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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 ② “문학 개념의 확장,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 그 첫 장을 꿈꾸며”

입력 2021-08-06 18:30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문학의 개념도 변해요. 시, 소설, 희곡, 비평, 시나리오 등을 아우르는 ‘문학’이라는 고정개념은 20세기의 산물이죠. 이전에는 그런 개념도 없었어요. 10~20년 후에도 이 개념이 지켜질지는 장담할 수 없죠.”



문학 개념의 변화 혹은 확장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그 시대에는 하대받던 대중예술이었지만 지금은 고급예술이 된 서양의 오페라나 우리의 판소리가 그 예”라고 전했다.

“지금의 ‘문학’도 정의를 다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라는 그 개념 자체가 언어로 하는 유일한 예술이죠. 과거처럼 시, 소설, 희곡, 비평, 시나리오가 아니라 한국어로 된 콘텐츠로 개념을 확장해 폭넓게 관심을 가지며 한국문학번역원이나 문학하는 사람들이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 “웹툰 등의 한국어 콘텐츠가 해외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면 한국문학번역원이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존의 한국문학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갇혀 있으면 안된다, 변화하고 확장해야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독자가 변화하고 시대적 흐름이 달라지면 문학 또한 그 변화들을 반영하고 움직여야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어 콘텐츠들 중 어디까지 ‘문학’ 개념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정의하기 어려워요. 통념적으로 정의해야하는데 그 ‘통념’은 계속 변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분명한 건 한국어로 이뤄진 예술문화 콘텐츠를 ‘문학’이 아울러야 한다는 겁니다.”

이에 한국문학번역원은 올해 6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MOU를 맺었다. 곽 원장은 “카카오 웹툰을 전세계 언어로 번역하는 데 번역원 인력을 공급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다른 포털, 교보문고 등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가진 데와 만나려고 한다”고 밝혔다.


◇보이지 않는 손, 지원의 목표는 지원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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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모든 지원사업은 궁극적으로 그 지원사업의 소멸을 목표로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등의 한국문학 번역출판지원사업의 목표는 소멸이죠. 더 이상의 지원제도 없이 자연스레 시장에서 소화될 수 있게요.”

그리곤 프랑스의 지원제도를 예로 들었다. 곽 원장은 “프랑스의 지원제도는 시장에서 이미 검증되고 잘 팔리는 작가를 지원하지 않는다. 길고 난해하지만 중요한, 자신들의 문화적 자부심인 고전작품들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역시 어느 경지에 오르면 지원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뼈 아픈 소리지만 대한민국 문화예술은 지원제도 때문에 죽어간다고들 해요. 지원제도가 전면에 나서니 작가들의 자생력이 없어져 버렸죠. 극단적으로는 작가가 독자가 아닌 지원금을 상대로 글을 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예요. 위험하죠. 이제 스스로 반성할 때가 됐어요. 작가라면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 독자와 승부해야죠.”

그리곤 한국문학번역원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역임했던 문학진흥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새로운 5개년 문학진흥정책 소위원장으로서 마지막 회의를 주재하면서 했던 이야기들을 전했다.

“문화예술지원제도는 직접지원이 아닌 사후 지원, 건강한 생태계 조성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지원해줄 테니 책내, 공연해, 전시해 등은 나쁜 지원이에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 포상하고 더 나아가 좋은 결과물이 생산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죠. 100명의 작가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주기보다 300~500명 작가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죠.”

그리곤 ‘도서관상주작가’를 예로 들었다. 곽 원장은 “2~3년 간 매달 200만원 이상의 생활자금을 주고 도서관에서 하루이틀 정도 주민들을 상대로 기여하고 공부도 하고 독자들도 만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시은하는, 도시 속에 숨어사는 사람들이에요. 문학예술은 고고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나오거든요. 저희 번역원의 지원 프로그램 역시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지원기관의 조급성도 문제죠. 작가로서. 예술가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들게 해주는 지원제도가 좋은 것 같아요.”

더불어 “우리 문학시장은 다른 예술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지만 최근 작가들 사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일고 있다”며 “독자를 의식하는 범위가 넓어진 작가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예전엔 한국 독자 한정이었다면 지금은 내 독자가 한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작가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국경을 넘어, 언어가 달라졌을 때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글로벌 보편성’이죠. 작가를 매치할 수 있는 시장이 국내 한정이 아닌 해외로까지 넓어지는 가운데 공공지원 기관이 할 일은 인위적 개입이 아니라 멀리 보며 생태계를 잘 만들어주는 겁니다.”


◇지속적인 조사·분석을 통한 국가별, 언어권별 맞춤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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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제가 (5월 부임해) 와 보니 번역원에서 재밌는 연구를 했더라고요. ‘한국문학이 해외에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첫 조사였는데 흥미로웠어요. 표본도 충분하지 않고 연구방법론도 아주 과학적이지 않지만 각 나라별 출판시장 특징과 선호도, 한국문학의 위상 및 소비 장르 등을 가늠할 수 있는 데이터였어요. 각 시장별로 전략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죠..”

곽 원장은 “그 시장별 맞춤형 전략을 위한 바탕이 될 조사를 매년 할 것”이라며 “좀더 비용도 들이고 신뢰할만한 기관에 투자하면 우리에게 전략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어권, 국가별 특성에 맞춘 맞춤형 전략이 가능해지죠. 꾸준히 조사하고 그에 따라 국가별·언어권별 전략을 다듬으려고 합니다. 스릴러를 찾는다고 스릴러만 주기 보다는 스릴러와 동시에 우리가 정말 알리고 싶고 알려야 하는 것들을 같이 공략하는 전략이죠. 데이터를 계속 보면서 연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더불어 곽 원장은 30년간 몸담았던 대산문화재단과의 협력방안도 모색 중이다. 그는 “민간 문화재단과의 경쟁은 에너지 낭비”라며 “경쟁하듯 할 게 아니라 서로 잘할 수 있는 것을 나눠서 해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번역원장 입장에서 객관화해 양자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진지하게 제안해보려고 합니다. 중요한 민간의 역할이 있고 배워야할 굉장한 장점들도 있거든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 등을 지한파로 만들었잖아요. 지한파들은 한국문학의 자산이 될 거라고 믿어요. 동아시아문학 포럼에서는 한중일 작가들이 모여 한중일 갈등에 대해 계속 토론해요. 나라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도 작가들은 그걸 넘어서 계속 토론하죠.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건 잘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가 잘하는 건 우리가 잘하면서 협력하는 시스템을 가지려고 합니다.”


◇예술행정의 핵심, 균형과 인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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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한국문학번역원장이지만 저 역시 시인이에요. 당장 ‘슬픔의 뼈대’라는 제 시집이 번역을 끝내고 출판을 기다리고 있어요. 더구나 프랑스판은 르 클레지오 선생이 서문을 써주기로 하셔서 초고를 보내둔 상태죠.”

이처럼 시를 쓰는 창작자이자 문학가, 교보그룹 산하의 대산문화재단에 30여년간 몸담았던 예술행정가 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장, 저마다 다른 책무와 열망은 늘 충돌하곤 했다. 이에 곽 원장은 예술행정의 핵심을 “균형”이라고 꼽았다.

“예술행정가로서 가장 강조한 건 균형이었어요. 개인적인 기호나 선호에 휩쓸리지 않고 균형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30여년 간 했죠. 문화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게 ‘옳고 그르다’가 아닌 균형이 중요하거든요. 문학가로서의 개인적 열망과 번역원장으로서 해야할 일에 대한 충돌은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대산문화재단에 몸담고 예술행정을 한 30여년 동안 그 정체성들이 늘 충돌해 왔던 것처럼요.”

이어 “만약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개인적인 욕망을 먼저 내려놓을 것”이라며 “아무리 절차적으로 정당하다고 해도 동의를 얻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30여년 간 예술행정가로서, 문학가로서 늘 충돌을 경험했으니 균형을 잘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며 “번역원장으로서 역할을 할 때와 예술가로서의 활동이 충돌하지 않는 지점을 잘 찾으려고 한다. 충돌하지 않는 지점에서 시인으로서 제 역할도 잘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더불어 예술행정의 또 다른 핵심을 “인내심”이라고 밝혔다.

“문화예술은 경제발전이나 신업화와는 달라요. 굉장히 거시적으로 멀리 봐야하죠. 문화예술의 발전은 단계별로 숫자화해 따르기 보다는 과정 속에서 불현 듯 목표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는 식이거든요. 흐르는 강을 보세요. 어느 지점에서는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계속 흐르다 어느 지점에서 발현돼요. 문화예술의 발전 역시 그래요. 과정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투자하는 작업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 그 첫 장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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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한국문학번역원은 지난 25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했어요. 새로 부임한 원장으로서 제가 할 역할은 그 일들의 부정이 아니라 효율성과 역동성 높이기 입니다.”

이에 곽 원장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새로운 정체성과 방향성 그리고 그에 맞는 새로운 비전 수립에 고심 중이다. 곽 원장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는 작업을 번역원 구성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번역원 구성원들과 비전 작업을 같이 하는 건 저만 쳐다보지 말고 함께 가자는 거예요. 번역원 내 역량은 충분하거든요. 저와 번역원 직원들이 같이 바라봐야할 공동의 목표, 3~5년 내에 도달하길 바라는 크고 원대한 목표를 수립 중이죠. 이에 따른 실현방법과 구체적인 로드맵까지를 올 연말까지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세운 비전이자 목표는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아닌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 그 첫장을 여는 것”이다.

“독자들이 ‘세계문학’ 하면 떠올리는 게 있어요. 그리스로마신화, 셰익스피어, 괴테, 도스도옙스키, 헤밍웨이…한국 문학은 없죠. 3~5년 후 그 ‘세계문학’에 한국문학의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간 300~400개의 저작권이 팔려 번역돼 소개되고 세계 주요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계속 나오고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되고…문학상은 목표가 아니라 세계문학으로 자리잡는 과정 속에서 거쳐야할 여러 관문들 중 하나죠. 그러기 위한 노력들을 체계적으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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