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액티브 시니어] 개실마을 김종직 고택을 들러보니

<시니어 탐방>

입력 2024-08-15 13:55
신문게재 2024-08-16 13면

김종직 고택
개실마을의 김종직 고택

 

경북 고령군 쌍림면의 개실마을은 마을 풍경이 아름다워 ‘가곡(佳谷)’이라 불렸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마을 뒷산을 등지고 앞으로 내가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아 마음이 평안해지는 명당이다.

무오사화 때 화를 면한 김종직의 후손들이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금까지 18대째 종가의 대를 이어오고 있다. 마을 사당에는 김종직 선생의 신주가 모셔졌다. 서림각에는 고문서 79점 보물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진품은 대가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김종직은 밀양에서 태어나 고려말 정몽주, 길재의 학통을 이은 아버지 김숙자에게 학문을 익히면서 조선 시대 도학의 정맥을 계승했다. 그는 세조·성종 대에 걸쳐 벼슬을 하면서 항상 절의와 의리를 숭상하고 실천하는데 힘썼다. 이러한 연유로 자연히 사림들로부터 존경받아 당시 학자들의 정신적인 영수가 되었다.

성종 대 이후 김종직과 그의 제자들인 사림파가 중앙에 등용되면서 유자광 등 훈구파와 심한 대립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훈구파 자신들의 방호를 위해 사초에 실린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연산군에게 밀고 했다. 그렇게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종직은 관직이 발탁되고 무덤 속 관을 꺼내어 시신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까지 당했다.

조의제문이란 중국의 고사에서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 의제와 단종을 비유하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것으로, 깊은 역사적 식견과 절의를 중시하는 도학자의 참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할아버지(세조)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김종직의 후손들이 개실마을에 은거하며 사림 영수의 후손답게 절의와 의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사진=정운일 명예기자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