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조용한 희망’.(사진제공=넷플릭스) |
[편집자 주] #OTT는 대세로 자리잡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화제작이나 숨겨진 명작들을 문화부 기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3살 딸을 키우는 엄마는 집을 나와 노숙도 불사한다. 결코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연민과 위협적인 말투를 적절히 사용해 자신을 얽매온 남편이야말로 자신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기에. (사진제공=넷플릭스) |
마거릿 퀄리는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낮지만 당당한 싱글맘으로서의 모습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 낸다. 극 중 엄마로 나오는 앤디 맥도웰의 친딸이기도 하다.(사진제공=넷플릭스) |
알렉스는 자애롭지 않았던 엄마와 기억에 없는 아빠로 인해 힘들었던 유년시절을 딸에게 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집도 아닌 컨테이너에서 학업도 포기한 채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모습만 바라는 시선에 갇혀있었다.
막상 나온 현실의 세계는 쉽지 않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보채고 모아놓은 돈도 없다. 신원보증이 되지 않으면 일을 할 수도 없다. 복지라는 미명 아래 운영되는 국가 시스템은 정작 필요한 사람이 갖추지 못할 서류만 요구한다.
결국 알렉스는 청소자리에 겨우 취직한다. 버티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일자리로 죽은 사람의 집이나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 혹은 강제 퇴거의 흔적을 지워야 하는 고된 일이다. 게다가 일도 하기 전에 다이슨 청소기의 보증금과 사용하는 세제, 교통비와 세금 등이 기본적으로 제한 주급이 주어진다.
‘조용한 희망’은 알렉스가 고군분투하는 화면 위로 깎이는 돈의 액수를 짖굿게 교차시킨다. 누군가는 쉽게 사는 생필품이 극빈자에게는 무섭게 사라지는 필수품인 것이다. 하루 일당에서 깎이는 돈과 함께 울려 퍼지는 동전의 효과음은 10부작인 이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어떤 절망에도 딸을 지키는 모성애 충만한 여자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엄마도 성적인 욕구가 있고 상황에 따라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는 다양한 여성들이 나온다. 알렉스에게 진상 중의 진상이었던 고급 별장에 사는 레지나는 임신할 수 없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다. 결국 남편의 정자와 또 다른 여성의 난자를 채취해 대리모에게 이식해서라도 엄마가 되려고 한다. 그는 “아이를 만드는 데 세 사람이나 필요한데 그것도 모두 내 돈”이라고 한탄한다.
결국 곧 태어날 아이가 있음에도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졸지에 자신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들을 키우게 된다. 예민한 성격 탓에 메이드의 임금을 착취하고 무시했던 그는 젊지만 베테랑 엄마인 알렉스를 통해 겨우 안정을 찾는다. 극과 극을 달렸던 여성들의 연대는 ‘조용한 희망’이 품고 있는 주제다.
실제로 일흔을 바라보는 앤디 맥도웰은 철없는 할머니의 극치를 보여준다. 남자에게 종속된 삶을 즐기는 여성인 동시에 자유로운 영혼의 엄마로 알렉스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사진제공=넷플릭스) |
신체적인 위협은 없지만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드는 남자와 아예 대놓고 학대하는 남자, 잘난 여자를 무시하는 돈 많은 남자, 아이만을 요구하는 남자 등은 그저 거들 뿐. 각자의 상황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돕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은 과하지 않고 꽤 현실적이다.
부유한 레지나는 결국 알렉스의 상황을 알고나서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합법적인 이혼을 돕는다. 여성 쉼터의 보호자 역시 세상 어딘가에 숨어 사는 사람들에게 벅찬 포옹 대신 조용한 손길을 내민다.
그들에게는 환대조차 또 다른 의심과 공토, 수치심인 걸 그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겪었기 때문이다.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결속으로 이어진다. 세상물정모르는 ‘금사빠’인 탓에 항상 걱정을 안겼던 엄마마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녀 사이는 더욱 단단해진다.
청소하며 엿본 주인들의 취향과 다양한 인간군상은 알렉스의 노트에 깨알같이 적히고 결국 그는 멈췄던 학업을 이어간다. 그의 에세이를 읽은 대학교에서 재입학을 허가한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지만 억지로 견뎠던 시간들이 기본적인 소득을 증명해 줬고 그 덕분에 준비된 서류들이 복지혜택을 가져다 준다. 작품의 말미 친권을 포기하겠다는 남편은 스스로 선 알렉스에게 “뭔가 빛나 보인다”고 말한다. 그것은 스스로 서려는 사람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무언의 자신감이였으리라.
사실 각 에피소드마다 너무 절망적인 일들이 반복되는 바람에 제목을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로 지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순간도 여러 번 이다. 그만큼 불편하고 적나라한 이야기가 ‘있을 법 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조용한 희망’은 한 인간을 낳고 키운다는 점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분 없이, 책임감에 대해 그 어떤 작품보다 확실한 정신교육을 시킨다. 가정폭력을 ‘때리는 것’만으로 알고 있는 수많은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이 봐야할 수작이니 그 불편함쯤은 눈감아줄 만하다. 당신은 충분히 빛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오픈 2021년 10월 1일. 채널 넷플릭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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