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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애 맡길 곳도 키울 집도 없는데 덮어놓고 낳아라?

[맘 with 베이비] 젊은이들이 말하는 비혼·비출산 속사정

입력 2021-10-26 07:00
신문게재 2021-10-26 13면

 

(사진출처=게티이미지)

 

문재인 정부가 2018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쏟아 부은 저출산 관련 예산이 100조 원에 육박한다. 지난해만 40조 원이 투입됐다. 그런데 올해 우리 합계출산율은 0.84다. 내년에는 0.8 밑으로 추락이 거의 확실시된다. 신생아 수가 1년에 30만 명도 채 안된다. 왜 그럴까. 브릿지경제는 그 이유와 해법을 당사자인 결혼 전후의 예비 맘들과 육아 중인 맘들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이들 의견은 하나 같았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돈(지원금)’으로 해결하려는 비현실적 대책을 버리고, 아이 낳아 기를 수 있다는 환경과 사회적 믿음부터 만들라는 것이었다.

 

 

◇“부모님 부담 드리기 싫어 결혼 안해”

 

28세 취업 준비생 김 모씨는 최근 ‘비혼’을 결정했다. 순전히 경제적 이유였다. “결혼은 직장 잡고 난 후 고민하게 되는데, 취업 자체가 어려우니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취업에 성공해도 왠만한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집값 때문에 결국은 부모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도저히 그런 부담까지 드릴 수는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역시 취준생인 이 모씨(27)는 현재의 삶을 즐기기에 충실한 ‘욜로족’이다. 결혼 역시 ‘행복 우선주의’ 시각에서 생각해 가장 가까운 행복부터 찾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결혼’이란,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한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는 제도가 된 느낌이라고 토로한다. 그는 현재 주어진 자신의 삶을 즐기는 데 일단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경기도 이천에 사는 직장인 한 모씨(27)도 최근 비혼을 선언했다. 역시 ‘감당 못할 집값’ 탓이었다. 그는 “그래서 남자들도 맞벌이할 여성을 선호하는데, 여자 입장에서는 일을 하면서 육아와 집안일까지 도맡아 할 처지에 누가 결혼을 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2030이 결혼을 포기하는 주된 이유는 주거 불안정과 일자리 부족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49세 미혼 청년층 947명 가운데 31%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로 ‘주거 불안정’을 꼽았다. ‘불안한 일자리’가 27.6%로 뒤를 이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자니 그들 역시 집 값을 내주고 나면 노후에 남는 게 없을 것 같아 서로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 

 

 

 

 

◇ 결혼은 어찌 어찌 해도 출산은 NO!

 

결혼에 거부감이 없는 2030 여성들에게 출산은 또 다른 문제다. 취업 후 출산은 곧바로 퇴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기업들도 업무 단절 우려에 여성 채용을 꺼린다. 직장에서 오랫동안 버텨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아이를 굳이 갖지 않으려는 이유가 된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가정과 일의 양립’이 불가능해 출산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직장인 강다영(29)씨는 “30대 중반쯤이면 영혼까지 끌어 모아 결혼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는 낳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력단절 때문이다. 그는 직장 선배들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 “선배들은 출산과 육아 휴직 등으로 남자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더라고요. 아이 픽업 때문에 퇴근시간만 되면 초조해 하는 게 눈에 보여요.”

 

27세 미혼의 최서영 씨는 최근에 아이를 낳고  퇴직한 사촌언니 예를 든다. 출산 후 육아휴직을 썼는데 복직이 안됐다며 “소기업에 다니는 여성들에게 결혼은 곧 일자리 상실인데,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느냐”고 되묻는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결혼 1년차 윤모(31)씨는 임신 계획이 아예 없다. “출산 전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는 게 저희 회사의 암묵적인 규칙”이라며 “임신 소식을 알린 순간부터 회사는 인수인계 이야기를 한다”고 전했다. 출산 휴가나 육아휴직은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이다. 

 

 

 

 

◇ 결혼하고 일이 있어도 육아 큰 고민

 

결혼 5년차로 3살 아들을 둔 맞벌이 엄마 최지현(37)씨는 “일을 않으면 나중에 사교육비 등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꾸역꾸역 다니고 있다”고 토로한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친정에서 번갈아 맡아주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어떻게 할 지 고민이 많다. 그는 “아이를 돌볼 시간을 낼 수 있도록 주 4일제 같은 제도가 도입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결혼 10년차 워킹맘 김정아(38)씨는 8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니 준비물부터 인성교육, 심리 안정 케어까지 더 신경 써주어야 할 부분이 많아 심각하게 퇴사를 고려 중이다. 이제까지는 돌봄교실이 있었는데 코로나19 탓에 보내지 못하게 된 것이 결정적이다. 그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초등학생 자녀를 케어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육 시스템을 더 보강해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결혼 3년차인 정 모씨(35)는 지난해 딸을 출산했다. 그나마 주변 사람들에 비해 빠른 편이다. 임신으로 그녀는 9년 몸담았던 회사에서 나왔다. 엄마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결정에는 결혼 전 집을 마련해 준 양가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큰 힘이 됐다. 그는 “결혼할 때 신혼집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결혼도, 육아를 위한 퇴사결정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현금 살포 대신 인프라 개선을

 

이들은 “이제까지의 정부 대책은 저출산 문제의 본질에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현금성 지원으론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2030이 출산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가 ‘경력 단절’ 때문임을 안다면, 그런 리스크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인프라 구축에 예산을 집중 투입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시가 좋은 사례다. 공무원 비중이 높은 세종시의 합계 출산율은 1.28로 전국 지자체 중 1위다. 전적으로 인프라 구축 덕이다. 정부청사에는 11곳의 어린이집이 있는데, 이 중 10곳에는 저녁 7시에 출근해 10시 30분에 퇴근하는 심야 보육교사가 한 명씩 있다. 직장과 어린이집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27세 취업준비생 이 모씨는 “나라가 개인의 행복관과 가치관을 무시하고 개인에게 결혼을 장려하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며 “결혼하고 애를 낳는 게 부담이 아니라 그 자체로가 행복일 때 결혼은 자연스레 선택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유럽 국가들의 예를 들면서 “개인이 선택한 결혼과 출산에 대해 애프터서비스는 모두 국가가 책임진다는 마인드와 이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내 집을 갖고 출발했던 정 모 씨는 “육아휴직 제도와 사내 보육시설 등이 갖춰진 대기업과 달리 많은 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를 기업의 책임으로 돌리기 보다는 국가가 나서서 사내 보육시설이나 육아 지원, 육아 휴직 제도를 확실하게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서영 씨도 “소기업에서 육아휴직 눈치주기, 복직 거부 등이 없도록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아영·안동이·이지은 기자 ayk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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