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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스트 김기경(왼쪽)과 김여랑(사진=강시열 작가) |
“클래시컬 피아니스트는 큰 무게를 지고서 무대에 올라 피아노 앞에 앉는다면 뮤지컬은 그 짐을 싹 다 버리고 어디에도 밀착될 수 있는 ‘날개’가 돼야 해요. 피아니스트한테는 정말 힘든 일이죠. 연주의 문제가 아니라 멘탈 자체를 바꿔야하는 부분이 저도 쉽지 않았는데 여랑이가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6월 2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의 피아니스트 김기경은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김)여랑이와의 더블캐스팅은 신의 한수”라고 표현했다. 고마움을 전하는 김기경에 김여랑은 “형이 저보다 뛰어난 게 많다”며 “연습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는데 형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 대꾸했다.
“저는 모든 게 처음이지만 형은 다양한 작업을 하셨거든요. 그래선지 뮤지컬이 처음인데도 잘 녹아드시더라고요. 클래식에서 하던 걸 많이 내려놓고 올라가야 하는데 저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 게 있어요. 이제야 조금씩 적응 중이죠. 저는 아직도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이 떨리고 그래요. 감정도 많이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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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스트 김기경(사진=강시열 작가) |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의 천재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와 그의 정신과 주치의 니콜라이 달(Nikolai Vladimirovich Dahl) 박사의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꾸린 2인극이다.
‘교향곡 1번’(Symphony no.1) 혹평 후 신경쇠약으로 두문불출하는 라흐마니노프(박규원·정욱진·이해준,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가 정신의학자 달(유성재·정민·임병근) 박사를 만나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2)을 완성하기까지의 치유과정을 따른다.
실제로 아마추어 비올리스트이기도 한 달 박사에게 헌정해 한 무대에서 합주를 하기도 했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1번’ ‘보칼리제’ 등 라흐마니노프의 명곡들로 넘버를 꾸렸다.
◇‘락흐마니노프’ 박규원, 소름 돋는 정욱진, 급성장 이해준의 라흐마니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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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중 라흐마니노프 역의 이해준(왼쪽)과 달 박사 정민(사진제공=HJ컬처) |
“배우들이 점차 연기가 무르익는 과정을 무대에서 지켜보는 게 너무 재밌고 놀라워요.”
한목소리를 내는 김기경과 김여랑은 저마다 다른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의 매력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김기경은 이해준의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청년 라흐마니노프의 느낌”이라며 “대사와 대사 사이의 공간을 메우는 연출이 남다르다”고 밝혔다.
“디테일이, 자극이 세요. 그래서 눈을 한번 쳐다보거나 악보를 내리는 동작에서 모든 얘기를 하는 느낌이죠. 모든 배우들이 회를 거듭하면서 깊어지고 있지만 특히 (이)해준 배우가 도드라지게 많이 성장하고 깊어졌어요. 옆에서 보고 놀라서 BG(배경음악)를 잘못들어간 적도 있을 정도예요. (라흐마니노프와 쯔베레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 중에 라흐마니노프가 ‘선생님은 그러신 적 없잖아요. 선생님은 차이콥스키가 아니잖아요!’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없잖아요’!에서 들어가 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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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스트 김여랑(사진=강시열 작가) |
“피아노 연주를 하다보면 페달에서 울리는 잔향이 있어요. (정)욱진 배우는 그 잔향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순간들이 있어요. 어떤 흐름에 따라 잔향이 다 사라지고서야 슬며시 들어오셔서 소름이 돋았던 순간들이 있죠.”
김여랑의 설명에 김기경은 “욱진 배우는 자연스러움을 넘어 모션들이 계속 흐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해준 배우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온 느낌이라면 정욱진 배우는 한국적인 한이 느껴져요. 특히 독백이나 ‘비가’에서 전혀 다르게 표현되는데 너무 재밌어요. ‘비가’에서 해준 라흐마니노프가 다크하고 퍽퍽함이 느껴진다면 욱진 라흐마니노프는 이루지 못한 소망에 대한 한이 섬세하게 흘러 다니죠.”
이렇게 설명한 김기경은 박규원의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저만의 표현인데 ‘락’흐마니노프”라며 “그렇게 배우에 따라 전혀 다른 극이 된다”고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진욱) 음악감독님이 ‘컴플리트’와 그 곡의 리프라이즈를 록 반주법과 드럼 비트를 가져다 편곡하셨는데 박규원 배우가 그걸 살리더라고요. 너무 신선했죠.”
김기경의 말에 김여랑은 “처음엔 피아노를 연주하다 놀랄 정도로 신선했다”며 “지금은 피아노로 이런 (록) 사운드를 낼 수 있다는 데 내적 쾌감이 느껴진다”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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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중 달 박사 역의 유성재(왼쪽)와 라흐마니노프 박규원(사진제공=HJ컬처) |
“저희(피아니스트들)도 그 부분에서는 더 미쳐서(?) 치거든요. 박규원 배우가 그걸 끄집어 내주셨어요. 초반에는 악보 보기도 급급해서 오케스트라 연주자분들과만 눈을 맞추고 사인을 주고받곤 했어요. 그러다 악보가 편해지면서는 배우들 눈을 보면서 연주하는데 마주친 (박)규원 배우의 눈에서는 절실함이 보여요. 갈구하는 느낌이랄까요. 라흐마니노프와 배우 자신이 가진 절실함이 눈에서 보여서 모든 게 설명이 돼요.”
이어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김여랑에 김기경은 “매회 그렇게 연기를 하는 것도 대단하다. 저희 부모님이 만날 걱정하실 정도”라고 말을 보탰다.
“저희 부모님이 규원 배우 라흐마노프를 관람하셨거든요. 그 후로 저만 보면 규원 배우 안부를 물어보세요. ‘그 라흐마니노프 배우 무릎 괜찮냐’고. 저도 가끔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규원 배우는 살살이 잘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구동성 “팬이에요!” 유성재, 따뜻한 임병근, 극단적 에너지의 정민 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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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중 달 박사 역의 임병근(왼쪽)과 라흐마니노프 정욱진(사진제공=HJ컬처) |
“팬입니다!”
유성재의 달 박사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친 김기경과 김여랑은 “유성재 배우가 달 박사를 하실 때는 저도 힐링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김기경은 “달 박사님들이 다들 그렇다”며 “유성재 배우의 달 박사는 유머러스한데도 젠틀한 프렌치적인 개그가 너무 재밌다”고 부연했다.
“제가 지친 상태로 무대에 올랐을 때도 (유)성재 배우님 연기를 보면서 힐링을 해요. 극적으로 치닫지 않는 범위 내에서 뭔가를 다 하고 있는 느낌이죠.”
김기경의 말에 김여랑은 “연륜에서는 오는 바이브가 느껴진다”며 “임병근 배우님의 달 박사를 통해서는 따뜻함을 많이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김기경은 “엄마 같은 달 박사”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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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스트 김기경(왼쪽)과 김여랑(사진=강시열 작가) |
“중성적인 느낌이랄까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달 박사시죠. 더불어 (임)병근 배우님이 차이콥스키와 쯔베레프 선생님을 하실 때 너무 좋아요. 정민 배우는 가장 과격한 쯔베레프 선생님이고 가장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대본을 극대화시키는 달 박사 같아요. 박규원 배우의 라흐마니노프처럼 극단적으로 에너지를 표출하시죠.”
김기경의 말에 김여랑은 “박규원 배우의 라흐마니노프와 정민 배우의 달 박사가 만나면 저 역시 체력과 정신력을 많이 써야한다”며 “그 회차는 초집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기경은 연습기간부터 함께한 김여랑과 배우들, 스태프들에 대해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엔 갈등도 물론 있었죠. 하지만 엄청나게 감정을 쓰는 배우들, 무대 뒤에서 공연에 최적화된 환경을 맞춰주려 애쓰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감사하고 있어요.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