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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골든티켓 목매는 한국, 골든타임 놓치면 사멸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김현성 '자살하는 대한민국'

입력 2024-06-01 07:00
신문게재 2024-05-3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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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승민 기자)

우리가 선택한 ‘합계출산율 0.72명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이 빠르게 ‘사멸(死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천천히 가난해지는 삶’이 우리의 가까운 미래라고 꼬집는다. 특히 이런 현실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왔으며, 지금도 우리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말기 암 환자처럼 아무 것도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죽음으로 치닫는 대한민국에 ‘역전’이 가능할 지를 따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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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대한민국|김현성|사이드웨이

◇ 공공을 위해 지출한 ‘돈’이 부족한 한국인들


저자는 한국이 죽어가는 원인이 ‘국민들이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자기 생활수준 유지가 어려운 게 아니라 공동체 유지에 자기 지갑을 열 돈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물가까지 비싸니 공동체를 위한 지출에 인색할 수 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낮은 사회간접자본 비용과 낮은 에너지 및 서비스 물가도 한 몫 한다. 반면에 생필품 가격은 너무 비싸다.



저자는 “낮은 사회간접자본 및 에너지 물가로 높은 식료품 물가를 지탱케 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필연적으로 공공부분 적자가 누적될 수 밖에 없고, 이를 효율화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절대적으로 높은 사교육비도 문제다. 특히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과하다. 이런 구조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니, 조금만 손을 보려해도 강력한 심리적 저항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 서울 수도권 독식의 후유증

서울과 수도권은 ‘한국의 모든 것’이다. 전체 국민의 절반이 사는데, 70%가 넘는 이주 희망자까지 더해지면 심각성이 더 크다. 돈과 좋은 일자리도 독식하고 있다. 심지어 제조업도 수도권 독식이 강고하다. 전체 제조업 부가가치의 65%를 담당하는 반도체, 2차 전지,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10대 산업에서 수도권이 총 27%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반도체는 수도권 생산 점유율이 80%에 이른다.

서울·수도권 집중이 사실상 한국 공동체의 물리적 소멸에 거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 와중에 메가시티와 행정수도 구상은 사실상 좌절되었다. 그나마 충청권 메가시티가 유일하다. “비수도권에 남은 것은 관광 밖에 없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작정 ‘지방분권’만 외치다 소프트웨어 파워마저 빼앗긴 꼴이다. 저자는 생산성 높은 수출 대기업이 지역에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모두가 가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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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주요 45개국 중 32위에 그친다. 하지만 제조업만 떼어보면 세계적인 수준이다. 문제는 우리 고용 구조가 서비스업 위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비스업은 금융 등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해당 산업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니 임금이 낮고 이는 다시 낮은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지적재산권 수출이 활발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저 부가가치 운송업에 서비스 수출을 의존한다. 좁은 내수시장의 태생적 한계 탓에 내부 경쟁은 격화되고, 자영업 비중까지 높아 낮은 생산성이 지속된다. 도소매 및 숙박음식업, 보건 및 사회복지업, 교육서비스업의 3대 주축 업종이 모두 영세하다. 생산성을 높일 기반이 없으니 아무리 해도 계속 가난하다.

저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갑을 열어야 사회안전망 확충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거의 유일한 집단은, 수도권에 살면서 좋은 교육을 받고 높은 생산성을 지닌 수출 대기업 종사자들이라고 말한다.

 


◇ 노인들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왜 우리 노인들은 빈곤할까.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정도의 자산축적을 이루지 못한 채로 일터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노인빈곤율 40%가 넘는 이유도 주택 자산에 비해 금융자산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청년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비가 필요함에도 유일한 자산인 주택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니, 그 구조 안에서 그대로 늙어갈 수 밖에 없다.

우리 노인들은 평균 73세까지 근로하길 원한다. 연금을 통한 소득 대체는 언감생심이다. 생명보험사들이 연금보험보다 종신보험을 주력으로 하는 것도 미래에 잠재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저자는 “한국에선 노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필수인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이라는 3층 연금제도가 심각하게 미비하고, 당분간 개선도 쉽지 않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국민연금은 절대 고갈되지 않으며, 국민연금 적립금도 전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나아가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퍼주고 나중에 받을 돈이 없다는 주장은 사기이자 정치적 선동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정치적 주장들이 3층 연금을 통한 합리적인 노후 보장에 신경쓰기보다 가상화폐 같은 고위험 자산을 선택케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일갈한다.



◇ 한국에서 가장 비싼 결정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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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혼인건수와 출생아 수의 상관관계는 0.938에 이른다. 저출산이 곧 혼인 감소다. 출산을 미래의 경제적 이득을 축소시키는 선택지라고 믿기에 결혼을 않는다. ‘소득’이 있어도 축적된 ‘자산’이 없으면 결혼이 불가능하다. 그릇된 지원정책도 한 몫 한다. 수많은 대출지원 제도들이 ‘부부합산소득’ 같은 황당한 기준에 묶여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디딤돌 대출은 30세 이상 미혼자와 결혼한 부부의 대출가능 소득 기준이 연 6000만 원으로 같다. 맞벌이 신혼부부가 주택청약 우선공급을 받으려면 1인의 소득이 도시노동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00% 이하여야 한다. 근로장려금 제도도 단독 가구는 소득 2200만 원 미만부터 지원받지만, 맞벌이는 3800만 원 미만이다. 이러니 결혼은 손해가 나는 선택지가 된다.

모두 수도권에 살고 싶어하니, 재산이 없으면 결혼도 불가능하다. 여성은 생애주기 소득도 출산 이후로 현격히 떨어진다. 남성 취업률은 30대 후반에 91%까지 높아졌다가 54세까지 87% 안팎이 유지되지만, 여성은 20대 후반 70%를 정점으로 30대 후반에는 58% 안팎까지 곤두박질친다. 54세에도 66% 정도 밖에 회복 못한다. 부모 재산이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되고 결혼 회피 경향은 심화된다.

 


◇ 모든 것을 파괴하는 극심한 경쟁 압력

저자는 우리가 높은 경쟁 압력에 비해 빈약한 사회 안전망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 발생하는 것이 가성비만을 추구하며 ‘손해를 참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의 증가라고 말한다. 개개인의 이기심을 증폭시키는 사회적 토양이 축적되면서 효율성과 이기심 밖에 남지 않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불행과 증오에 중독된 공동체’라고 표현했다.

시험을 통과해야 기득권을 얻고, 경쟁에서 이겨 쟁취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50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 그것이 국가에 이롭다는 논리가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2022년 서울대 신입생 중 10.4%가 강남·서초구 출신이며, 두 지역에서 전체 서울지역 신입생의 28.8%가 나왔다. 경제력=입시 성적인 사회다.

경쟁 제도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승자가 되는 한국식 능력주의가 만연해 졌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도 등한시된다. 약자가 약자를 미워하는 체제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같은 처지의 대상들에게 더욱 강한 반감을 지니는 모순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 모두가 조금씩 가난해지는 나라…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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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인구 감소는 곧 가난함으로 이어진다. 인구가 줄어 수요가 줄면 소비재들을 비싸게 수입해야 하니, 다 같이 가난해질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국가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꾸준히 유지되어야 하고, 내수시장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의 해외시장이 필요하다. 서비스업의 저 생산성 구조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의 재정 부담도 준 조세 같은 형태로 민간에 전가되지 않아야 한다.

인구 감소가 불러올 ‘사회적 쏠림’도 우려된다. 수도권 쏠림에 이들 지역구만 계속 증가하면 자칫 수도권의 이해관계만 중시될 위험이 크다. 인구 감소는 또 국방력 감소를 야기해 한반도 리스크로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인구 문제를 해결할 가장 현실성 있는 미래 대안은 ‘이민’이지만 비 선진국 중심의 이민 정책은 자칫 또 다른 저 생산성 집단을 만들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저자는 “소수만이 성취 가능한 사회적 성공에 집착하는 ‘황금 티켓 증후군’ 극복이 과제”라고 말한다. 정부 지출도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이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가 되묻는다. 미래에 쓰기 위해 지금 아끼는 선택 보다는, 미래 세대의 수를 늘리거나 그들의 생산성이라도 보전하는 적극적인 투자가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황금 티켓을 얻은 사람을 포함해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다. 둘째, 정부 재정을 적극 확대하고, X세대와 밀레니엄 세대의 잉여 자본을 개인의 국채 보유로 유도해 자산 축소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는 “공동체의 성공적인 운명은 누군가의 승패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기꺼이 지갑을 여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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