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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코로나19에 폐허가 된 무대, 그럼에도 ‘쇼 이즈 온!“

[2020 연말결산] ⑥무대예술

입력 2020-12-29 18:00
신문게재 2020-12-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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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 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하는데 해마다 더 나빠지고 있다.”

한 뮤지컬·연극 제작사 관계자의 자조적인 하소연은 2020년에도 어김없이 적용됐다.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연극, 뮤지컬, 클래식 등의 무대예술들은 ‘비대면’ ‘언택트’를 ‘뉴노멀’로 둔갑시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매일의 신규 확진자 수, 정부 방역정책,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공연 여부, 거리두기 좌석제 정도를 가늠해야 하는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너희는 고? 스톱?” “퐁당(한 자리 띄어 앉기)? 퐁퐁당?(자신의 일행과는 동석하고 타 일행과는 한 좌석 띄어앉기) 퐁당당(두 좌석 띄어앉기)?”이라고 안부를 묻는 것이 일상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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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변화되는 거리두기 좌석제로 일괄취소, 재예매 등을 반복했다. 사진은 4월 한 자리 띄어앉기 좌석제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흑백다방'(사진제공=예술의전당)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화되던 3월부터 11월까지의 공연매출은 1054억8917만원(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 KOPIS 기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년 동기대비(1716억7793만원) 60% 수준이다. 다수의 요양병원·교회發 3차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12월의 매출은 지난해 12월(275억3300만원)의 2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개막편수 역시 5216편(12월 26일까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038편) 보다 40% 이상 줄었다. KOPIS에 등록되지 않은 공연이나 제작사들도 적지 않으니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체감으로는 전년대비 70% 하락으로 느낄 정도”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연극 스태프 및 배우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고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등을 연주하던 클래식 연주가들 역시 택배기사, 배달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이에 지난 8월 대형 뮤지컬제작사들과 배우들이 모여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 생계지원 기부금 마련을 위한 뮤지컬 갈라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을 기획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무산됐다.


◇코로나19로 고사 위기에 내몰린 무대예술, 고질적인 문제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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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본색’(사진제공=빅픽쳐프러덕션)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맞으면서 한국 공연계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르면 6개월 전에 완납돼야 문이 열리는 극장 대관료, 원금 상환을 전제로 한 투자, 천정부지로 치솟는 배우 출연료 등 기형적인 제작시스템은 배우와 스태프의 임금체불, 배우들도 모르는 공연 취소·중단 등으로 이어졌다. 

뮤지컬 ‘위윌락유’ ‘영웅본색’ ‘셜록홈즈’ 등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배우, 스태프, 관객 등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며 공연을 취소했지만 실체는 기형적인 제작시스템에서 기인한 임금체불이 그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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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위윌락유’(사진제공=엠에스컨텐츠그룹)

 

지난 9월 개막했던 연극 ‘이퀄’ 제작사 대표는 공연이 한창이던 10월 중순 연락을 끊고 잠적하기에 이르렀다. 해당 작품의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국이 별일이지만 진짜 별일이 다 있다”며 “2018년부터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신작을 무리하게 올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사정에 코로나19까지 덮치는 통에 출연 배우들도 모른 채 마지막 공연을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공연계의 고질병들은 더욱 깊어졌다.  

방역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른 거리두기 좌석제는 손해를 감내해야 하는 선택이다. 상대적으로 단가가 비싸고 수용인원이 많은 대극장 작품은 객석을 70% 가량 채워야 손익분기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한 좌석 띄어앉기만 해도 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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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2.5단계 격상으로 공연을 중단할지, 두 좌석 띄어앉기로 이어갈지를 선택했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개막을 연기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공연을 중단한 '고스트'와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아래 왼쪽부터 두 좌석 띄어앉기로 공연을 진행하는 연극 '킹스스피치', 뮤지컬 '에어포트베이비', 음악극 '올드위키드송' (사진제공=오디컴퍼니, 신시컴퍼니, 마스트미디어, 연극열전, 키위미디어그룹, 파크컴퍼니)

“해도 손해, 안해도 손해”인 상황에서도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계에 “이 시국에 무슨 공연을?”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는 다수의 공연 관계자들이 토로하듯 “길게는 6개월 전에 완납해야하는 극장 대관료, 출연료 등에 수익 창출은 일찌감치 물 건너 간 상태에서 다만 얼마라도 손해를 줄이려는 몸부림”이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국공립·시립극장이나 지방자치제 등의 문화재단은 코로나19를 ‘재해 기타 불가항력의 사유’로 규정하고 공연 취소분에 따른 대관료 전액 환불 정책이나 대관기간 조율 방침을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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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공연장들이 모여 있는 종로구 대학로.(사진=브릿지경제DB, 허미선 기자)

 

하지만 민간극장은 사정이 다르다. 우리아트금융홀, 광림아트센터, 롯데콘서트홀 등 극소수를 제외한 민간극장들은 코로나19를 환불 혹은 금액 조율 항목인 ‘천재지변 및 기타 불가항력의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대부분 극장이 고수하고 있는 ‘몇 개월 전 대관료 전액 완납’처럼 공연계의 오랜 고질병에서 비롯된다. 대학로에 밀집한 작은 극장들 대부분은 극장주가 건물주에게 매달 400여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해야하는 구조다. 상황이 이러니 대관료 환불을 받기란 녹록치 않는 상황이다.


제작사들의 공연 강행 혹은 중단 결정에 따라 수개월 전에 예매된 관람권들이 일괄취소와 재예매를 반복하면서 관객들의 불편과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뉴노멀’ 온라인 공연 유료화, 그에 따른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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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대예술들은 마스크 착용, 체온측정, 문진표 작성, 객석 띄어 앉기, 철저한 공연장 방역 등을 지키며 진행 중인 대면 공연과 더불어 온라인 공연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뉴욕 메트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조성진이 '피아노의 날'을 맞아 온라인 공연을 선보인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DG) 등 글로벌 예술단체 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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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온라인 스트리밍된 ‘모차르트!’(사진제공=EMK뮤지컬)

 

한국의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국악원, 국립극단, 서울예술단, ‘모차르트!’ ‘웃는남자’ 제작사 EMK뮤지컬, 뮤지컬 ‘광염소나타’, LG아트센터 등이 유무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나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무대예술계는 대부분 ‘무료’로 서비스되던 온라인 스트리밍 유료화 시도에 나서고 있지만 이 또한 양질의 공연 영상을 담보할 전문인력 부족, 적지 않은 제작비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저작권 및 수익 배분 문제, 제작비 수급과 수익창출에 대한 고민, 무대예술에 특화된 플랫폼의 부재 등 풀어야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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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전세계 유료서비스된 ‘광염소나타’(사진제공=신스웨이브)

 

작은 극단에서 송출하는 온라인 공연은 조명이 출연자의 얼굴을 가리고 음향이 고르지 못해 관람이 쉽지 않은가 하면 어떤 단체는 수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고화질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고화질의 공연 영상이 “시공간의 제약이 큰 공연 관객 확대의 기회”가 될 만큼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공연 관계자들도 인지하고 있듯 “관객들은 온라인 공연 유효화에 예상보다 빨리 적응 중”이니 제작사들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단순히 촬영하기 보다는 영상 콘텐츠로서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숙고하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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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스트리밍서비스된 ‘잃어버린 얼굴’(사진제공=서울예술단)

 

더불어 네이버나 인터파크 등 다른 플랫폼을 빌려 사용함으로서 상황변화에 따른 이용 및 비용 등에 발생하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를 해소할 과금 및 티켓팅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된 자체 플랫폼 개발 혹은 일원화 그리고 여전히 전무하다시피한 창작자 보호를 위한 수익 배분 기준 마련도 해결해야할 문제다.

적지 않은 제작비, 기대에 못미치는 매출 등으로 제작비 수급 및 수익 창출도 난제다.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는 이미 영국 국립극장(Royal National Theatre)의 공연 영상 콘텐츠 ‘NT라이브’에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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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유료 서비스된 LG아트센터의 ‘내면으로부터’(사진제공=LG아트센터)

 

‘NT라이브’는 한 공연 마니아가 “NT라이브로 보고 감명 받은 연극이 있었는데 영국 현지 극장에서 관람하고는 실망했다”고 할 정도로 ‘독보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한 콘텐츠다. 하지만 영국 극립극장 발표에 따르면 그 대단한 NT라이브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적, 장르적 한계를 넘는 온라인 공연 유료화는 무대예술계가 당연히 가야할 길로 인식되고 있다. 적지 않은 숙제가 산적해 있고 지난한 과정들이 남아 있지만 공연 영상 유료화의 길은 대면공연의 대체제가 아닌 또 다른 장르의 무대예술로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코로나19 습격, 셧다운된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에 내한 공연 문의 빗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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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앙상블 배우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는가 하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출연배우 14명이 코로나19 검사에서 무더기 양성판정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공연계도 위기를 맞았다.

사랑제일교회·우리제일교회 발(發)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이 심상치 않던 8월에는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에 출연하며 연극 ‘짬뽕’ 개막을 준비하던 단역배우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허동원, 김원해 등 극단 산 단원들이 줄줄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들 중 한명과 다른 공연에 출연 중이던 한 배우가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22일 하루 동안 ‘킹키부츠’ ‘렌트’ ‘전설의 리틀농구단’ ‘브로드웨이 42번가’ ‘난설’ ‘개와 고양이의 시간’ 등 10여편이 줄줄이 공연 중단 사태를 맞았다.

캣츠
뮤지컬 ‘캣츠’(사진제공=에스엔코)

 

내년 5월까지 셧다운을 선언한 브로드웨이, 올 3월부터 공연이 중단된 웨스트엔드 등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불 켜진 무대를 가진 나라가 된 한국에는 그 어느 때보다 오리지널 공연들이 러시였다.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 드 파리’를 비롯해 ‘캣츠’까지 서울을 비롯한 전국 투어 중이거나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다수의 공연 관계자는 “내한 공연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유명 프로듀서들의 작품들이 기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내한하겠다고 문의를 해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40주년 기념공연이 가능해진 ‘캣츠’ 내한 공연에서 현존하는 전세계 유일의 그리자벨라인 조아나 암필은 “지속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게 산업을 지키고 굳건히 희망을 끈을 놓지 않게 해준 한국에 감사하다”고, 럼 텀 터거 역의 댄 파트리지는 “제가 한국에 와 있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전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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