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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아듀 서울극장…내 마음의 영원한 시네마 천국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아듀 서울극장',42년만에 영업종료 선언
코로나 장기화에 극장산업 고사위기

입력 2021-08-24 18:30
신문게재 2021-08-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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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주말 오랜만에 서울극장 로비에 들어섰다. 한국영화의 태동을 42년간 이끌어온 곳이지만 지난 몇 년 간 이곳을 방문한 기억은 손에 꼽는다. 이제는 대세가 된 멀티플렉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기획전이나 이곳에서 열리는 영화제 관련 인터뷰를 위한 방문이 다 였다. 종로3가 역에서 내려 이곳을 걸어오는 동안 주말인데도 한적함에 놀라고 로비에 삼삼오오 몰려있는 관객들이 있어서 더 놀랐다. 아마도 거리의 한산함이 영화관에까지 이어졌다면 더 서운했을 것 같다. 이곳은 서울극장이 아니던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여는 데 큰 몫을 했던 극장이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되면서 “한국 영화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극장은 지난달 홈페이지에 “1979년부터 약 40년 동안 종로의 문화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공지 글을 올렸다. 영화계에 따르면 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는 최근 건물 매각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이 완료된 서울극장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단 극장으로는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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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서울극장.(사진제공=서울극장)

 

이곳은 한국영화를 비롯해 할리우드 대표작들이 사활(?)을 걸고 확보해야 하는 성지였다. 화제작일수록 서울극장에서 언론시사회를 열었고 지금은 사라진 무대인사란 걸 했다. 출연배우들과 감독이 꽃단장을 하고 올라와 벅찬 소감을 밝히는 사이 터지는 플래시는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서울극장이 중심 극장으로 부상한 데는 모태인 합동영화사의 영향력도 한몫 했다. 1978년 9월 17일 스크린 하나로 출발했지만 합동영화사 고(故) 곽정환 회장은 스크린을 11개로 늘려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직접배급에 나서며 부산 대영극장, 대구 중앙시네마 등 지방 유력 극장들을 인수해 전국 배급망을 구축했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부터 다양한 흥행작을 개봉하면서 한국영화 부흥의 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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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개관으로 시작한 서울극장의 모습.(사진제공=서울극장)

 

합동영화사 기획실 출신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은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당시 미스심으로 불리며 마케터로서의 기본을 이곳에서 배웠다”고 추억했다. 이어 “이후 제작자가 돼 개봉을 앞둔 영화가 있으면 좋은 관을 배정해달라고 읍소하기도 했다”면서 “한국영화사의 전통적인 영화관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가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부터 2000년 초까지 서울극장 근처는 연인들과 친구, 영화인들이 몰리는 아지트였다. 그 주의 개봉작을 보러 토요일 오전이면 서울극장(남서쪽)과 피카디리극장(북서쪽), 단성사(북동쪽)가 몰린 트라이앵글에 몰려들었다. 극장 출구마다 암표상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미리 극장의 매진작들을 알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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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말로 영업종료를 선언한 서울극장.비가 오는 주말에도 사람들이 마지막 영화를 보기위해 들어가고 있다.(사진=이철준기자)

 

2001년 ‘엽기적인 그녀’가 최초로 금요일에 개봉하기 전까지 신작 영화는 매주 토요일 극장에 걸리는 게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었기 때문이다. 로비에서 만난 박다율(41)씨는 “당시 조조영화로 ‘친구’를 보기로 약속했는데 종로3가 역에서 내리자마자 암표를 팔던 분이 매진이라고 해서 웃돈 4000원이나 더 주고 표를 샀던 기억이 있다. 속은 건 아닌가 긴가민가하며 올라가 극장 앞에서 3회까지 매진된 것을 확인하니 돈이 아깝지 않더라”며 당시를 추억했다.

같은 영화라도 상영 시간이 미묘하게 다른 탓에 서울극장에 티켓이 없으면 빠르게 피카디리와 단성사로 뛰어가는 것도 진풍경이었다. 01학번 동갑인 채준기·박하영 부부는 영화 ‘집으로’를 보기위해 극장 데이트를 했던 추억을 들려줬다. ‘집으로’는 당시 말 못하는 외할머니와 어린 손자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서사가 입소문이 나며 예매를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흥행작이었다. 아내인 박하영씨는 “둘이 한꺼번에 움직이지말고 따로 극장에 도착해 먼저 사는 회차를 보자고 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2시간이나 먼저 도착해 양쪽을 오가며 영화표를 구해놨더라. 그 듬직함에 반했던 같다”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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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기쁨만큼이나 중요했던 영화관 주전부리들.서울극장 앞에서 장사진을 쳤던 좌판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사진=이철준기자)

 

서울극장은 마지막 인사로 ‘고맙습니다 상영회’를 진행 중이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업 마지막 날인 오는 31일까지 3주 동안 평일 하루 100명, 주말 하루 200명(선착순)까지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다. 한국 텐트폴 영화인 ‘모가디슈’와 ‘인질’ 외에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틸다 스윈턴 주연의 ‘휴먼 보이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폭스 캐처’ 그리고 ‘걸어도 걸어도’ ‘서칭 포 슈가맨’ ‘퐁네프의 연인들’ 등 주옥같은 영화들이 준비돼 있다.

오는 30일 극장에서는 영화인들이 마련한 훈훈한 감사패 전달식도 열린다. 채윤희 영상물등급위원장과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장, 심재명 대표 등이 이끄는 여성영화인모임이 곽 회장의 부인인 서울극장 고은아 회장에게 그간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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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종료를 앞둔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11일 오전 관객이 극장을 둘러보고 있다.(연합)

하지만 장기화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서울극장의 뒷모습은 유독 씁쓸함을 더한다. 대형 멀티플렉스를 포함한 전체 극장 매출은 지난해 5104억원에 그쳤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에 비해 73% 감소한 수치로 2005년 이후 최저치다. 올 상반기(1~6월) 매출도 1863억원에 불과하다. 코로나 확산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32%나 줄어든 것이다.

이는 통합전산망이 가동을 시작한 2004년 이후 최저치다. 멀티플렉스 3사의 사정도 그리 밝지않다는 방증이다. CJ CGV만 적자 폭을 줄였고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 모두 적자 폭이 확대됐다. CGV의 적자 폭 감소도 매출 증가가 아닌 경비 절감 등 운영효율화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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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종료를 앞둔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11일 오전 관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

오는 11월 디즈니플러스 진출이 확정되면서 극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터치 몇번으로 예매가 되고 리모컨으로 지구 반대편의 화제작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최근 극장의 상영전 영화진흥위원회가 벌이고 있는 캠페인에서 정우성은 극장 관람을 독려하기 위해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마음백신을 맞으세요”라고 속삭인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극장 앞에서 벅찬 마음으로 원하던 영화표를 구한 그 기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왜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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