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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현재’의 제니 홀저! 국제갤러리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展

입력 2020-12-18 18:15

제니 홀저
제니 홀저 국제 갤러리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LED, 대리석, 지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텍스트, 문구, 경구들로 일상의 이슈, 사회·정치적 발언을 해온 작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회화, 수채화를 만날 수 있는 전시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2021년 1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K2, 3)가 한창이다.



2004년, 2011년에 이은 9년만의 국제갤러리 개인전으로 “세상에 쓸모 있는, 쓰임 있는 작가이길” 꿈꾸며 대표 연작 ‘트루이즘’(Truism, 경구들)을 비롯한 다양한 텍스트 작업 중인 제니 홀저가 현재 몰두하고 있는, 바로 지금의 관심사를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시국에 제니 홀저가 던지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목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는 “왕성하게 혹은 적극적으로 공상하는 삶”의 가치를 응축하고 있다. 

 

제니 홀저
제니 홀저 국제 갤러리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 중 2020년 작 ‘스테이트먼트 트루이즘’(Statement Truism)와 대리석 벤치들(사진=허미선 기자)

적극적으로 공상하는 삶을 기원하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2020년 작 ‘스테이트먼트 트루이즘’(Statement Truism)을 비롯한 세로형 LED 텍스트 작품 ‘스테이트먼트-리택티드’(Statement-redacted, 2015), 가로형 2점 ‘리빙’과 ‘서바이벌’, 경구가 각인된 대리석 벤치들,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를 소재로 한 검열회화(Redaction Painting) 그리고 2016년 ‘뮬러(Mueller) 특검 보고서’를 접한 후 생겨난 감정들을 캔버스에 담은 수채화들을 만날 수 있다.

‘권력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Abuse of Power Comes As No Surprise), ‘따분함은 미친 짓을 하게 만든다’(Boredom Makes You Do Crazy Things), ‘타이밍 감각은 천재성의 표식이다’(A Sense of Timing is the Mark of Genus),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날 보호해줘’(Protect Me From What I Want), ‘고독은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Solitude is Enriching), ‘유머는 해방이다’(Humor is a Release), ‘행복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Being Happy is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Else) 등 제니 홀저의 유명 경구들이 LED로, 대리석 벤치 음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1980년대 초부터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LED 텍스트 작품은 제니 홀저의 대표 작업인 동시에 정체성이기도 하다. 제니 홀저는 글씨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쏟아지거나 내리 꽂히는가 하면 노이즈가 있는 상태에서 글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녹아내리듯’ 서서히 없어지기도 하는 LED 시스템이 사람이 구두로 메시지를 전할 때와 비슷한 억양, 매커니즘을 닮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진화해온 LED 텍스트 작업의 일환인 2020년 신작 ‘스테이트 트루이즘’은 러닝타임 7시간짜리 작품으로 영문 경구들과 더불어 차용된 한국어 경구들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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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제니 홀저(사진제공=국제갤러리)

 

‘가끔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있다’ ‘가장 심오한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법이다’ 등 한국어 경구들은 반갑지만 자연스럽지도, 매끄럽지도 못한 문장들에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이는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고 회전하는 통에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LED 표현과 마찬가지로 일부러 부자연스러운 번역투의 한국어 표현을 써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장치다.

 

‘스테이트 트루이즘’을 둘러싼 대리석 벤치는 LED 내에서 움직이는 글귀들과 고정된 대리석에 각인된 텍스트, 상반된 방식으로 표현된 작품들을 한 공간에 둠으로서 텍스트와 매체의 부조화와 조화, 화음 등을 느끼도록 제니 홀저가 원격으로 직접 배치했다.
 

제니 홀저
제니 홀저 국제 갤러리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 중 검열회화와 대리석 벤치(사진=허미선 기자)

제니 홀저는 전시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LED 작품들과는 상반되는 대리석 벤치를 함께 전시하고 정치적 이슈를 다룬 페인팅도 다수 선보인다”며 “회화들은 비밀 정부 문서에 담긴 내용들을 바탕으로 했다”고 소개했다.


그의 전언처럼 ‘제니 홀저’ 하면 떠오르는 LED, 경구들, 대리석 벤치 등과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수십년만에 캔버스 앞에 앉아 그려낸 수채화들과 미국 정보 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일반에게도 공개된 정부 문서를 린넨 캔버스에 유화로 작업한 검열회화들이다.

정보공개법에 적시된 기간이 지나 대중들도 볼 수 있게 된 기밀문서들은 공개가 됐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절반 이상이 검열 바로 처리돼 있다.

 

제니 홀저의 검열회화들은 기밀문서 중 검정 바로 가려진 부분을 백금, 금, 은, 할라늄 등으로 칠해 정보의 은폐와 공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유화에 금은박을 입힌 검열회화들은 단박에 완성되기 보다 여러 해에 걸쳐 덫칠되고 수정되며 지난한 과정들을 거친 작품들로 빛의 양, 각도 등에 따라 다른 감흥을 전달하기도 한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추문’ ‘궁극의 죄악’ 등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붙인 36점의 수채화들은 K2 정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 수채화들에 대해 제니 홀저는 “뮬러 보고서를 읽고 답답함을 느끼던 찰나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 위에 페인팅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뮬러 보고서는 2016년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캠프와 러시아 정부 공모 의혹에 대한 뮬러 특검팀의 수사 결과를 담고 있다. 이 작업에 대해 “뮬러 보고서가 나를 불렀다”고 표현한 제니 홀저는 최근 잦아진 수채화 작업을 통해 뮬러 보고서를 보면서 느낀 분노, 좌절, 비통함, 예민함 등 날선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제니 홀저
제니 홀저 국제 갤러리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 중 ‘뮬러 보고서’를 보고 느낀 감정을 담은 수채화들(사진=허미선 기자)


LED, 벤치, 검열회화까지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며 완성도에 집착하는 제니 홀저는 유일하게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수채화 작업에 대해 “일종의 미술테라피”라고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왕성하게 혹은 적극적으로 공상하는 삶’을 꿈꾸는 제니 홀저는 LED, 텍스트 등의 대표 작업들과 더불어 ‘현재성’ ‘날선 감정들’을 담은 작품을 통해 코로나19 시대를 견뎌내고 있는 이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공감과 연대의 손길을 건넨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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