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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스케이프] 개관 10년 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 “세상을 품을 외양간을 꿈꿉니다!”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병광 유니온약품 그룹 회장②

입력 2022-04-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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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요즘 제가 걱정하는 게 하나 있어요. 최근에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미술광풍이요. 우리 시대는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고, 여유가 생기면 작은 빌딩을 샀어요. 나이 들어서의 보험을 들어가면서 살았죠. 하지만 지금은 너무 비싸서 집을 살 수가 없어요. 자동차도 못 사요. 미래에 대한 소망이나 비전이 없는 그들의 현실이 가상화폐, 그림 구매, NFT 등으로 이어졌죠. 일확천금을 노리게 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작품 수집가로 40여년, 석파정 서울미술관 운영 10년을 맞은 안병광 유니온약품 그룹 회장은 최근 미술시장에 불어닥친 광풍에 스민 현실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림은 ‘바람’에 휩쓸려서가 아니라 정말 내 마음에 와 닿는 걸 사야해요. 저도 그림을 사면서 왜 재화를 생각 안했겠어요. 그림에 대한 투자는 스스로 인정할 수 있고 가지고 싶어하고 인정하는 것을 쫓아가면서 봐야 해요. 그림 안에는 작가의 인생이 녹아 있거든요.”  

 

김상유 작가 작품 중 다수를 소장하고 있는 안 회장은 “얼핏 보면 애들이 장난을 친 듯도 하고 초등학교 3, 4학년이 그린 것 같기도 하다. 그 안에는 작가가 지닌 순수함과 단순함이 고스란히 배어난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그 양반 인생을 돈 10억에 샀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나이든 사람의 때묻지 않은 그림이 너무 좋아요. 아직 세상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세간에서 어떻게 보든 저에겐 높이 평가받을 만한 작품들이죠. 너무 단순하고 순수해서 제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 같거든요.”



◇삶이 녹아 있는 그림은 아날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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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떠올리며 소장하게 된 박수근의 ‘젖 먹이는 아내’ 스케치와 안병광 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제 생각에 그림은 디지털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그림을 제일 잘, 정확하게 그리는 건 AI(인공지능)일 거예요. 기술적으로만 보면 그렇지만 거기엔 영혼도, 삶도 없죠. 하지만 작가들은 세월에 따라 달라져요. 젊어서는 기술적으로도 뛰어나지만 나이가 들면 점 하나를 찍어도 깊이가 생기고 인생이 녹아들죠.”

이렇게 전한 안병광 회장은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나이가 들면 손이 떨린다. 손끝이 떨리면 물감이 떨어지게 되는데…그 자체도 예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런 예술을 원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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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사진=이철준 기자)

“그래서 그림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예요. 그 사람이 살아온 길, 인격, 기쁨, 슬픔, 애환 등 그의 모든 것들이 녹아드는 작품이 명화로 인정받고 오래오래 남는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눈은 정말 놀라워요. 그렇게 녹아든 것들이 작품 속에 살아 있음을, 그것들이 품은 감성과 생명력을 사람의 눈이 알아보고 느끼거든요.” 

 

그리곤 ‘황소’로 유명한 이중섭과 전세계적인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故김창열 작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이중섭 선생님은 일본 유학을 갈 정도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6.25 전쟁이 터져 남쪽으로 피난을 오면서 가난해졌고 일본인 아내와 생후 1년도 안돼 세상을 떠난 큰 아들까지 세 아들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었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환경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어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놓고 안타까워한 사연이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 처절함 속에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 한점한점에 그 사람의 절절한 인생이 스몄기 때문이죠. 김창열 선생님은 물방울 하나로 세계를 재패했어요. 엄밀히 따지면 김창열 선생님보다 물방울을 더 잘 그리는 작가는 많아요. 그럼에도 김창열 선생님의 물방울이 대접받는 이유는 그 분야를 개척해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 분의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죠.”


안 회장은 최근 각광받는 NFT, 분할투자 등에서 “지금부터 56년 전, 11살 때 NFT를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고 털어놓았다.

“한 마을에 살던 6명의 또래가 돈을 을러서(여럿이 모여 한 덩어리나 한판이 되도록 하다) 고무 축구공을 하나 샀어요. 최근 NFT로 그림에 100만원을 투자했는데 가격이 50% 넘게 떨어졌다고 울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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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광 회장이 1991년 처음 소장했던 작품은 500만원짜리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이었다(사진=이철준 기자)

 

그는 “50원이던가, 100원씩인가를 내 산 공을 하루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소유했다. 여러 날이 지나 공이 해지고 바람이 빠져버리니 한 아이가 6명이 똑같이 잘라서 나눠 갖자고 제안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우개로라도 쓰자고. 누구 한명도 반대 없이 동의를 해버렸고 공기를 불어넣는, 찰고무로 된 부분을 누가 갖는지 결정하는 방식을 토론하기도 했죠. 하지만 나누고 나니 아무 쓸모없는 고무 조각이 돼버렸어요. 본질을 잃어버린, 가치 없는 축구공이 된 거죠. 기술, 디지털 등은 미술계 발전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칫 우리 근간 자체를 흔드는 게 아닌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혼을 담아 그림을 그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의문이 들어요.”


◇문화와 역사의 힘 다질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외양간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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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최고의 땅부자였지만 일제강점기에 문화재가 반출되는 걸 막기 위해 사재를 털어 사들인 간송 전형필 회장님, 이병철 창업주를 이은 이건희 회장님 등이 있어 우리나라에 문화가 존재할 수 있었어요. 문화가 존재한다는 건 역사가 존재한다는 의미죠. 문화가 없으면 역사도 없어요. 문화와 역사는 같이 흘러가는, 떼려야 뗄 수 존재들이죠.”


이어 안병광 회장은 “문화 잘 지키면 역사를 지키는 것이고 그렇게 지켜진 역사는 나라를 지킨다”며 “우리 문화와 역사, 나라가 도도히 흐를 수 있도록 지켜내 후손들에게 넘겨줘야 한다. 그 시작이 문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문화와 역사의 힘을 강조했다. 

 

2012년 문을 연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1991년 안 회장이 제일 처음 소장한 이중섭의 500만원짜리 은박지 그림을 비롯해 35억원을 훌쩍 넘기는 ‘황소’(1953) 등을 보관하기 위한 ‘이중섭의 집’ 그리고 ‘외양간’으로 시작했다.

“소 한 마리지만 얼마나 처절해요. 그림을 보면 느껴지잖아요. 삶과 싸우고 있는 엄청난 처절함이요. 아내도 곁에 없고, 아이들도 없고, 죽고 나서 거들떠 봐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렇게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이중섭의 집’, ‘황소’가 사는 ‘외양간’으로 시작했죠. 하지만 외양간에 소만 살지는 않아요. 어떤 때는 말도 들어오고 조랑말도, 쥐도 들어와 살고 온갖 새들도 날아들죠. 그런 외양관처럼 서울미술관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중섭 뿐 아니라 김환기, 박수근, 한묵 등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그들을 보기 위해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외양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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