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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아기자기하지만 무겁고, 종잡을 수 없지만 의미심장한 ‘백남준 개인전’

입력 2020-12-07 18:15

백남준 개인전
리안갤러리 서울의 ‘백남준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바르셀로나 올림픽 100주년 기념 석판화, 실험정신과 다산 정약용에 대한 존경 그리고 브라운관 TV의 화면조정 색이자 한국 전통의 오방색을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 및 판화, 본격 전자시대의 도래를 암시한 듯한 로봇 볼타(Volta), 프랑스 혁명을 주제로 한 시리즈와 새천년을 맞아 선보인 비디오 조각의 변주, 뮤즈이자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Charlotte Moorman)과의 교감 현장….



3일 개막한 ‘백남준 개인전’(2021년 1월 16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 작가 백남준의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첫 작품은 1997년작 ‘로봇 정약용’이다. 궤짝, 문양, 자수 기법 등 한국 전통적 재료와 9개의 모니터로 꾸린 ‘로봇 정약용’은 백남준 작가가 어려서부터 품었던 다산 정약용에 대한 존경심과 실학정신이 담긴 작품이다. 

 

로봇 정약용
리안갤러리 서울의 ‘백남준 개인전’ 중 ‘로봇 정약용’(사진=허미선 기자)

일층은 ‘로봇 정약용’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 오방색을 콘셉트로 꾸렸다.

 

전통 색동 문양에서 영감을 받은 오방색인 동시에 브라운관 TV의 화면조정 색 바탕을 활용해 팔레트처럼 혹은 반복되는 TV드로잉으로 꾸린 ‘무제’ 두점이 ‘로봇 정약용’ 양쪽 벽면에 배치돼 있다.

이번 ‘백남준 개인전’에는 1996년 뇌졸중으로 사선을 넘나 든 후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백남준이 크레파스로 낙서하는 듯 표현해낸 작품들이 비디오 아트, 판화나 회화로 전시된다.

지하의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는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작업한 프로젝트로 과거 역사적 고난을 강인하게 이겨내고 마음과 생명력에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비디오 아트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염원하는 작품으로 8분짜리 영상에는 휠체어에 앉아 호랑이를 그리는 백남준, 북한에서 제작된 호랑이 다큐멘터리, 민화 속 호랑이 그리고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일부 편집화면 등이 빠르게 지나간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1984년의 신년맞이 생중계 프로젝트로 미국 WNET 뉴욕 스튜디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를 실시간으로 위성 연결해 한국, 일본, 독일 등에 생중계된 퍼포먼스다. 매스미디어를 향한 비관적 전망을 담은 조지 오웰 ‘1984’ 예언의 또 다른 면인 매스미디어의 긍정적인 면을 다룬 프로젝트로 로리 앤더슨, 앨런 긴즈버그, 샬롯 무어먼, 톰슨 트윈스, 사포, 요셉 보이스, 어반 삭스 등 100여명의 예술가들이 함께 했다. 

 

더불어 지하에서는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을 비디오로 조각해온 연작 중 하나인 ‘볼타’도 만날 수 있다. ‘볼타’는 전지를 최초 개발한 이탈리아 물리학자 알렉산드로 볼타의 이름을 딴 작품이다. 

 

볼타
리안갤러리 서울의 ‘백남준 개인전’ 중 비디오 조각 연작 ‘볼타’(오른쪽)와 프랑스 정부에서 의뢰받아 혁명 200주년 기념작으로 제작한 3미터짜리 연작 비디오 조각 ‘혁명가 가족 로봇’을 에칭 기법으로 변주한 ‘진화, 혁명, 결의’(사진=허미선 기자)

 

세개의 소형 모니터로 이목구비를, 구형 TV 케이스로 몸체를, 네온으로 전지 혹은 심장처럼 꾸린 ‘볼타’에 대해 홍세림 큐레이터는 “본격적인 전자시대가 도래할 것을 암시한 작품으로 백남준 작가의 예지자적 면모가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물 비디오 조각에서 영감받아 판화로 변주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1989년작인 ‘진화, 혁명, 결의’(Evolution, Revolution, Resolution)는 구형TV와 라디오 케이블로 제작했던 3미터짜리 연작 비디오 조각 ‘혁명가 가족 로봇’을 에칭 기법으로 변주한 작품이다.

‘혁명가 가족 로봇’은 프랑스 정부에서 의뢰받은 혁명 200주년 기념작으로 각각의 로봇에는 마라(Marat), 로베스피에르(Robestpierre), 당통(Danton), 디드로(Diderot) 등 프랑스 혁명에 연관돼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들의 이름이 붙었다. 백남준 작가는 그 이름에 관련된 ‘암살’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 ‘웅변’ ‘이성과 자유’ 등의 문구로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도 한다. 

 

백남준 개인전
리안갤러리 서울의 ‘백남준 개인전’에는 백남준의 뮤즈이자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이 함께 한 ‘TV브라’ 현장을 담은 사진작가 임영균의 사진 8점이 전시된다(사진=허미선 기자)

 

지하에서는 백남준과 신문화운동을 이끈 동료 예술가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뮤즈 중 한 사람이자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 등과의 교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앨런 긴즈버그의 얼굴, 비디오, 신디사이저로 꾸린 영상을 인쇄한 실크스크린 작품, 샬롯 무어만과 함께 했던 ‘TV브라’ 현장을 촬영한 사진작가 임영균의 사진 8점이 전시돼 있다. 

 

특히 경찰까지 출동했던, 백남준의 나체를 끌어안고 첼로를 연주하는 샬롯 무어만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백남준’ 유명세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이별만큼 서럽더라’ ‘간다 안녕히 계시오’ ‘너무 하다’ ‘그만 죽자’ ‘바보’ 등 한글과 영어, 한자 등 도무치 맥을 잡을 수 없는 메모들로 빼곡한 콜라주 작품, 바르셀로나 올림픽 100주년을 기념하는 석판화 등 아기자기해 귀엽게까지 느껴지지만 무겁고, 종잡을 수 없지만 의미심장한 백남준의 또 다른 감성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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