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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人]영화 '박화영'의 아우라. 배우 김가희의 힘

입력 2018-08-01 16:10

박화영 김가희
영화 ‘박화영’의 김가희(사진제공=명필름랩)

 

“이렇게 좋은 기싸움이라면 매일 하고 싶더라고요.”



두 눈을 의심했다. 영화 ‘박화영’ 주인공 김가희의 실물은 영화 속과 전혀 딴판이었다. 이제 막 20대 초반의 앳된 아가씨가 수줍게 웃고 있다. 극중 17살 가출팸 학생들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후덕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박화영’은 꽤 불편한 영화다. 시작부터 후드티를 머리 끝까지 올려 쓴 성별 미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가진 돈을 다 털어 라면을 사서 들어간 지하방에는 집 나온 10대들이 담배를 피고 있다.

좁디 좁은 화장실에서 그들은 거침없이 몸을 섞는다. 카메라는 그들 사이의 허름한 창문 밖으로 ‘박화영’이 생물학적인 엄마에게 온갖 쌍욕을 해대며 생활비를 뜯어내는 모습을 교차시킨다.
 

박화영 스틸
김가희가 영화 ‘박화영’에서 인상깊은 연기로 꼽은 장면. 영화 속 가출팸의 엄마로 지내지만, 친모한테 버림받은 역할이다.(사진제공=명필름랩)

 

“1차 오디션은 말 그대로 망했고…2차 오디션에서 ‘희망’을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새 작품을 하신다기에 응원차 현장에 갔다가 덜컥 오디션을 보고 합류할 수 있었죠. 박화영이 되기 위해 제 모든 걸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함께 캐스팅 된 배우들과 명필름랩 숙소에서 합숙을 하는데 속으로 그랬어요. ‘이런 조합에 낄 수 있다니 복받았구나. 김가희!’라고요. 다들 연기를 전공하거나 소속사가 있는 배우들이라 보고 배운 게 너무 많아요. 좋은 기싸움이란 이런 거구나를 느낄 수 있었죠.”

 

자그마치 5차에 걸쳐 오디션을 치렀다. ‘박화영’의 오디션 문구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하다. 캐스팅 내내 연기지망생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소개들은 ‘다소 우둔해 보이는 외형, 패륜에 가까운 일도 서슴치 않는다’는 문구 외에도 ‘일체의 연민을 거부하는 전대미문의 여성 캐릭터’라고 써있다. 배우 출신인 이환 감독은 혹독하게 배우들을 다그쳤다.
 

김가희3
영화 ‘박화영’의 김가희(사진제공=명필름랩)

김가희는 “기형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잘 풀어낼 수 있나 존경스럽고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감독”이라고 속마음을 고백했다. 

 

관객들을 다 나가게 하려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는 감독의 말이 도리어 자극이 됐다. 

 

함께 연기한 강민아, 이재균, 이유미 등은 혼연일체로 역할에 녹아들었다. 제대로 된 연기 공부를 해 본적 없는 김가희는 그들과 함께 스펀지처럼 박화영이 돼갔다. 

 

“집나온 아이들을 믿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은 아이라고 봤어요. 나를 못 믿었던 엄마에 대한 상처를 알기에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려고 한거죠. 아마도 화영이는 자신을 이용하는 미정(강민아)의 계산도 눈치챘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알고도 눈감아 준 게 아닐까요?”

실제 김가희 역시 친구 같은 엄마가 있다. 나이 차이는 딱 스무살.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지지해 주진 않았지만 학창시절 내내 체육부장을 도맡아 하고 소극적인 자신의 성격을 잘 알기에 기꺼이 세상에 나가는걸 막지않은 고마운 존재다.

체중을 20kg 늘리고 연기에 미쳤던 순간들은 배우로서 책임감과 더 잘하고픈 욕구를 부추겼다. 감정적으로 모든 장면이 힘들지만 촬영 이틀째 찍은 신은 김가희에게 ‘신들린 감정’을 느끼게 했다.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는 엄마의 집에 찾아가 과도를 들고 동네를 휘젓는 다소 거친 장면이다. 영화와 연극에서 활동하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박화영을 가로막는 지구대 경찰로 등장한다.

“롱테이크로 15분 정도 가야 하는데 촬영 여건상 딱 그날 밖에 안됐어요. 바로 어제 김가희에서 박화영이 됐는데 화면으로만 봤던 대선배님들에 맞서야 되더라고요.(웃음) 사실 모든 장면이 콘티에 없던 욕과 악다구니, 진상 짓이에요. 대본에도 없는 날 것 그대로를 받아주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아 대배우는 틀리구나’를 느꼈죠.”

독립영화의 척박한 환경 속 한달 간의 촬영 기간은 꿈같이 지나갔다. 무엇보다 제 36회 뮌헨국제영화제에서 초청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쁨을 느꼈다.

“난생 처음 유럽에 가 봤는데 티켓 부스에서 직접 영화표를 팔기도 했어요. 관객 한분이 끝나고 나서는 ‘너는 왜 안나왔니?’라고 하셔서 제가 바로 박화영이라고 하니 놀라 기절하는 제스처를 취하시더라고요. 정말 뿌듯했어요. ‘이 맛에 연기하는 구나’ 했죠. 영화를 위해 살을 찌운 것보다 머리카락을 자를 때 뭔가 감정이 올라왔어요. 실제 살점이 뜯기면서 박화영이 되는 느낌이었죠. 새롭고 낯선 이 기분을 잊지 않고 더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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