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B그라운드]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생소한 음악가 발굴과 탐구, 오래도록 연주하고 싶어요!”

입력 2023-06-19 19:00

첫 내한 공연 앞둔 랜들 구스비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국 기자들을 만난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연합)

 

“한국은 저와 깊은 관계가 있는, 저를 존재하게 해준 나라예요. 그 의미가 각별한 나라에서의 공연이라 굉장히 중요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19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난 한국계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Randall Goosby)는 첫 내한공연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제일교포 3세인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그 의미가 각별한 나라”라고 표현했다.

“어머니가 안계셨더라면 전 태어나지 않았을 거고 바이올린도 안했을 거예요. 지금 이 자리에도 존재하지 않았겠죠. 어머니의 헌신으로 현재의 기회들을 만들 수 있었어요. (어머니의 헌신에)가치 있게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이런 생각이 압박이라기 보다는 큰 가치이자 음악을 하는 원동력이죠.” 

 

랜들 구스비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첫 리사이틀을 준비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사진제공=빈체로)

그는 2020년 클래식 명가 데카(DECCA)와 전속계약을 맺고 데뷔앨범 ‘루츠’(Roots), 그래미 수상자 야닉 네제 세갱(Yannick Nezet-Seguin)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주한 ‘브루흐·프라이스’(Max Bruch·Florence Price)를 연달아 발매하며 주목받고 있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다.

이번 리사이틀(6월 22일 롯데콘서트홀, 20일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에서 랜들 구스비는 피아니스트 주왕과 함께 릴리 불랑제(Lili Boulanger)의 ‘두 개의 소품’(Deux Morceaux),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Violin Sonata No. 2in G Major), 윌리엄 그랜트 스틸(William Grant Still)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Suite for Violin and Piano) 그리고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A장조 Op. 97 크로이처’(Beethoven Violin Sonata No. 9 in A Major, Op. 47 ‘Kreutzer’)를 연주한다.

이 프로그램들에 대해 랜드 구스비는 “프로그래밍을 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제가 연주하고 싶은 곡들”이라며 “이번 내한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통해 작곡가들 사이의 연결고리와 서로 주고받은 영향에 초점을 두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라벨 소나타의 2악장은 ‘블루스’예요. 라벨 스스로 미국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미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죠. 이때 경험했던 음악 중 블루스를 본인 음악에 삽입했고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본래 카리브해 출신의 아프리카계 바이올리니스트인 조지 브리지타워에게 헌정한 작품입니다.

 

이어 랜들 구스비는 그는 굉장히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고 베토벤과도 상당히 친한 관계로 그에게서 영향도 많이 받았다”며 하지만 어떤 이유로 관계가 틀어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헌정됐다”고 덧붙였다. 

 

굉장히 아쉬운 마음으로 저와 제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주왕은 이 곡을 ‘브리지워터 소나타’라고 부르고 있어요. 이 같은 연결지점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Randall Goosby 6 credit Kaupo Kikkas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첫 리사이틀을 준비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사진제공=빈체로)

 

그는 지난 1월부터 삼성문화재단에서 후원받은 1708년 제작된 엑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고 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전성기는 1700년대 초반으로 (제가 후원받은 엑스 스트라디바이루스는 그 시기의 것으로) 현재 제일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전에 연주했던 과르네리 델 제수는 어두운 소리를 갖고 있는 반면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소리가 밝고 화사하면서도 풍성하고 초콜릿같은 다크한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현의 장력이 세고 팽팽해서 직선으로 꽂히는 날카로운 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삼성문화재단의 인가를 받은 뉴욕의 악기숍에서 브릿지를 낮은 것으로 교체하고 사운드 포스트도 바꿨어요. 세팅을 바꾸면서 좀 더 자유로운 소리를 낼 수 있게 됐고 저는 여전히 적응 중이죠.”

그는 “이 악기에 ‘타이거’라는 닉네임을 붙였다”며 “골프를 좋아해 타이거 우즈에서 따온 애칭”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골프를 너무 좋아해서 제 골프채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며 “시간이 나면 스크린 골프라도 칠 예정”이라고 눙쳤다. 

 

“골프와 바이올린 연주는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데서 유사하죠. 필드나 무대에서 예상할 수도, 콘트롤할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하곤 해요. 그날의 날씨나 온도, 관객들의 태도, 내가 지금 느끼는 정서와 기분 등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완벽하게 하고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는 지난날을 제거하고 현재에 집중해야 해요. 현실 세계, 삶의 문제로부터 벗어나 지금 상황에만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해야한다는 데서 골프와 바이올린 연주는 닮았죠. 연습을 하지 않아도 연습을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Randall Goosby 2 credit Kaupo Kikkas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첫 리사이틀을 준비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사진제공=빈체로)

그는 데카 데뷔앨범 ‘루츠’에 대해 “팬데믹 기간 동안 녹음해 2021년 기적처럼 발매된 앨범”이라며 “제 자신의 일부를 음반에 투영해 음악으로 전달하는, 개인적이고 사적 경험을 담은 프로젝트였다. 흑인 작곡가 음악을 공유하고 조명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클래식 틀에서 벗어난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7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14살이 될 때까지 아프로 아메리칸 작곡가의 작품을 한번도 접하지 못했어요. 팬데믹 기간 동안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이 펼쳐지면서 미국사회 내에 인종주의에 대한 각성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죠. 클래식 음악계 역시 아프로 아메리칸 음악가들이 소외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원래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아프로 아메리칸 음악가와 작품을 발굴해 기존 클래식 음악계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를 조명하는 프로젝트였죠.”

그의 뿌리찾기는 두 번째 앨범 ‘브루흐·프라이스’에도 반영됐다. 그는 “저는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고 조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아무도 그들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아무도 모르는 이유는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클래식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팬데믹이 끝나고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소수, 약자,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경험을 다시 주시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요. 인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 일본, 한국 등 다양한 나라의 생소한 작곡가 음악에 계속 관심을 가질 예정입니다. 연주자로서는 오래도록 연주하고 싶어요. 저는 연주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더불어 클래식 음악의 지평을 넓히고 싶어요. 미국의 경우 클래식 음악은 나이 든 부유한 분들의 전유물과도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자라온 환경, 나이 등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통해 환영받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바이올리스트로서 되고 싶은 최고의 모습이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