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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거대한 음악 스튜디오"… 우주 비행사의 아름다운 음악 이야기

[권익도의 White Cube] 우주를 노래하는 우주 비행사 '크리스 하드필드'

입력 2015-04-27 09:00

지상관제소 사령부와 교신한다. STS-74호, STS-74호. 지구 떠날 준비 완료. 해치 닫고 헬멧 착용 완료. 보조 동력원 점검 완료! 카운트 다운 시작. 10, 9, 8, 7, 6. 우주 왕복선 발사 준비 작동. 5, 4, 3, 2, 1. 추진로켓 점화. 이런 젠장. 누군가 나한테 시멘트를 붓는 기분이군. 우주왕복선 STS-74호 이륙,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죽은 건가. 아. 숨은 쉬고 있다. 살아있군. 정확히 8분 40초 정도가 지났다. 고도, 속도, 방향 모두 정확하군. 무게감을 전혀 못 느끼겠네. 이게 바로 무중력 상태인가. 판타지로서 꿈꿔오기만 했던 세계가 현실과 ‘쾅’ 하고 충돌한 느낌이다.

 

크리스 하드필드
스페이스오디티 뮤직비디오에서 노래하는 크리스 하드필드(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1995년. 처음 왕복비행선 STS-74호에 탑승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9살 때 TV에서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을 보고 우주비행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꿈이 이뤄진 날이었으니까. 당시 내가 살아 돌아올 확률은 38분의 1 정도였다. 출발 전까지 매일 매일 아주 영광스럽게 우주를 유영하고 있거나 죽어있는 시체로 우주 한 가운데를 둥둥 떠다닐 거라 생각했었지. 다행히 지금 멀쩡한 상태로 지구에 두 발을 딛고 서있음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우주선에서의 기억들은 하나하나 전부 특별했다. 초속 8㎞로 하루에 지구를 16바퀴씩이나 돌면서 그동안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수많은 창작과 실험을 반복했었지. 버킷리스트에 있었지만 하지못했었던 음악 작업도 새로운 경험과 관찰에서부터 영감을 얻으면서 시작하게 됐었구나.

우주 정거장 창문에서 우주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때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지구를 보면서 모든 경험들이 새롭게 시작됐다. 태양과 지구 사이 각도 변화에 따라 행성들은 매순간 변했고 하나의 ‘환상적인 미술관’을 만들어 냈다. 음. 보면서도 입이 떡 벌어졌다고나 할까. 1인용 우주복을 입고 우주의 끝없는 어둠속을 헤쳐 나가면서 나는 우리가 그동안 지구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처럼 환영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됐지. 그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가 있었음을 여실히 깨닫게 됐다.

처음으로 ‘우주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때는 언제였더라. 1995년 러시아 우주 정거장 미르(Mir)의 설계를 도와주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야마하FG180’이었나. 17살 때 유럽 여행을 갔다가 샀던 기타를 우연히 미르로 가져갔는데 당시 동료들이 오랜 구식의 러시아 어쿠스틱 기타로 비틀즈 음악을 연주하고 있더군. 우리는 서로 음악적 교감을 나누면서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음악 스튜디오로 만들었었지. 아직도 짜릿하군.

2013년부터는 음악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두했었다. 당시 나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오후 시간 내내 어쿠스틱 기타와 녹음 장비를 손에 달고 살았었다. 이때 싱글 ‘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의 음원을 만들었던 재밌는 기억이 나네. 원작자였던 데이비드 보위에게 양해를 구하고 노랫말을 조금씩 개사했었지. 단순히 ‘국제 미아’가 된다는 기존 노랫말도 매력이 있고 좋았지만 나의 진짜 우주여행 스토리를 통해 우주 자체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공유하고 싶었으니까.

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우주 생활에 대한 모습도 공개하기 시작했다. 실제 음악 외적인 우주 생활을 보면 감동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참치나 땅콩처럼 마른 음식들이 벌레처럼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나 우주선 속에서 보는 지구의 화려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등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거리들을 함께 나누길 바랬다.

“아빠, 왜 사람들에게 보고 싶은 지역을 추천받아요?” 언젠가 아들 에반이 내게 했던 질문이다. 내가 이제껏 듣지도 못했던 국가나 장소들을 먼발치에서 보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또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우주에서 보고 싶은 지구’ 리스트를 추천받았다. “하드필드씨의 영상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봤어요”, “저는 우주 소설을 써봤네요” 등등 쉴새 없이 쏟아지는 반응에 개인의 경험이 수백만명의 경험이 되고 수백개의 창작물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됐다. 그저 소름끼치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투브,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는 ‘구텐베르크 성경’과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로운 정규 앨범
하반기에 발매될 크리스 하드필드의 새로운 정규 앨범(사진출처=하드필드 트위터)

스페이스오디티 뮤직비디오에도 실제로 ISS에서의 작업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주’라는 공간은 단지 환상이 아님을, 우리의 가까이에 있는 것임을 노래해 주고 싶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그때 당시 5개월 동안 정거장 안에서 녹음했던 기타소리와 보컬 트랙을 조금 다듬어 정규 앨범을 낼 계획이다. 캐나다 아티스트 벅65(Buck 65), 베어네이키드 레이디스, 론 섹스스미스 등과의 콜라보도 계획돼있다. 


지구 궤도를 여행하던 중 느꼈던 고요함과 적막함, 무중력 상태의 평온함은 내가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데 완전히 새로운 장소를 제공해줬던 것 같다. 9살 소년 시절부터 우주를 꿈 속에 품었던 나의 이야기를 그대들에게 전한다. 마지막으로 2년 전 발표한 곡 스페이스오디티를 부르며.

“(스페이스오디티 가사) 난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주 속의 한 깡통에 앉아 세상을 훑어보고 있네. 오늘따라 별이 아주 다르게 보이는군.”

※이 기사는 우주비행사이자 뮤지션인 크리스 하드필드를 가정하고 쓴 스토리텔링 기사입니다.

권익도 기자 kid@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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