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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다프트펑크 다큐 ‘언체인드’, 20년 묵은 미스터리 푼다

입력 2015-08-03 07:15

다프트펑크
다프트 펑크(AFP)

 

프랑스의 두 로봇(?) 다프트펑크(다펑). 헬멧이 없으면 가죽을 쓰고 심지어 자신들을 소개하는 영상 ‘일렉트로마(Electroma)’에서는 뒤 돌아서 인터뷰를 한다. 압권은 시상식에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점. 

 

지난해 미국 그래미어워드 최고의 상인 ‘올해의 레코드상’과 ‘올해의 앨범상’의 주인공이 됐을 때 ‘땡큐’ 한 마디 할 법도 하건만 결국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쿨하게 무대를 내려갔다. 오죽하면 함께 작업했던 힙합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가 함께 올라가 뻣뻣하게 트로피를 든 다펑 옆에서 “제 생각에 두 로봇은 지금 굉장히 감사하고 있을 겁니다”라는 농담어린 수상소감을 말해야만 했으니. 인터뷰에 나와 ‘헬맷을 대체 왜 쓰냐’는 기자의 질문에 “부끄러워서요”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얼굴을 결국엔 공개해 인간미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그들은 ‘신비주의’의 레전드다.



최근 팬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첫 다큐멘터리 ‘언체인드(Unchained)’가 공개됐다. BBC 월드 프랑스에서 공개한 이 60분 분량의 영상을 통해 20여 년 간 골수팬도 몰랐던 다펑의 속살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을 것!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었을까. 기대하시라.  

 

다프트펑크
지난해 ‘제 57회 그래미어워드’에서 올해의 레코드 상을 포함해 5관왕을 달성한 다프트펑크가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AFP)

 

◇로봇에게도 신인 시절은 있다! 다펑의 시초 밴드 달링에 관한 몇 가지 사실

1992년. 현재 다프트 펑크 멤버인 기 마누엘 드 오맹 크리스토(기 마누엘)와 토마스 방갈테르 그리고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로랑 브랑코위츠는 다펑의 시초인 ‘달링(Darlin)’이라는 3인조 밴드를 결성한다. 

 

13살의 나이에 음악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당시 이들이 추구했던 개러지록 사운드는 당시 영국의 유명 음악 주간지 ‘멜로디메이커’로부터 ‘허접한 펑크 쓰레기(A Daft punk trash)’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혹평 이후 달링은 해체되고 이들은 고심 끝에 새로운 장르인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당시 달링의 매니저였던 대니얼 듀세르는 이번 다큐멘터리에 나와 “음악에 대한 진지함으로 무장한 두 사람에게 일종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면서 당시 두 사람이 겪었던 심정을 상세하게 풀어준다. 다큐에는 밴드 스펙트럼의 ‘어떻게 나를 만족시켜줄지(How You Satisfy Me)’를 커버한 달링의 최초이자 마지막인 라이브 장면도 포함돼 있다고.
 

다펑
영국 음악 전문 매거진 ‘자키슬러트’의 표지에 실린 토마스 방갈테르(왼쪽)과 기 마누엘의 청년 시절 모습.

◇ 토마스는 얼리어답터!

1997~2003년까지 기 마누엘이 다프트펑크와 병행했던 밴드 르나이트클럽. 이 밴드에서 함께 활동했던 에릭 셰데비는 다프트펑크의 토마스를 ‘천재에 가까운 기계’라고 일컫는다.

 

“첫 앨범 작업 당시 한번은 토마가 내게 다가와서 말하더군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음악 기기들에 대한 설명서를 읽으면서 공부한다고요. 당시 저는 ‘새로운 기기들로 작업한다고 뭐가 되겠어? 전자음악이 다 매니악한 음악이지. 다를 것 없겠지 뭐’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아주 기가 막힌 대중적 멜로디가 나오더라고요. 신기했죠.”

프랑스의 주간 잡지인 레쟁로큅티블(Les Inrockuptibles)의 장 다니엘 보발레 기자는 덧붙인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토마가 아마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맥북으로 음악 작업을 했던 뮤지션이었을걸요. 토마는 다른 뮤지션들보다도 훨씬, 아주 훨씬 일찍부터 음악에 맞는 영상까지 만들면서 새로운 예술 장르로 폭을 넓혀갔어요.”

 

다프트펑크
다프트펑크의 가장 최근 앨범인 정규 4집 ‘랜덤 엑세스 메모리스(Random Access Memories)’

 

◇ 여보세요, 다프트펑크 입니다.

팝음악 일색이었던 1994년. 영국 글라스고의 전자음악 레이블 ‘소마(Soma)’에서 다펑은 첫 싱글 ‘더 뉴웨이브(The New Wave)’를 발표한다. 다음해에는 두 번째 싱글 ‘다펑크(Da Funk)’를 발표했고 이 음악은 미국에서도 빌보드 댄스 클럽 차트(Hot Dance Club Songs)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 다프트펑크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소마의 레이블 매니저였던 리처드 브라운은 앨범 발표 전 까지만 해도 “여보세요, 소마 레코드입니다”라고 레이블을 소개했었지만 다펑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회사 자동응답기(ARS)를 “여보세요, 다프트펑크입니다”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다큐에서 “하루하루 수많은 전화가 걸려왔고 다펑이 드디어 인기 뮤지션 궤도에 올랐음을 체감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 첫 번째 정규 앨범 ‘홈워크(Homework)’를 제일 처음 들은 사람은?


1996년 9월. 첫 번째 정규 앨범 작업 당시 다펑은 당대 최고 메이저 음반사였던 ‘버진레코드(Virgin Records)’와 계약한다. 버진 프랑스의 아트디렉터였던 마야 마세보프가 바로 홈워크를 처음 들었던 주인공. 

 

“우리는 그 앨범을 토마스의 집에 가서 처음으로 들었죠. 당시 홈 레코딩 방식을 추구하던 토마스의 집은 조그만 하나의 스튜디오였어요. 비좁은 방은 빽빽하게 악기로 가득 차 있었고요. 당대 최고의 악기로 세팅돼 있는 스튜디오를 이용하던 세계적인 뮤지션들과는 정반대 방식이었죠. 조그만 공간 안에서 모든 사운드를 뽑아낸다는 자체가 놀라웠어요. 대형 카세트로 앨범을 들려줬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죠. 음악으로 한 대 얻어맞고 음악을 만드는 광경에 또 한 번 맞은 느낌이었죠.” 

 

LED 피라미드 무대
다프트펑크의 LED 피라미드 무대(AFP)

 

◇ 매니저에게 조차 비밀이었던 LED 피라미드 무대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첼라 페스티벌 기획팀은 다펑 측에 섭외료로 약 25만 달러(2억 9157만 원)를 제시했다. 다펑의 대답은 ‘노우(no).’ 다음해 코첼라 측이 30만 달러(3억 4989만 원)를 제시하고 나서야 다펑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다.

 

아니, 얼마나 대단한 공연을 보여주길래! 결과적으로 코첼라의 거액 제시 섭외 작전은 성공이었다. 눈이 시릴 정도의 LED조명이 전자음악과 함께 거대 피라미드 설치물에서 분사되고 관객들은 열광했다. 이날은 ‘피라미드’가 헬멧에 이어 다펑의 또 다른 이름이 됐던 날이다. 5년 이상을 동고동락 해왔던 매니저 페드로 윈터는 다큐에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밝히기도 한다. “공연 전날까지도 두 사람은 제게 오디오만 들려줬어요. 대충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 그때 삼각형(피라미드)이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죠.”

◇ 세계에서 하나 뿐인 데모 CD, 트렁크에 싣고 미국 누빈 사나이

앨범 작업 기간인 무려 8년이었던 다펑의 네 번째 정규앨범 ‘랜덤 엑세스 메모리스(Random Access Memories).’ 이 앨범에는 2013년 한 해를 휩쓸었던 다펑의 ‘겟 럭키(Get Lucky)’도 수록돼 있다. 

 

다큐는 이 앨범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평상시 다펑은 믹싱을 마치고 마스터링을 위해 미국 메인주의 한 전문 스튜디오로 앨범을 보낸다. 보통은 택배로 보내지만 8년이란 세월과 정성이 묻어있는 이 앨범만큼은 직접 갖다 주기로 결정. 다펑의 앨범 작업에 참여했던 엔지니어 피터 프랭코는 다펑의 데모 테이프를 직접 차로 미 서 끝쪽에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동쪽 끝의 메인주까지 운반했다고 한다.

“스튜디오에서 레코딩 기간만 4년이 걸렸는데 돌이켜 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어요. 우리가 믹싱을 끝냈을 무렵에는 이 데모 테이프가 어딘가로 가는 것 자체가 불안했죠. 결국 또 다른 여행을 하기로 합니다. 테이프가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저는 제 이름을 바꾸고 코스타리카로 이민을 가서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될 거라는 상상까지 했다니깐요! 테잎 속에 든 모든 곡은 하나하나 전부 특별했고 음악사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앨범이 지금 바로 내 차 트렁크에 들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짜릿할지!” 

 

다펑
공연장에서 다프트펑크의 팬들은 대번에 알아볼 수 있다. (AFP)

 

P.S. 영상이 공개된 지 20여 일이 다 돼가지만 아직 불어 버전밖에 나오지 않아 국내와 세계 팬들은 애만 태우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전 세계 다펑 팬들의 마음을 대신해 어서 영어 버전이 공개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권익도 기자 kid@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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