈물을 흘린다.

베테랑 교사인 그는 1학년 신입생을 맡아 수업을 이끌지만 결국 1년을 함께 하지 못한다. 선생님의 머리가 가발인 것도 궁금하고 늘 손가락을 칭칭 붕대로 동여맨 것도 궁금해 죽겠는 8살의 천진한 제자들. 자신의 자식과 비슷한 또래들 이기에 더욱 마음이 무너졌을 테지만 그는 티내지 않는다. 영화는 죽음보다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앞선 이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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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을 쓰고 장갑을 낀 채 교단에 섰던 타고난 김현정씨는 부모님에게도 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사진제공=원더스튜디오)

 

‘울지마 엄마’는 암 환우의 쾌활한 모습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일상까지 아우른다. 이들이 영화로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으로 가는 과정 역시 쉽지 않다. 주인공들 모두 고통에 신음하고 그 모습을 보는 가족들은 울부짖는다.

이호경 감독은 “2014년에 누나가 국가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병간호를 하면서 항암기간 동안 보호자로서 시간을 많이 뺏겨서 본업인 방송PD일을 하기가 힘들었다”면서 “그래서 차라리 누나를 포함해 암환우들 이야기를 섞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제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영화”라고 제작과정을 밝혔다. 죄와 죽음에 의해 완전히 해방된 영생의 의미를 되묻는 ‘울지마 엄마’는 종교적인 구분 없이도 충분히 볼 만한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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