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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피아노 선율에 삶이 다시 흐른다! 뮤지컬 ‘포미니츠’ 김선영·김환희 “그렇게 살아간다”

[Pair Paly 인터뷰]

입력 2021-04-19 19:00
신문게재 2021-04-20 11면

뮤지컬 포미니츠
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왼쪽)와 크뤼거 김선영(사진=이철준 기자)

 

“원작영화 중 ‘우리 모두는 해야 할 일이 있고 너는 당장 엉덩이를 떼고 움직여야 한다’는 크뤼거의 대사가 강하게 다가왔어요. 그 부분 때문에 이 작품을 하기로 결심했죠.”



뮤지컬 ‘포미니츠’(5월 23일까지 정동극장)에서 크뤼거로 출연 중인 김선영은 출연 이유를 이렇게 전하며 “그 순간을 위해 달려왔다는 느낌이 강했다”며 “그 메시지만 잘 전달되고 표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인 한나를 잃고 그와의 관계를 부정했던 죄책감으로 60년 동안 스스로를 과거에 가둔 채 살고 있는 크뤼거를 연기하고 있는 김선영은 올 초까지 공연됐던 전작 ‘호프-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에서도 나치시대에 겪은 일로 수십년 동안 자신을 버린 채 원고 K에 집착하는 노인 에바 호프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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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크뤼거 역의 김선영(사진=이철준 기자)
“너무 밭게 하게 돼서 고민은 잠깐 했어요. 작가님도 같고 이야기의 구조에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사실 걸리긴 했죠. 게다가 코로나19로 ‘호프’ 공연이 미뤄지면서 ‘포미니츠’와 연습이 겹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요. 이 작품이 향해 내달리는 마지막 4분, 콩쿠르 결승전에 제니가 참가할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되는 크뤼거의 마인드에 집중했죠.”

제니 역의 김환희 역시 전작 ‘베르나르다 알바’에서 폭압적인 어머니에 의해 집안에 감금돼다시피 한 아멜리아를 연기한 바 있다. ‘포미니츠’의 제니 역시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주변 사람들과 드잡이를 하며 스스로도 생채기내는 인물이다.

“아멜리아도, 제니도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게 공통점 같아요.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죠. 아멜리아는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좋게 생각한다면 제니는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이거든요.”

‘포미니츠’에 대해 “인생 얘기 같아서 많은 걸 느낀다”며 “제 입으로 제니에 대해서, 크뤼거에 대해서, 포미니츠의 연주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다 보면 생각이 더 많아지는 작품”이라고 털어놓았다.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이전의 역할들은 폭력을 당하거나 방관자였어요. 제니 같은 성격을 연기해본 적이 없었죠. 폭력적이고 내 안의 것을 분출하는 솔직한 사람이요. 모든 사람들 마음 한켠에는 그런 성격들이 있을 것 같거든요. 저 역시 처음 제니를 만났을 때는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할수록 내 안에 제니의 성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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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사진=이철준 기자)

 

뮤지컬 ‘포미니츠’는 2006년 크리스 크라우스(Chris Kraus)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선보인 동명 영화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루카우 교도소의 여성 재소자들에게 60년 동안 피아노를 가르쳐온 트라우드 크뤼거(김선영·김선경, 이하 관람배우 순)와 살인죄로 복역 중인 천재 피아니스트 제니 폰뢰벤(김환희·김수하)의 이야기다.

 

타인과의 감정적 교류를 차단하며 높은 벽을 쌓아 올린 크뤼거와 난폭해질 대로 난폭해져 교도소 내 골칫거리가 돼 버린 제니가 서로를 통해 살아야할 이유를 찾고 각자의 방식대로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서게 되는 여정을 따른다.

‘영웅’ ‘레미제라블’ ‘웃는 남자’ 등의 배우 양준모가 예술감독으로 나서 감독과 직접 연락해 저작권까지 확보한 작품으로 ‘펀홈’ ‘차미’ ‘여신님이 보고 계셔’ ‘태일’ ‘섬’ ‘오만과 편견’ 등의 박소영 연출, ‘호프’ ‘검은 사제들’ 등의 강남 작가, 오페라 ‘리타’, 뮤지컬 ‘워치’ 등의 맹성연 작곡가, ‘제이미’ ‘더 그레이트 코멧’ ‘웃는 남자’ ‘영웅’ 등의 박재현 음악감독 등이 꾸렸다.


◇피아노, 사랑받기 위한 도구 그리고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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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크뤼거 역의 김선영(사진제공=정동극장)

 

“크뤼거는 아주 좋은 피를 물려받았고 군수물자 사업가인 아버지 덕분에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렸을 거예요. 계급사회에서는 괜찮은 계급에 속하는 집안이지만 크뤼거가 피아노를 치는 목적은 엄마, 아빠한테 사랑받기 위해서 였을 것 같아요.”

김선영은 극 중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크뤼거의 사연에 대해 이렇게 전하며 “금요일 함께 음악회에 갔다가 식사를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때가 가족이 유일하게 함께 보는 시간”이라며 “그때만 유일하게 엄마,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형편이 좋으니 좋은 선생님도 있었을 거고 피아노는 당연히 잘 쳤고 대회에서 입상도 했겠죠. 하지만 스스로는 본인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뮈체(육현욱·정상윤)가 ‘선생님을 봤을 때 가슴이 뛰었다’는 말에 대한 ‘과장이 심하군요’는 진심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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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왼쪽)와 크뤼거 김선영(사진=이철준 기자)
크뤼거에게 피아노는 “사랑받기 위한 도구”라고 표현한 김선영은 “피아노를 좋아하는지,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고 연주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음악을 사랑해야한다는 것 또한 교육을 받고 학습되는 거죠. 부모에게 사랑받으려면 이런 음악을 감당하고 항상 정한 규칙과 원리원칙 안에 잘 있어야 한다는 정서적 학대가 있었던 사람 같아요. 그래서 크뤼거에게 피아노가 사랑하는 대상이었나는 의문이에요.”

더불어 “게다가 사랑하는 한나가 재능을 보였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 한나는 죽었고 그와의 관계를 부정하면서 살아남은 스스로에게 벌을 주기 위해 피아노를 곁에 두고 의무감으로 견뎌내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피아노와 손절을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의무감과 벌을 받는 것처럼 60년을 견디고 살면서도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제니를 만나면서 과거와의 충돌을 겪고 직면하게 돼요.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이 친구의 자유를 향한 갈망, 눈빛 등을 통해 과거 치열한 전쟁에서 한나와 겪었던 것들이 터져 나오는 거죠. 어찌 보면 크뤼거는 제니를 만나 사건들을 겪고 난 후, 극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피아노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니 역의 김환희는 피아노에 대해 “피아노를 배워야 했던 배우 김환희에게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니에게도 피아노는 애증”이라며 “제니에게는 유아시절 받았던 폭력, 사라져 버린 아이 등 피아노 때문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증오하게 되는 존재”라고 밝혔다.

“피아노는 다 지워버리고 싶고 살기 싫게 만드는 기억이 돼버렸죠. 하지만 계속 눈에 밟히고 생각나고.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질 수 없고 떼려고 하지만 끈끈하게 계속 붙어 있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제니에게 피아노는 (다들 천재라고 하는데) ‘나는 특별해’가 아니라 ‘특별한가?’예요.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죠.”


◇지켜야할 이들을 지키지 못한 두 사람의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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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크뤼거 역의 김선영(사진=이철준 기자)

 

“전쟁 상황 속에 함께 있었던 사람, 한나는 이미 죽었어요. 제니의 말처럼 ‘당신 때문에 죽은 게 아닌데’ 그렇게 됐어요. 그 사람을 모른다고 얘기한 건 당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어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을텐데 크뤼거는 그러질 못한 사람이에요.”

이렇게 전한 김선영은 “거기서부터 ‘참 착한 사람이구나’ 싶고 인간적인 연민이 들었다”며 “제니도 그렇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를 가져서 잃어버린 슬픔과 아픔, 트라우마를 잊거나 모른척하거나 빨리 치워버리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갈 수 있지만 이 친구는 그 안에 머물러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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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사진=이철준 기자)
“속에 굉장히 착함과 따뜻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죠. 상황 때문에 가시가 생기고 단단해지고 방어를 하게 되는 인물로 변해가잖아요. 그런 인물들이 쌓아놓은 벽들을 하나씩 허무는 것들을 보는 감동과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라는 들어요.”

그리곤 “60년의 자기 인생을 지배해버린 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크뤼거, 이 착한 사람이 잘 이겨내고 풀 수 있는 열쇠를 이 친구를 만나 찾고 해방되는 과정들을 담고 있다”고 부연했다.

“제니를 보면 한나도 떠오르지만 저 자신도 투영이 돼요. 이 아이가 뱉는 말들, 눈빛, 행동들이 그래요. 처음엔 천재적인 재능에서 한나를 투영했다가 제 자신이 속에서 몇십년 동안 해왔던 말들을 이 어린 친구 입을 통해 듣는 묘한 순간들을 만나게 되죠.”

그리곤 ‘지켜’라는 넘버와 장면을 예로 들었다. 김선영은 “그 장면에서 제니가 외치는 ‘아무 것도 지키지 못한 나’ ‘나를 박살내러’ 등은 크뤼거가 늘 규정하지 못했던 말들”이라고 설명했다.

“크뤼거도 굉장히 의연한 척하면서 살았지만 계속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어린 친구 입에서 내가 평소 생각했던 말들이 쏟아져 나오니 되게 복잡해졌어요. 이 친구를 어떻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크뤼거에게 제니는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김선영의 말에 김환희는 “크뤼거는 창살도, 창문도 없이 꽉 막힌 감방 안에 있는 제니에게 아픈 바늘이 아닌, 숨통을 틔워주는 구멍을 뚫어 빛을 내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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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그로 인해 제니는 숨을 쉴 수 있었어요. 숨을 쉴수록 구멍이 커지면서 제 삶에 색깔을 입혀줬다고 생각해요. 제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닥까지 다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아픔을 알아봐주지 않아요. 그저 쓰레기, 살인자라고 욕하죠. 하지만 크뤼거는 달라요. 어떤 이유에선지 나를 알려고 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려고 하고…내게 빛을 주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죠. 제니에게 크뤼거는 호기심의 대상이에요. ‘이 사람 뭐지?’ ‘내 인생에 이런 존재가?’라고 느껴지는 사람이죠.”

 

김환희 역시 ‘지켜’라는 장면을 “제니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크뤼거가 다르다고 느끼는 순간”으로 꼽았다. 그리곤 크뤼거에 대해 “참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 그리고 뭔가 어이없고 계속 호기심이 드는 사람”이라며 “제니로서는 이 사람 인생이 아니고 ‘이 사람 나한테 왜 이러지?’가 궁금해진다”고 밝혔다.

“크뤼거가 종이를 먹으라고 하면서 순종하기, 손 아끼기 하는데 나무라거나 강압적인 느낌이 아니었어요. 제니에게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죠. 제니가 ‘당신도 마지막에 쓸모없어지면 버릴 거잖아’라고 상스러운 욕을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해도 크뤼거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하면서 계속 기회를 주고 생각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오스카 얘기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남아 있는 숙제, 스스로를 가둬 버린 크뤼거와 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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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왼쪽)와 크뤼거 김선영(사진=이철준 기자)

 

“피아노도 피아노인데 성격적인 부분에서 거칠게 표현해야하는 부분이 어려웠어요. 제니 자체가 저에겐 도전이었죠. 상처받은 제니의 마음은, 하루는 어떨까를 계속 고민하면서 조심스레 다가갔어요.”

제니에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김환희는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게 다가 아닌, 언제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질지 모를 애를 표현하는 게 계속 숙제였다. 걸음걸이조차”라며 “지금도 무대에서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거나 물리적으로 힘을 가하는 표현으로만 하다 보니 많이 다치고 목도 안좋아지고 그랬어요. 게다가 에너지가 때리는 힘으로만 가니 집중력도 떨어졌죠. 연출님, 배우님들과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마지막까지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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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크뤼거 역의 김선영(사진=이철준 기자)
김선영 역시 “크뤼거의 정서는 한번에 끝나지 않는, 연습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체화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 긴 시간을 외롭게 버티고 견디고 싸워온 사람만이 가진 모습, 정서 등을 더 찾아내고 유지해 가는 게 제일 어려운 작업”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혼자 남는 걸 가장 두려워했던 크뤼거가 혼자 남기를 택한 것에 대해 김선영은 “계속 끝나지 않는 숙제 같은 것”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표현했다.

“한나는 이미 죽었고 자신이 그 사람을 부정함으로서 ‘한나’라는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닌 게 됐다고 믿으면서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죠. 그게 남은 삶 동안 한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크뤼거는.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방어막을 치는 건 크뤼거가 그 긴 세월을 살아내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를 잃고 모든 걸 놔버리겠다는 제니의 결정도 어쩌면 살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을 거예요. 크뤼거에게도, 제니에게도 사실은 ‘궁여지책’이었던 거죠.”

‘궁여지책’이라는 김선영의 표현에 김환희 역시 “혼자 남는 건 스스로에 대한 벌”이라며 “스스로 벌을 주지 못해 미칠 것 같고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한 게 한이 되는 그런 마음”이라고 말을 보탰다.

“연기를 하다가 힘 조절을 못하면 멍이 들어요. 하루 한번은 멍이 들죠. 그걸 보면서 제니를 더 생각하게 돼요. 제가 아파서가 아니라 제니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싶거든요. 생각 자체만으로도 힘들텐데 몸까지 가만두질 못하는 제니 생각에 멍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아가씨”에서 “제니”까지, 그 지난한 여정 끝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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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사진=이철준 기자)

 

“영화에서 제니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 같은 데서 수갑을 차고 크뤼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동성애자인 크뤼거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제니는 또 어떤 마음이었을지 몇 번을 돌려보면서도 헷갈리는 장면이었죠. 진심으로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하기까지 제니가 크뤼거에게 얼마나 복잡한 감정들이 많이 생겼고 그렇게 열리기까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게 돼요.”

김환희의 말처럼 제니도, 크뤼거도 쉽지 않았을 연대의 시작은 난장판이 됐던 첫 만남 이후 규칙을 강조하는 크뤼거가 꼬박꼬박 “아가씨”라고 칭하던 제니의 이름을 부르면서부터다. 자칫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 ‘아가씨’라는 호칭에 대해 김선영은 “대본 리딩 때도 얘기가 됐던 부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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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왼쪽)와 크뤼거 김선영(사진=이철준 기자)
“저는 ‘아가씨’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었어요. 굉장히 무심한 듯 ‘너는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 아냐’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 말인 것 같았거든요. ‘나는 너한테서 목적만 가지고 가면 돼’라는 표현이죠. 설령 내(크뤼거) 마음속에는 그게 다가 아니라도. 이 친구에게 ‘네가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가졌는지 너는 알아야 하고 이제부터 움직여야 한다’고 일깨우면서도 더 이상 선은 넘어오지 않기를 바라죠.”

그리곤 “제니가 지켜야할 규칙을 얘기하면서는 ‘널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여기 있는 친구들을 대변해서 네가 해야할 일’이라고 규정짓기도 한다”고 말을 보탰다.

“이 대사가, ‘아가씨’에서 ‘제니’라고 바뀌는 호칭이 심플하게, 그런 뜻만 있지는 않은 것 같았어요. 복잡한 것들, 감정들을 숨기고 하는 말 같거든요. 그래서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일부러 불특정다수 중 하나라고 얘기하다가 ‘네가 해야 할 일, 이제부터 너는 움직여야 해 제니’라고 정확하게 짚어주는 거죠.”

김선영의 말에 김환희는 “이름을 불러주는 크뤼거에게도 여전히 ‘이 사람 뭐지?’의 감정”이라며 “끝까지 제니에게 크뤼거는 ‘이 사람 뭐지?’하게 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교도소에서는 주어진 죄수번호를 부르거나 ‘제니 폰뢰벤’이라고 풀네임을 부르겠죠. 정말 언제 들어봤는지도 모르겠는 ‘제니’라는 크뤼거의 한마디에 동공지진이에요. 제니는. ‘나한테 제니라고 불렀어?’ ‘어떤 뜻에서 제니라고 날 불렀을까?’ 질문이 이어지면서 생각이 너무 복잡해져요. 그때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그 전에는 반항심과 ‘왜 이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였다면 그때부터는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겼죠.”


◇마지막 4분, 삶을 향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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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사진=이철준 기자)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았던 건 아마 남은 숙제, 하지 못한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마도 그건 마지막 4분에서 시작됐다고 봐요. 크뤼거로 인해 그제야 제 삶의 숙제를 깨닫게 되는 거죠.”

김환희의 말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할 이유를 찾고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니의 4분짜리 연주는 두 사람의 ‘연대 아닌 연대’ 그리고 이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응축돼 있다. 삶을 향한 몸부림과도 같은 마지막 4분은 제니 역의 배우들과 피아노의 호흡이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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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 제니 역의 김환희(왼쪽)와 크뤼거 김선영(사진=이철준 기자)
김환희는 “(홍유선) 안무감독님이 안무적으로 뭔가를 하기 보다는 제니의 감정대로 가면 좋겠다고 저희에게 맡겨주셨다”며 “기본적인 틀만 주시고 ‘여기서 이 음을 왜 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숙제를 내주셨다. ‘그 안에 너희들의 드라마가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지금도 끊임없이 숙제를 주신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피아니스트분들(오은철·조재철)과 얘기를 나누고 고민하면서 건반 쓸기, 현 튕기기, 건반 누르기, 타악 등 하나하나에 드라마를 만들었어요. 제니의 인생이 다 담겼어요. 오스카, 아빠에 대한 증오도, 크뤼거에 대한 고마움, 나 자신에게 하는 ‘잘했다’는 칭찬, 세상을 향한 ‘나는 이제 시작’이라는 외침 등이 있죠.”

크뤼거가 한결같이 꼿꼿하게 고수하던 원칙이나 규칙의 강요도 없이, 제니가 세상과 드잡이 하듯 쏟아내던 욕설이나 반항도 없이 그 4분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의 방식을 인정하고 기꺼이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저(크뤼거)는 제니가 자신의 방식대로 연주할 걸 어느 정도 예상한 것 같아요. 제대로 시작했다가 ‘다당’하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한달까요. 네가 너의 인생을 그렇게 살 것처럼 나도 내 인생을 살아볼게 하는 것 같아요.”

김선영의 말에 김환희 역시 “연주에 대한 것보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나 이런 삶을 살게’라고 말하는 것 같다”며 “감사인사를 드리는 것도 같다”고 동의를 표했다.

“피아노에 대한 가르침 뿐이 아니에요. ‘피아노를 가르쳐 줘서 고마워요’라거나 ‘나 이렇게 머지게 연주했죠’가 아니라 삶에 대한 고마움이죠. 피아노 때문에 시작됐지만 나를 이렇게 생명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요 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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