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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복면 쓴 괴짜예술가' 뱅크시, 디스멀랜드에 대해 입열다

담벼락 낙서·팬들과의 숨바꼭질·음침한 디즈니랜드까지… 현대사회 민낯 조롱

입력 2015-08-31 07:00

뱅크시
뱅크시(Banksy)가 공개한 자신의 얼굴(출처: 뱅크시 웹사이트)

 

현대 소비주의와 정치권력을 조금은 어두운, 때로는 기발한 시선으로 비꼬는 영국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Banksy)'. 그래피티가 불법인 유럽과 미국에서 그는 남의 집이나 공공시설물에 낙서를 하고 순식간에 사라지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그의 정체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다. 그림 색채로 볼 때 데미안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부터 7명으로 이뤄진 테러리스트 조직이라는 설, 심지어는 여자일 수도 있다는 추측까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등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기에 활동한지 25년이 지났으나 여태껏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의 그림이 유명세를 타자 처음에는 뿔이 났던 영국 시민들조차 어린 아이가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자신의 집 담벼락을 확인한다고 하니, 흥미롭다. 

 

그의 기벽(奇癖)은 미술계에서 더없이 유명하다.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뉴욕 현대미술관인 모마(MoMA)에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걸어 놓는 대범함을 보여주는가 하면 뉴욕에서는 소셜미디어상에 방금 그린 작품을 공개하고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며 팬들과 숨바꼭질을 즐기기도 한다. 

 

뱅크시
‘안보다 바깥이 더 낫다(BOTI)’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영상 속에는 의문의 한 할아버지가 뱅크시의 서명이 들어간 작품들을 단돈 60달러에 팔고 있다.(출처: 유튜브 영상 캡처)

 

압권은 뉴욕 센트럴파크 근처 노점에 수만달러에 이를 자신의 그래피티 작품을 단돈 60달러에 내놓았던 ‘안보다 바깥이 더 낫다(BOTI, Better Out Than In)’ 프로젝트. 뱅크시의 서명이 있는 원작이라 줄 서서 사는 진풍경이 일어날 거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행인들은 작품에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갔고 뱅크시의 작품은 겨우 8점만 팔려 420달러 매출만 기록했다. 


이 같은 괴상한 행동들에는 그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다. 루브르 등의 무단 전시에는 세계적인 미술관의 권위와 허례허식에 대한 비판이, 숨바꼭질 퍼포먼스에는 미술 관람객과의 진정한 소통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그리고 BOTI 프로젝트에선 작가나 작품의 네임 밸류에 따라 가격이 거품처럼 형성되는 미술 경매시장을 조롱한다.



아마 뱅크시가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책을 읽었다면 저자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라고 외쳤을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지난 20일(현지시간)에는 ‘디스멀랜드(Dismaland)’라는 세계에서 가장 음침한 유원지를 비밀리에 작업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전 세계 팬들에 충격을 선사하기도 했다.

영국 브리스톨의 해변도시 웨스턴슈퍼메어에 위치한 디스멀랜드 입구에 들어서면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감독 팀 버튼의 작품이 연상된다. 정면에서 보이는 인어공주는 마치 다운로드가 덜 된 것처럼 일그러진 형상을 하고 있어 우리가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판타지세계를 뒤엎는다.

연이어 전복돼버린 호박마차와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신데렐라, 고 다이애나를 연상시킬 정도로 쉴 새 없이 플래시를 터트리는 파파라치 장면까지.

여기서 잠깐. 좀처럼 인터뷰도 쉽지 않은 그가 말문을 열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과 직접 이메일로 인터뷰한 얘기를 들어보자.
 

디즈멀랜드
디스멀랜드 정면에 위치한 일그러진 인어공주 조각(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 디스멀랜드 프로젝트는 대체 무엇인가?

“테마파크를 예술로 꾸민 축제의 현장이라 설명하면 될까요.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무정부주의라고 봐도 될 것 같군요. 별도의 처방전 없이 ‘저항문화’라는 약을 복용한다는 개념으로 봐도 되겠네요. 가맹점들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속에서 구속받지 않는 제국이기도 하고요. 이번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해오던 재미있는 일 보다 스케일이 업그레이드 된 놀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 왜 이런 일을 저질렀나?

“대기업에서 찍어 내는 예술품에 싫증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을 위한 맞춤 제작 정도에요. 제가 만든 이번 프로젝트는 당신과 당신이 그동안 익숙하게 봐오던 브랜드 사이의 역학 관계에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대체로 미술품을 감상할 때 ‘이 미술의 요점이 뭐지?’라고 흔히 생각하잖아요. 제 작품은 ‘미술의 요점을 내가 왜 궁금해 하고 있지?’ 예술 앞에 나라는 자아가 왜 서 있는지를 묻는 형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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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멀랜드에 설치된 마차가 전복된 신데렐라.(사진출처=美 ABC뉴스 홈페이지 캡처)

◇ 당신의 작품이 다시 판매되거나 없어질 때 느낌은 어떤가?

“크게 많은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예술이라는 고유의 의미를 뺏고 ‘유해한 예술’을 만드는 풍토를 조성하는 셈이죠. 불법적으로 벽에 페인팅을 할 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싸워야 할 부분들이 많아요. 나를 카메라로 찍으려는 사람, 경찰들, 주택관리자, 거기에 예술로 장사를 해먹으려는 투기꾼까지. 점점 더 작업하는 데 신경 쓸 점이 늘어나고 있죠. 그래피티는 유효기간이 있지만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술 양식입니다. 자본에 의해서 그래피티마저 파멸한다면 그보다 더 애석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뱅크시가 디스멀랜드를 통해 말하고자 한 점은 무엇일까. 그동안 그가 보여 왔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체제전복적인 메시지의 ‘종결판’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로빈후드가 되길 꿈꿨다는 뱅크시. 지금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돈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 돼 있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한다는데. 하기야 자신의 그림을 로또 당첨처럼 여기는 현 사태를 보면 씁쓸하기도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드려본다. 어느 날 아침 당신의 집 대문에 뱅크시의 낙서가 휘갈겨져 있다면 당신은 뱅크시를 ‘테러리스트’라고 볼 건지, 아니면 ‘로빈후드’라고 볼 건지.

권익도 기자 kid@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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