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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스케이프]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우주 ‘음악’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들, 새끼손가락, 지휘 그리고 라두 루푸

입력 2022-05-0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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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제가 원하는 곡들로 프로그램을 꾸리기도 하지만 가끔 곡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어요. 평소 음악을 많이 듣지만 ‘어! 이거 좋다. 언제 칠 기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평생 치지 말아야 겠다’ 싶은 곡들도 있어요. 어떤 곡들은 ‘당장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요. 그렇게 곡들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죠.”



평소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는 것으로 알려진 김선욱의 프로그램 선곡 과정은 “곡이 말이 걸어오는 경험”의 순간들이다. 지난달 말 오스모 벤스케(Osmo Vanska)가 이끄는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의 데뷔 무대를 마치고 독일 뮌헨 자택에 머물고 있는 김선욱은 한국에서의 피아노 리사이틀(5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5월 18일 마포아트센터, 19일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이 리사이틀에서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네개의 즉흥곡, D. 899’(Schubert Four Impromptus D. 899), 이삭 알베니즈(Isacc Albeniz)의 ‘이베리아’ 모음곡 2권(Albeniz ‘Iberia’ : Book II),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피아노 소나타 b 단조, S. 178’(Liszt Piano Sonata in b minor, S. 178)을 연주할 김선욱은 “피아니스트가 모든 곡을 다 이해하고 잘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각자의 손 모양이 다르듯 저마다에게 잘 맞는 곡과 맞지 않는 곡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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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사진제공=빈체로)

 

그리곤 “예를 들어 새끼손가락이 짧은 게 제 콤플렉스”라며 “어떤 곡들은 새끼손가락이 1cm만 길면 좋겠다고 간절히 원하면서 연주할 때도 있다. 그런 곡들은 좀 힘들다”고 귀띔했다.

“어려서부터 트라우마인 게 에튜드(Etude), 연습곡이에요. 연습곡들을 연주할 때 마음대로 안되는 적이 너무 많았거든요. 에튜드가 있는 국제콩쿠르는 어김없이 떨어졌어요. 실수가 잦았죠. 그리고 기교를 우선으로 보여주는 곡들은 연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에요. 적성에 맞지 않는달까요. 손가락이 얼마나 멋지게, 빠르게 돌아가는지에 집중하기 보다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지휘만 할 수 있는 무대, 그 꿈을 이룰 2022년 여름!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지휘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어요. 피아노와 지휘를 대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시간 분배를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로 너무 일찍 정글에 뛰어들다 보니 지휘를 할 기회와 시간을 놓쳐버렸죠.”

그렇게 다소 늦었지만 김선욱은 지난해 KBS교향악단,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인 본머스 심포니와 한국·유럽 무대에서 지휘자 신고식을 마쳤다.

“그 동안은 피아니스트로서 처음 연주해야할 곡도 너무 많았고 다음 연주를 위해 또 새로 배워야 하는 ‘쳇바퀴’에 여유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여유가 생겨서 지휘를 시작한 건 아니에요. 하루를 더 쪼개 쓰면서 하다 보니 지금은 더 여유가 없어졌죠. 그리고 지금은 새로 배워야하는 곡들보다 연주해온 곡들을 성숙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기예요.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 보다 생각을 하는 시간이 더 많은 때죠. 지휘해야하는 악보 공부를 처음 피아노를 시작할 때처럼 하려니 시간도, 여유도 없어요.”

2008년부터 전속계약한 그의 유럽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의 지휘자 로스터에도 이름을 올리고 활동을 시작한 김선욱은 “현재 일적으로는 피아노와 지휘가 95 대 5 정도다. 피아니스트로는 14년을 넘게 활동했지만 지휘는 이제 막 시작해 알리는 단계”라며 “제가 지휘를 시작했다 알린다고 바로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어서 끊임없이 공부 중”이라고 밝혔다.

“7월에는 부산시립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8월에는 (롯데문화재단의)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지휘를 할 예정이에요. 지난해 10월 데뷔한 본머스 심포니의 지휘는 내후년까지 기회가 주어졌고 스페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계획도 잡혀 있죠. 기회를 잡는 자체가 어려우니 기회를 한번 잡았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해요. 지금까지는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했지만 앞으로는 지휘만 하는 기회가 늘길 바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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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지난해 KBS 교향악단과의 협연에서 지휘자 신고식을 치렀다(사진제공=빈체로)

 

그 신호탄은 7월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와 8월의 클래식 레볼루션이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지휘를 하는 건 어쩌면 본업인 피아노 연주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휘만 하면 좀더 배울 게 많아진다”며 “피아노 연주와 지휘가 확실히 분리되도록 노력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빈틈이 없던 김선욱의 하루는 피아노 연습과 지휘공부까지 병행하면서 그 스스로의 표현처럼 “숨막힐 듯” 돌아간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 동시에 무대에 오르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힘들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고 있어요. 두개 업을 동시에 해야하다보니 두배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죠. 기상하자마자 30분 가량 운동을 하고 3시간 동안 피아노 연습을 해요. 점심 식사 후에는 여러 연주들을 보고 오후 4시부터는 악보를 보며 지휘 공부를 하죠. 지휘 공부는 악보를 들이파는 수밖에 없어요. 오케스트라 악보를 두세 시간 정보 보면 저녁식사 시간이에요. 그 후에는 라이브 연주회를 실시간으로, 녹화중계로 보고 오페라도 보고…하루가 너무 짧아요. 너무 금방 지나가버리죠.”



◇작은 우주 피아노, 큰 우주 지휘 그리고 김선욱의 우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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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피아노만 치다 보면 그렇게 미치도록 좋아하는 음악을 반밖에 못 아는 느낌이에요. 지휘자는 곡을 직접 만들 기회가 생기기도 하니 좋아하는 음악을 다양하게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워요.”

김선욱은 피아노를 ‘작은 우주’, 지휘를 ‘큰 우주’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는 “피아노는 다른 악기에 비해 많은 음역대를 다루고 있어서 오케스트라 곡을 피아노곡으로 바꿔 연주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며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보면 피아노에서 확장된 음역대를 가졌다고들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어려서부터 피아노곡도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상상하면서 연주하곤 했어요. 더불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는 열 손가락으로 보이싱(Voicing), 소리의 균형 맞추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모든 음이 똑같다면 화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거든요. 화성이 조화롭게 들리려면 보이싱은 필수죠. 그렇게 피아노를 연주할 때 보이싱했던 경험들을 오케스트라 지휘에 적용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피아노와 지휘는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김선욱은 피아노라는 작은 우주, 지휘라는 큰 우주로 구성된 자신의 우주는 “음악 자체”라고 했다. 그는 “알려고 하지만 도통 할 수 없는 우주처럼 음악 자체를 모르겠다. 파고 들면 들수록 모르는 게 음악”이라고 부연했다.

“우주 저 너머 세계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음악도 그래요. 궁극적으로 제가 추구하는, 음악이 가진 놀라운 마력을 파고는 것. 그 자체가 저를, 제 인생을 다 바치는 목표죠. 음악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래서 인생에서 원하거나 가지고 싶은 게 이제는 없어요. 음악을 듣고 즐기고 연주까지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자체로도 이번 생에서는 큰 아쉬움이 없어요. 다만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이 알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까봐, 제가 게을러질까봐 무서워요. 그래서 꾸역꾸역 제 온 시간을 들이고 있죠.”


◇페이지터너를 향한 박수갈채 그리고 그 부재가 마음 아린 라두 루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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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3일에 걸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사이클을 마무리하던 날 김선욱은 페이지터너에게 꽃다발을 안겨 감동을 자아냈다(사진제공=빈체로)

 

“실내악을 할 때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피아니스트에게 페이지터너(연주자의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가 중요해요. 음악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죠. 그 연주의 성공여부가 페이지터너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지난해 9월 김선욱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3일에 걸쳐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바이올린 소나타’(Violin Sonata) 전곡 사이클을 마무리하던 마지막 날 페이지터너에게 고마움의 꽃다발을 안겨 감동의 박수를 자아냈다. 반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 여운이 남아 있는 사건(?)에 그 이유가 궁금해져 당시의 마음을 물었다. 


“박수를 받는 사람들은 연주자들이죠. 페이지터너는 조용히 퇴장하거나 피아노 뒤에 서 있어요. 하지만 베토벤 소타나 10곡의 악보를 3일에 걸쳐 넘겨주셨어요. 연주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인데 잊혀지는 존재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연주자들이라도 페이지터너한테 박수를 쳐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저 역시 학생시절 페이지터너로 무대에 많이 서곤 했다. (피아노) 전공생들에게 페이지터너를 추천하는 이유는 음악 흐름 읽기 등 굉장히 큰 공부가 되기 때문”이라며 “그분들의 마음고생이 심하다. 악보를 두장 넘기거나 떨어뜨리거나 넘기지 못했을 때의 악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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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김선욱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피아노 거장 라두 루푸(Radu Lupu)에 대한 가슴 아린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저도 그 사람의 연주를 듣고 너무 많은 영향을 받은, 전세계 수많은 사람 중 한명”이라며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연주를 했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다시는 그런 연주를 실황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슬펐어요. 누구나 그런 존재가 있잖아요. 내가 숨 쉬는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존재요. 은퇴를 하실 때도 슬펐지만 그런 존재가 내가 살고 있는 지구에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려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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