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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금’ 양혜규…망각과 ‘망각의 망각’의 공존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덴마크서 개인전 '이중영혼' 연 양혜규

입력 2022-03-28 18:00
신문게재 2022-03-29 11면

양혜규
양혜규(사진제공=국제갤러리)

 

“덴마크국립미술관에서 양혜규라는 사람이 전시를 할 때 소수민족과의 관계를, 그린란드를 생각하지 않을 없었습니다. 힘의 밸런스가 상당히 치우친, 식민적이고 정치적인 관계요. 그걸 출발점으로 삼았죠.”



덴마크국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이중 영혼’(더블 소울)에 대해 이렇게 전한 양혜규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독일 슈테델슐레 순수미술학부 교수다. 한국은 물론 뉴욕 현대미술관(MoMA),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 영국 테이트 등 전세계의 유수한 기관이며 갤러리들이 열광하는 작가다.  

 

1994년부터 2022년까지의 설치, 조각, 텍스트, 소리 등 50여점이 전시되는 ‘이중 영혼’에는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Innuit) 사람들이 사냥을 위해 쓰는 물개 가죽 장갑을 비주얼 모티프로 삼은 신작 두점도 함께 선보인다.



◇‘양혜규라는 작가’가 덴마크에서 선보이는 ‘이중 영혼’
 

양혜규
덴마크 국립미술관 SMK 양혜규 개인전 ‘이중 영혼’ 포스터(사진제공=국제갤러리)

“전시제목 ‘이중 영혼’은 샤머니스틱한 생각에서 훔쳐왔어요. 한국의 무속 뿐 아니라 극 지방에 사는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의 공동체와 그들의 정신적 삶을 염두에 둔 제목이죠. 이 전시는 지정학적인 것들을 일부러 프레임워크로 가져온 부분이 있어요. 90%가 기존작들이어서 그 위에 어떤 프레임워크를 씌울지 열심히 생각한 결과죠.”


짝을 이루는 신작의 비주얼 모티프로 삼고 출발점이 된 장갑에 대해 양혜규는 “이번 전시 리서치 중 덴마크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북극지방 아트걸렉션에서 처음 접했다”고 전했다.

 

“사냥으로 획득한 물질이에요. 식량이 되거나 기름을 내거나 옷을 만들거나…모든 것이 사냥으로 시작하죠. 카약을 타고 그 사냥에 나설 때 끼는 장갑인데 엄지가 두 개죠. 잘 젖으니 돌려서 낄 수 있게요. 이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나 존재론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장갑이 뻣뻣해 서 있는 걸 보곤 조각적인 느낌을 받았죠.”

더불어 전시 준비과정에서 연구되고 신작들에 영감을 주기도 한 피아 아르케와 소냐 펠로브 만코바의 전시도 병행된다. 양혜규의 설명에 따르면 피아 아르케는 “그린란드에서 본의 반 타의 반으로 덴마크로 이주하는 상황을 마주한 작가”로 “야생상태로 자급자족하던 원래 그린란드 사람들 삶의 방식에서 동떨어져 도시 소비자의 삶의 형태로 식민화하는 근대 잔혹사를 조명하고 있다.”

“이미 이주 상태에서 미술을 한 피아는 작업을 통해 그린란드라는 정체성, 원형, 고향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만났죠. 피아가 각별한 이유는 너무 오래 단절돼 이누이트족의 말을 못해 그의 연구는 덴마크어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스스로를 몽구르엘(동물에 쓰는 말로 잡종이라는 의미)이라고 표현하면서 어쩌면 적의 언어로 모국문화를 공부해야하는 식민상황을 시작점이자 바탕으로 삼은 작가예요. 세계 미술계는 이 작가를 아직 발굴하지 않은 상황이죠.”

소냐 펠로브 만코바는 몸담았던 코브라 그룹에서 남편 아프리카 출신의 어네스트 만코바와 함께 활동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술계에서 주목받았지만 고국 덴마크에서는 다소 늦게 재조명된 작가다.   

 

양혜규
덴마크 국립미술관 ‘이중 영혼’ 전경(사진제공=국제갤러리)

 

“대부분 생애를 파리에서 보냈어요. 파리에서의 삶은 인종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거고 한계를 많이 느꼈을 거예요. 남편 어네스트가 훗날 고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모더니즘의 아머지’로 뒤늦게라도 추앙받으면서 소냐는 붕 떠버렸죠. 피아나 소냐의 생애에서 비주류적이고 소외를 거듭하는 측면을 봤어요. 이들의 행보에서 중요한 건 이들이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작가인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퀄리티(Quality)에요. 후대인 제가 볼 때 놀라울 정도의 순도를 가지고 작업한 사람들이죠.”

이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특히 덴마크와 그린란드 간 식민 역사를 탐구하는 피아는 “건드리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벽지에 이누이트족 유물들을 넣는데도 공격받을까봐 빼자는 의견도 많았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누이트족에게 상처주는 일이라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면 안된다, 반대로 공격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잘라내지도 말자고 생각했죠. 일이 나쁘게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저희로서는 부끄럽지 않은 과정을 충실하게 한 것 같아요. ”

‘이중 영혼’의 신작들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그렇게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이며 인문학적 요소들로 무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갤리러에서 소규모 전시로 첫선을 보였고 올해 베를린 바바라 빈 갤러리, 파리 샹탈 크루젤 갤러리, 각종 비엔날레를 통해 본격 선보일 한지 콜라주 ‘황홀망’이 그렇다.  

 

양혜규
올해 본격적으로 선보일 ‘황홀망’

“한국 무속의 ‘설위설경’을 원본 삼아 한지를 이용한 종이무구 만드는 부분을 공예적 차원으로 접근한 작업이에요. 원본 자체가 인류학적 구석을 가지고 있어 그에 대한 윤리적 책임 같은 것도 담고 있죠. 종이에 매료된 건 다른 재료보다 겸손하기 때문이에요. 대부분 종이로 만든 무구는 사용 후 태워버렸어요. 지물질적이고 물질적이라도 미약하죠. 미약한 데 정신적인 걸 얹는 게 어렵고 그 행위에 담긴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미약한데 너무 강하기도 하죠. 작가로서의 작업과 닮았다 싶기도 했어요.”



◇양혜규, 여행자가 되다! 망각의 망각

“한국이 후발국가였을 때 외국작가들이 와서 전시하는 걸 보고 어린 작가로서 되게 불만이 많았어요. ‘깃발을 꽂으러 온다’고 하잖아요. 힘의 구조를 바탕으로 한 식민성에 반항심, 자괴감 등이 들었어요. ‘나는 저렇게 안될 거야’라고 다짐하기도 했죠. 이제는 저 역시 어떤 나라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에 대한 경각심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제 진정성을 확인받으려 노력하죠.”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성큰홀에서 진행한 스테이징 프로젝트 ‘죽음에 이르는 병’이 그 예다. 유카탄 지역의 석회암과 지하수가 만들어낸 수만개의 성큰홀 중 하나에서 20명을 모아두고 자정에 진행한 연극 프로젝트다. 정글 한복판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자라난 맹그로브 사이로 별빛이 보이고 지하수가 흐르는 곳에 뗏목을 띄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동명 소설을 극화해 선보인 게릴라성 작업이다.

“제가 뗏목을 묶고 크기와 색이 다른 손전등을 끄고 켜면서 조명까지 책임진 프로젝트죠. 멕시코에서 열리는 큰 전시를 열기로 하면서 주최측에 특별히 부탁해 진행한 프로젝트예요. 그렇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1년 뒤에 공식 전시를 하겠다고 했죠. 광활하고 자연적·문화적으로 풍부한 나라, 멕시코에 대한 존경심을 보이고 싶었어요. 깃발을 꽂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양혜규
양혜규(사진제공=국제갤러리)

 

이는 2006년 자신의 외할머니가 살던 폐가에 꾸렸던 ‘사동 30번지’와 비슷한 맥락의 전시다. 이는 공간과 하나 되기에 애쓰는 작가 양혜규의 도전이기도 하다. ‘이중 영혼’의 전시장 벽에 입체적으로 표현된 손가락도 그 도전의 일환이다.

“저는 ‘요소’라고 부르는데 전시 방문하는 사람만 발견하는 것들이에요. 사실 방문해도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10%만 볼 수 있는 디테일을 숨겨놓는 거죠. ‘사동 30번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들긴 했지만 찾아온 사람들의 몫이 더 컸던 전시죠. 전시를 보러 가겠다는 결정부터 전시의 일부였어요. 미술관도, 갤러리도 아니고 초대받아하는 전시도 아니었으니까요. 어떤 경로로든 이 전시를 알게 되고 가보겠다는 자체가 전시 경험의 일부인 셈이죠. 거기 가서 무엇을 봤냐 보다 전시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거든요. 이런 작업을 해외에서 많이 하고 싶어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가 양혜규
 

양혜규
양혜규(사진제공=국제갤러리)

그 스스로의 표현처럼 “이제는 제가 결정하고 콘트롤할 수 있게 됐으니 주어지는 상황보다 제가 하는 결정과 만드는 상황이 되게 중요해졌다. 작가에 대한 리스펙트, 전시 조건 등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 요구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저기서 전시 해보고 싶다’는 오래전 꿈같은 느낌은 사라졌고 실제로 그 (꿈꾸던) 미술관에서의 전시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 양혜규는 제가 봐도 많이 변하고 지금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서 항상 조심스러워요. 저를 정의하는 데 ‘지금은’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하죠. 작품세계, 작품을 대하는 태도, 작업과정 등도 많이 변했고 심지어는 ‘변해야한다’는 생각도 있어요. 변할 여지를 일부러 만들기도 하죠. 일부러라도 변화를 해야하거든요. 의식화해서 판단을 잘해야 하고 어려운 상황을 저한테 주는 것도 진짜로 필요하죠.”

그렇게 변화 여지를 만들어내는 데도, 잊을 만도 한 자리에서도 어린 작가시절의 다짐을 망각하지 않은 데는 “여행이 되게 중요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고 내가 모르는 건 또 얼마나 많은지, 어디를 가나 미술에 진심인 사람들도, 훌륭한 사람들도 끓어 넘치는 걸 느껴요. ‘감히 내가?’ ‘네가 어찌 함부로’라는 생각들이 들죠. 그런 느낌과 생각들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한곳에 있지 않고 여행을 다니면서 그 유지가 수월해진 것 같아요.”

그렇게 그 스스로가 “지금은”이라는 전제를 달아 정의한 “양혜규라는 사람”은 늘 변화하면서도 망각을 망각하기 위해 ‘여행자’의 삶을 선택한 “운이 지나치게 좋은” 작가다. ‘여행자’답게 그의 상반기는 ‘이중 영혼’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작품전 ‘열망 멜랑콜리 적색’ 중 ‘종잡을 수 없는 침묵’, 오스카 슐레머의 전설작 ‘삼부작 발레’를 재해석한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의 3인전 ‘슐레머에 동動하다-100년 만의 삼부작 발레’, 유럽 각지에서 선보일 ‘황홀망’ 등 전세계를 넘나드는 전시들로 꽉 들어차 있다.

“제 인생의 모토가 ‘후회하지 말자’예요. 하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해버리거든요. 그때그때 충실하게요. 일은 제 시간에 끝내고 파티를 할 때는 밤새 놀고. 야근, 특근 없이도 다 돼요. 그리고 필 받아 놀 때는 ‘렛잇고’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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