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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벚꽃동산’ 박해수 “내가 샀어요, 아물지 않은 상처의 공간, 순간을 이겨내는!”

[人더컬처]

입력 2024-07-03 18:00
신문게재 2024-07-04 11면

벚꽃동산 박해수
‘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처음엔 ‘내가 샀어요’라는 대사가 좀 부담스럽고 긴장됐어요. ‘벚꽃동산’에서 남자배우가 할 수 있는 가장 잘 알려진,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와도 같은 대사거든요. 이 독백을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컸는데 지금은 좀 많이 내려놨어요. 매회, 순간순간 달라지거든요.”



박해수는 연극 ‘벚꽃동산’(Вишнёвый сад, 7월 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 출연을 처음 알리면서 설렘과 부담을 토로했던 대사 “내가 샀어요”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어떤 때는 울컥하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울분이 되기도, 자극이 되기도 해요. 그 상대도 어느 날은 강현숙(최희서)이고 어느 날은 송도영(전도연)이 되고 또 어떤 때는 변동림(남윤호)이 되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 대사 자체에 충실하려고 하죠.” 

 

벚꽃동산
‘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그렇게 변화를 꾀한 ‘내가 샀어요’에 대해 박해수는 “사실 그건 제(황두식)가 과거에 얽매여 인정받고 증명해보이고 싶은 이 집안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제일 많이 드러나는 대사”라고 말을 보탰다.

“(황두식이 ‘내가 샀어요’라고 한) 벚꽃동산은 제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이고 유년기의 내 모든 추억 속에 있던 곳이고 내 아버지가 그 사람들한테 두드려 맞는 걸 내 눈으로 본 공간이기도 해요. ‘지울 수 없는 상처,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대사가 잘 표현하고 있죠. 저는 그 공간에 매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 순간을 이겨내는 의미의 대사가 ‘내가 샀어요’죠.”



◇나와 맞닿은 황두식, 아버지를 떠올리는 순간들

 

박해수 배우 인터뷰용 사진1 Studio AL, LG아트센터
‘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황두식이라는 이름도 제가 지었어요. ‘식’자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밥은 먹고 살아라’라는 바람이 담기기를 바랐거든요.”


고전의 현대화에 탁월한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의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동명 유작을 한국화한 작품이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담긴 벚꽃동산까지 경매에 붙여야할 지경까지 몰락해 6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귀족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카야(류바)는 거대기업의 송도영(전도연)으로, 이 재벌가의 재정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끊임없이 제안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는 농노의 자식이자 신흥사업가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는 송씨 집안 운전수의 아들로 자수성가한 신흥사업가 황두식(박해수)으로 변주된다.

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송도영과 황두식을 비롯해 기업대표이자만 ‘낭만’이 우선인 송재영(손상규), 집안사업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며 두식과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입양한 딸 강현숙(최희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둘째 딸 강해나(이지혜)와 이상주의자 변동림(남윤호) 등이 급변하는 사회상과 그에 따른 갈등, 혼란 등을 풀어낸다.

연습 초반 사이먼 스톤은 배우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캐릭터의 면면을 구축했다. 황두식 또한 박해수의 개인사에서 비롯한 “갖춰진 틀 안에 제가 들어가는 게 아닌, 저와 맞닿은 캐릭터”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부분이 와닿아요. 황두식의 아버지처럼 폭력적이거나 술주정뱅이는 아니었지만 어린시절의 아버지는 거대하고 무서웠고 목소리도 크고 되게 우람하셨거든요. 그런 모습 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작은 모습을 봤을 때를 사이먼과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 아버지에 대한 황두식의 인정욕구가 제가 가진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이먼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도 분명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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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이어 “연기를 하면서 아버지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며 “황두식 뿐 아니라 모든 캐릭터들이 가진 결핍들은 배우에게서 가지고 왔다. 그래서 배우들도 좀 더 외롭고 감정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사이먼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오징어게임’ ‘유령’ 등 저 뿐 아니라 ‘벚꽃동산’ 출연진들의 작품들을 거의 다 볼 정도죠. 사이먼이 사람을 잘 관찰하는데 저한테서는 피지컬과 아우라가 있는 동시에 되게 연약한 면이나 쉽게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이어 “K콘텐츠 발전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한국은 독보적인 스타일의 영화, 드라마가 있다’ ‘한국 배우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다’고 하더라”고 말을 보탰다.

“제가 생각하는 K콘텐츠의 강점은 수준높은 시청자들과 관객들이죠. 그 잣대가 저희를 열심히 안할 수 없게 만들거든요. 배우인 저 역시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죠.”


◇두 여자, 복잡한 존재 송도영과 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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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둘 다 사랑에 대한 부재가 있어요. 어쩌면 가장 외로운 사람들일 수도, 송가네의 이방인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죠. 둘 다 그 아픔이 존재하는 결핍이 있어요. 그 사이에 분명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거예요. 감정적인 연인 사이의 교류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뭔가 모르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존재죠.”

연인이라고 할만큼 뜨겁진 않지만 그렇다고 차갑지만도 않은 강현숙에 대해 박해수는 “감정적 동질감”을 언급했다.

“고독한 한 남자가 성공 후 모든 걸 다 정리한 상태에서 진짜 좋아하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그렇게 고백하는 순간 내가 몰랐던, 오래된 사랑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되게 아프더라고요.”

그렇게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를 고백하는 사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감정들의 복합체다. 현숙과 더불어 아버지에 의한 동시에 아버지를 향한 폭력이 난무하던 공간, 그 안에서 황두식이 느꼈을 모멸감 안에서 처음으로 다가온 따뜻한 송도영 또한 두식에겐 복잡한 존재다. 그 송도영은 “제가 접한 첫 여성성이고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을 사랑이라고 믿었던 존재”리며 “동경하고 흠모하는 대상”이다.

“송도영이 ‘몸을 숙인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처음엔 고개를 숙여 상처를 닦아 주는 건가 했는데 ‘몸을 숙인다’는 대사를 쓴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요. 어떤 체취로 다가오는 느낌 같아요.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엄마의 품 같기도 하고 사랑이었을 것도 같고…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꿈을 이루는 동안 힘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엄마였다가 여자였다가 그 어떤 공간이었다가 향기였다가…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운 존재죠.”

벚꽃동산
‘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송도영을 연기하는 전도연에 대해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너무 다채로운 매력들을 가진 분”이라며 “현장에서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함께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요. 그 순간에는 전도연과 박해수가 아닌 송도영과 황두식으로 있지만요. 공연의 질이나 연기자로서 무대에 위 뿐 아니라 공연 전과 끝난 후의 과정들,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사랑하고 챙기는 모습들에서 많이 배우고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내년 ‘벚꽃동산’의 호주 공연을 위해 스케줄을 조율 중이라는 박해수는 이정효 연출의 ‘자백의 대가’ 출연을 고심 중이다. 이 작품에는 ‘벚꽃동산’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전도연도 안윤수 역 물망에 올라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재회를 기대하게 한다.


◇송씨 일가를 향한 절실한 설득, 결국 ‘사랑’

박해수 배우 인터뷰용 사진2 Studio AL, LG아트센터
‘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송도영이 아이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그걸 듣는 황두식 장면이 좋아요. 그때의 그 공간이 되게 좋거든요. 도영이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을 제(두식)가 뒤에서 지켜보는 장면인데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오가요.”

이어 “이 순간 진짜 아픈 사람한테 내가 기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고 조금만 빨리 만났으면 저 사람을 구원했을 수도 있겠다도 싶고 다른 세상이나 시대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고…복잡한 감정들을 담은 이 대사가 저한테는 제일 두식스러웠던 말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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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극 중 황두식은 파산 위기에 처한 송씨 일가를 살릴 방도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한다. 하지만 낭만만을 찾는 송재영과 “나는 잘 몰라요”로 일관하는 송도영, 이상만을 부르짖을 뿐 실천을 두려워 하는 변동림 등은 그의 물질적 욕구를 비웃을 뿐이다.

“현실 감각이라곤 없고 뜬구름을 잡고 있는 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는 ‘사랑’이에요. 이 가족에 대한 그리고 유년 시절 내 고통이 섞여 있는 이 집안에 대한 사랑이죠. 언젠가 도연 선배님이 ‘이 중에서 이 집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건 두식이겠다’고 얘기하시는데 저한테도 확 와닿았죠.” 

 

벚꽃동산 박해수
‘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이어 “물론 욕심도, 욕망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절실하게 그들을 설득한 이유는 진심으로 살리고 싶어서 같다”고 부연했다.

“힘든 시기에 희망을 갖게 했고 구원했던 이 집을 구원할 수 있는 게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두식과 동시에 느끼는 공허함, 발전의 원동력

“사이먼이 얘기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가 어떤 약속이나 정보 전달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관찰에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 실수를 하거나 계획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들을 만들어내 내죠. 처음엔 사이먼의 방식에 긴장이 더 많이 됐는데 이제는 되게 자유로워졌어요.”

그렇게 서로를 관찰하고 믿음을 키워가면서 박해수는 “모든 배우들을 정말 사랑하게 하게 됐다”며 “그들 하나하나와 함께 온전히 숨 쉬고 있을 때가 진짜 살아 있다고 느껴지고 소중해진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엔 에너제틱했어요. 모두가 뾰족뾰족하게 부딪히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실수를 하고 자연스럽지 않기도 한데 서로를 보듬어주는, 서로의 에어백이 돼주는 느낌이에요. 무대에 올라가 있는 순간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데 내려오면 또 그렇게 외롭고 공허할 때가 많아요.”어떤 캐릭터를 받아들인 자신의 몸을 통로 삼아 관객들에게 인물의 감정과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의 끝은 늘 공허함과 박탈감이다.

“온전히 이 작품을 위해 살아가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끝나는 시점이 오거든요. 또 새로운 만남과 선택을 받아야 하는 배우로서 이별을 맞아야 한다는 데 박탈감이 없지 않아요. 그리고 이 감정들은 배우로서 늘 가져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상적이고 관성적으로 임하기 보다는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거든요. 계속 느낄 수밖에 없고 느껴야만 하는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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