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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불면증을 겪고, 슬리포노믹스에 빠지다!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국내 수면장애 환자 64만명… '슬리포노믹스' 아시나요?
예민한 잠귀,침구탓이라 여겼던 지난날
수면장애 넘어 불면증 겪으며 '잠의 소중함'깨달아
일부러 잠들려고 하지 않으니 수면제 끊고 독서에 치중하게 돼

입력 2021-06-29 18:30
신문게재 2021-06-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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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못 자는’ 고통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돌이켜 보면 머리만 닿으면 잤던 기억이 거의 없다. 잠귀가 밝은 편이긴 했지만 그저 엄마를 닮아서라고 여기며 살았다. 출장이나 여행으로 자는 공간이 바뀌면 유독 더 심했다. 시설이 좋으면 고급진 대로, 한방에 여러 명이 자는 공간일 경우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간혹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도미토리에 묵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그것도 20대 젊은 시절의 낭만일 뿐.마흔이 넘어서부터는 잠자리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생겼다. 경비 중 식비는 줄여도 잠자는 곳에 대한 양보는 거의 하지 않기로 한 것.지인들은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아무 데서나 잘 잘 것 같은데 의외”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요즘 세대의 표현으로 그 ‘헬게이트’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수확행
국내에서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유명한 ‘슬리핑 뷰티’의 주인공.(사진제공=디즈니)

 

단순히 쉽게 잠들지 못하는 고통이 정점을 찍은 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하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인 2019년이었다. 직업상 많이 돌아다니는 터라 숙소의 옥석을 가리는 매의 눈을 가졌다 자부했지만 알고보니 공간과 침구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예 잠을 자지 못하게 됐다. 정확히는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금만 돌아 눕거나 자다 깨 물을 마시러 나가면 다시 잠들기 힘들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잠을 청해봤지만 문 밖의 작은 소음에도 금방 깨버리곤 했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보다 새벽을 맞이 했다.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탄산수를 장바구니에 넣거나 세일 알람이 뜨는 브랜드에 들어가 무작정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잠드는 법’을 유튜브로 검색하다 밤을 새는 경우도 허다했다. 상추가 졸음을 유발한다고 해서 점심엔 시저 샐러드, 저녁엔 쌈밥 등으로 하루의 식사 메뉴를 꾸렸다. ‘대체 내가 뭘 하고 있지’라는 자괴감에 빠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다양한 베개가 존재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또 베개에 그렇게 돈을 쏟아 붓게될지도 몰랐다. 마약베개, 우유베개는 기본, 꿀잠을 잔다는 모든 아이템은 거의 다 사 본 것 같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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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면의 과학’의 한 장면.꿈과 현실을 세계를 구분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국내에 개봉해 큰 사랑을 받았다.(사진제공=스폰지)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잠을 못 자거나 자고 나도 피곤한 수면장애 환자는 2019년 기준 64만1806명으로 한해 전인 2018년 56만8067명(건강보험 가입자의 1.1%)보다 약 13% 증가했다. 앞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수면장애 환자는 5년간 연평균 8.1%씩 증가했다. 수면장애는 불면증, 기면증, 하지불안증후군, 코골이 또는 수면무호흡증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잠과 관련해 가장 흔히 알려진 불면증은 적어도 1개월 이상 잠드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잠에 들더라도 자주 깨는 일이 한주 3번 이상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이로 인해 낮 동안 매우 피곤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더 나아가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잠자는 시간이 매우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를 보면 2016년 전세계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 22분인데 한국은 7시간 51분이다. 평균 31분 적은 수치로 최하위권에 해당한다.

나는 수면장애를 겪다가 불면증으로 발전한 경우였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하니 이동 중에 쪽잠을 자는데 운전을 하다가 아찔한 경우가 잦아졌다. 울며 겨자먹기로 대중교통과 택시 이용이 늘면서 심리적으로 더 피곤한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약을 처방받기로 했다.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수면유도제는 몸을 나른하게 만들지만 장복을 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잠을 푹 자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결국 신경정신과의 도움을 받아 처방된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첫날은 신세계였다. 근 6개월만에 가장 푹 잔 순간이었다. 문제는 약 기운이 떨어지는 그 순간 눈이 떠진다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자는 게 어디냐며 감사한 기간은 채 2주가 가지 않았다. 수면제에도 함량이 있어서 점점 더 센 약을 먹지 않으면 몽롱하기만 할 뿐 푹 잘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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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워서 엄두도 못냈던 책을 하나씩 읽어나간 것도 ‘불면’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깨알같은 글씨가 있는것보다 흥미를 유발하고 사진이 많이 들어간 책을 추천한다.왼쪽부터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우연히,웨스 앤더슨’,‘액톨로지(Actorology) 배우 이병헌’.

 

지금 생각해보면 수면제는 잠시 뇌를 기절시키는 역할이었지 결정적인 치료는 될 수 없었다. 희한하게도 약을 먹는 동안 꿈을 꾼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있더라도 아침에 눈을 뜨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불면증이어서 좋았던 건 체중이 빠지는 정도가 유일했다. 낮에 햇빛을 충분히 쐬고 많이 걸으라는 조언은 수면장애 단계에선 충분히 도움이 될 법하다.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대한수면의학회 이사장)는 생체시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침에 기상 후 충분히 빛을 보고 활동하면 15~16시간 뒤 절로 잠이 온다. 수면욕구와 일주기 시계가 일치하게 돼 잠을 잘 자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단계가 넘어선 지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움은 명상에서 받았다. 뇌의 휴식을 돕고 잠을 유도하는 음악 등을 서비스하는 앱을 휴대폰에 다운로드했다. 잠이 오는 호흡법과 싱잉볼로 연주되는 노래를 듣다 보니 조금씩 불면의 순간이 줄어 들었다. 잠이 안 온다면 책을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휴대폰 불빛이 불면을 유발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일단 잠이 안 오고 약물의 힘을 빌릴 정도가 되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침대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도리어 빨리 잠드는 비결이다.

코로나19 확산은 잠(Sleep)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즉 수면경제를 대중화시킨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인의 수면 시간이 과거 대비 줄어들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짧게 자더라도 질 좋은 수면을 취하기 위한 사회적 지출이 크게 늘어난 것도  슬리포노믹스의 등장 배경이다. 침구류는 물론 숙면을 도와주는 가전, 차(茶), 아로마테라피, ASMR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2011년 4800억원 수준이었던 수면시장 규모는 2015년 2조원, 2019년 3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글로벌 수면 시장은 오는 2026년 320억 달러(약 3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기업들 역시 수면 관련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는 모양새다.

까사미아
까사미아는 지난해 기능성 매트리스 및 프리미엄 베딩 상품 라인업 대폭 확대에 이어 상품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힘써왔다.(사진제공=까사미아)

 

까사미아는 지난해부터 수면 카테고리 육성에 집중적으로 나서고 있다. 주요 오프라인 매장에는 고객들이 자신의 체형과 수면 습관에 적합한 매트리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매트리스 체험존’을 구성했다. 슬립케어 브랜드 이브자리도 ‘개인 맞춤형 수면 전문성’을 콘셉트로 한 ‘슬립앤슬립’을 키우고 있다. 지난 2014년 론칭 후 8년여 만에 매장을 220여개까지 늘렸다.

이곳에서는 개개인의 수면 습관, 체형 등을 분석해 맞춤 침구와 수면 솔루션을 제안해 준다. 부대시설과 서비스에 주력하던 호텔업계도 최근 프리미엄급 침구와 숙면을 돕는 차 등을 강조한 숙면 패키지로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임영현 한국수면산업협회 회장은 “수면은 성인병과 치매 등 인간의 건강에 직결되고 더 나아가 경제활동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단순 휴식 차원으로 인지해선 안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IT 기술과 병합해 시장의 비중이 막대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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