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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삶은 약속의 연속

<시니어 칼럼>

입력 2024-09-12 13:18
신문게재 2024-09-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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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량 명예기자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에 수업료를 내지 못해 항상 독촉받았다. 미납자만 불러서 언제까지 가져올 수 있는지 묻는 게 수업 시간 일부였다. 수업료는 가족과 협의해 날짜를 정해도 어려웠다. 부모님은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오직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산과 들에서 한평생 일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언제 가져오겠다고 약속을 할 수 있었겠나. 잔머리를 굴려 약속일자를 한 달 후로 대답했다. 순간 호흡과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양심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신호를 보낸다. 약속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심란했다. 형편이 어려우니 마음마저 초라해졌다. 학교에서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궁리했지만 뾰쪽한 답이 없었다. 부모님은 “다음에 드리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다음이 언제란 말인가? 나처럼 빈손으로 등교하면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 가봐야 뻔했다. 가정리 앞 비행장에서 부서진 비행기 날개와 놀면서 탄피를 주웠다. 탄피는 엿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물물 수단이었다.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돌아가 겉과 속이 다른 내용으로 말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고학년이 될수록 중퇴자가 늘어났다. 수업료가 없으니 배움을 포기하고 일해야 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거나 도시로 나갔다. 도시에 일가친척이 있다면 농사를 피할 수 있으니 행운아였다. 지금은 중학교까지 무료교육이라 돈이 없어도 누구나 학교에 다닐 수 있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학생이나 보호자에게 법적 책임이 부과된다. 격세지감이다.

요즘은 고등학교까지 무료 급식이다. 아침을 굶은 학생을 위해 주먹밥까지 제공하는 지역도 있다. 이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나이에 배고픔을 겪었던 선배 세대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다. 그들이 탄광 광부와 간호사, 중동지역 건설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국가 경제의 ‘종잣돈’ 역할을 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그들이 고령자가 되어 사회문제로 회자(膾炙)되고 있다. 효심은 찾을 수 없다. 자식이 부모를 해 하고 혀를 찰 일들이 뉴스에 등장한다.

당시에는 자녀가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자식과 부모가 함께 노인이 되어간다. 하지만 노인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소리만 요란하다. 삶은 약속의 연속이다. 공평한 사회에는 부정부패가 없다. 약속은 교통신호등처럼 잘 지켜야 한다. 지키는 사람이 존경받아야 한다. 핑계는 양심을 속이는 일이다. 보릿고개 시절에 배고픔보다는 수업 시간에 집으로 돌려보낸 설움이 더 컸다.

 

임병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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